격랑 휘말린 홍콩…反국가보안법 시위에 최루탄·물대포
  • 이혜영 객원기자 (applekroop@naver.com)
  • 승인 2020.05.25 11: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콩 도심서 대규모 시위…‘反국가보안법’ 시위대·야당인사 체포
홍콩 정부 “폭력집단의 불법 행위…홍콩보안법 필요한 이유”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의회 대신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이 24일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직접 제정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홍콩 시민들이 24일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로 몰려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홍콩이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홍콩 의회 대신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을 압박하고 나오면서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홍콩 경찰은 야당 인사와 시위대 200여 명을 현장에서 체포하며 또 다시 강경 진압을 예고하는 등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2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홍콩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소고백화점 앞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 홍콩보안법과 '국가법'(國歌法)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대는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天滅中共)'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광복홍콩 시대혁명", "홍콩인이여 복수하라", "홍콩 독립만이 살길이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완차이 지역까지 행진을 시도했으며, 일부 시위대는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손에 들고 있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2014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의 상징인 우산을 쓰고 거리에 나섰다. 우산 혁명은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우산으로 막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 조슈아 웡(黃之鋒)도 시위에 참여해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게 되더라도 계속해서 싸울 것이며,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할 것"이라며 "우리는 싸워서 이 법을 물리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야당인 피플파워(人民力量)의 탐탁치(譚得志) 부주석은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으며, 경찰에 끌려가면서 "자유를 위해 싸우자. 홍콩과 함께"라고 외쳤다.

24일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열린 코즈베이웨이 일대에 배치된 홍콩 경찰 ⓒ 연합뉴스
24일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열린 코즈베이웨이 일대에 배치된 홍콩 경찰 ⓒ 연합뉴스

경찰은 이날 시위에 대비해 8000여 명을 배치하고, 불법 시위가 벌어지는 즉시 엄중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가 코즈웨이베이 지역에 모이자마자 최루탄, 최루 스프레이 등을 발사했고, 물대포도 동원했다. 경찰은 시위대가 주변 상점들을 공격해 유리창을 깨뜨리고 길가에 불을 질렀다며, 시위대의 과격 행위로 경찰 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홍콩변호사협회는 시위 현장에 있던 변호사 1명이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다가 구타를 당해 머리에 피를 흘리는 중상을 입었다면서 폭력 행위를 비난했다. 이날 코즈웨이베이, 완차이, 침사추이 지역 등에서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는 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성완 지역에 있는 중앙인민정부 홍콩주재 연락판공실 주변에도 경찰과 장갑차 등이 배치됐다.

앞서 지난 22일 열린 전인대 개막식에서는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개입과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리즘 활동 등을 금지·처벌하고, 홍콩 내에 이를 집행할 기관을 수립하는 내용의 홍콩보안법 초안이 소개됐다. 홍콩 입법회는 오는 27일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모독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법 안건을 심의하기로 했다. 

이에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들은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왔고, 경찰과 충돌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홍콩 야당과 범민주 진영은 "홍콩보안법이 제정되면 홍콩 내에 중국 정보기관이 상주하면서 반중 인사 등을 마구 체포할 수 있다"며 강력한 반대 투쟁을 전개하기로 했다. 내달 4일에는 '6·4 톈안먼(天安門) 시위' 기념집회가 열리며, 9일에는 지난해 6월9일 100만 시위를 기념해 다시 집회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7월1일에는 홍콩 주권반환 기념 시위가 예정됐다.

타냐 찬(陳淑莊) 공민당 의원은 "홍콩보안법이 제정되면 홍콩법 위에 군림하는 정보기관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홍콩인들은 이에 대한 반대의 뜻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그로 인한 심각한 경기침체가 시위 열기를 가라 앉힐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8인 초과 집회나 모임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최대 2만5000 홍콩달러(약 400만원) 벌금과 6개월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이날 시위도 지난해 6월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100만, 200만 명의 인파가 모였던 것에 비하면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홍콩이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진 상황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홍콩 친중파 진영은 홍콩보안법에 찬성하는 시민도 많다고 언급하며 입법지지 활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친중파 단체인 '23동맹'은 온라인 서명 210만 명, 가두서명 18만 명 등 총 228만 명의 홍콩보안법 지지 서명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숫자 '23'은 홍콩보안법의 근거가 되는 홍콩 기본법 23조를 말한다.

홍콩 정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폭력집단의 심각한 위법행위가 벌어졌다"며 "이야말로 국가안전법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