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4 14: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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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은 대안 없는 생존전략…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정부가 챙겨야

정부가 ‘한국판 뉴딜’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과 디지털 경제의 확산이라는 구조적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경제구조 고도화와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이룬다는 것이 목표다. 기획재정부는 3차 추경을 준비 중이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은 흔히 1929년 시작된 대공황에 대응해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성공적 모델로 받아들여진다. 뉴딜은 비상한 경제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대규모 재정 투입 전략이었다. 하지만 재정 투입을 대규모로 늘린다고 해서 바로 뉴딜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뉴딜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이해 당사자 간 ‘새로운 거래(Deal)’가 있어야 한다. 뉴딜은 흔히 3R, 그러니까 구제(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이라는 세 가지 비전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빈곤층 구제와 경기 회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적 제도 개혁이 함께 추진됐다.

3월20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시대전환 코로나19 뉴딜특별위원회 정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시대전환 조정훈 공동대표(왼쪽 다섯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20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시대전환 코로나19 뉴딜특별위원회 정책 발표 기자회견에서 시대전환 조정훈 공동대표(왼쪽 다섯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美 루스벨트 대통령 뉴딜 정책에 담긴 것

뉴딜이 의미하는 새로운 거래는 붕괴 직전에 놓인 자본주의의 위기를 국가의 개입으로 극복하면서, 기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꾸기 위한 계약이었다. 루스벨트는 그래서 경제적 피라미드의 가장 바닥에 있는 잊힌 사람들을 위한 뉴딜이라고 했다. 노동자의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실업보험이 도입되고, 과당경쟁 방지를 위한 공정거래제도, 빈민구제제도, 연금 등에 기반한 사회보장제도가 법제화됐다.

사실 뉴딜은 미국의 경제를 구하는 데 온전히 성공했다고 하기 어렵다. 노동자의 장기 대량실업도 해결하지 못했다. 미국 자본주의가 대공황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2차 세계대전에 돌입하면서였다. 미국은 뉴딜이 이룩한 제도적 변화의 성과를 발전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뉴딜을 통해 미국 사회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뉴딜 이후 공정한 경쟁 환경을 위한 정부의 시장 개입, 금융회사의 안전성 유지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개혁, 기업 활동에 대한 적절한 규제, 고소득자에 대한 높은 세율과 공공근로 사업을 통한 실업 구제 정책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특히 미국의 정치지도는 뉴딜 정책을 계기로 완전히 변화를 겪었다. 남북전쟁 이후 언제나 링컨의 공화당을 찍었던 미국의 흑인들은 루스벨트 이후에는 민주당의 확실한 지지 기반이 됐다. 1932년의 대통령선거 이후 아홉 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은 일곱 번을 이겼다. 그 전의 아홉 번의 대통령선거에서는 반대로 공화당이 일곱 번을 이겼었다.

뉴딜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이른바 ‘한국형 뉴딜’이 기존 4차 산업혁명 전략이나 혁신성장 정책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 건지는 분명하지 않다. 모든 산업에 이른바 ICT를 활용한 성장동력을 마련한다는 얘기는 이미 과거 정부에서도 많이 들었던 주제다. 핵심 전략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활성화 등은 기존에 나온 국가전략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경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지속 가능한 성장 정책을 해야 한다며 ‘그린’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기도 하지만, 그게 과거 정부의 이른바 녹색성장 전략하고는 뭐가 다른 건지도 알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혁신성장을 준비하기 위한 일련의 계획에 한국판 뉴딜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다. 혁신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와 일자리 창출은 이제 대안 없는 생존전략이 됐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과 공유경제의 세계적 열풍 속에서도 그토록 민원의 대상이었던 공인인증서를 이제야 폐지하는 수준이 한국의 현실이다.

정부가 한국형 뉴딜의 일환으로 제시한 비대면 의료 추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디지털 뉴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게 데이터 활용이나 AI 기반 서비스지만, 우리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미국은 물론 중국에 비해서도 떨어진다. 우리의 전자정부 수출 실적은 2015년을 정점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은 정책이 아니라 구호고, 추상적인 구호만으로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역대 정권이 모두 미래 성장동력 창출과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과거 정부에서 추진됐던 창조경제, 녹색성장, 스마트 뉴딜 등이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던 것은 정권 연장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아예 목표 자체가 분명하지 않았던 데다, 설사 목표가 있다고 해도 수단이 그에 부합하지 않았고, 또는 수단이 적절했다고 해도 의지가 확실하지 않았으며, 그나마 구조 개혁이 동반되지 않아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뉴딜’이라는 구호에 함몰되지 말아야 

굳이 뉴딜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디지털 전환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정부의 이런저런 정책이 뉴딜이란 구호에 어울리는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뉴딜이라고 굳이 거창하게 이름을 찾아 붙일 필요도 없다. 그냥 정부는 하겠다고 한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들 가운데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많은 일을 새로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국정과제’ 항목이 있다. ICT 르네상스로 4차 산업혁명 선도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내용은 이미 더불어 잘사는 경제를 위한 전략의 하나로 들어가 있다. 소프트웨어를 가장 잘하는 나라, 소프트웨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실현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그린 뉴딜이라는 타이틀은 붙어 있지 않지만, 스마트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통해 에너지 다소비 경제구조를 친환경·고효율 구조로 전환하겠다고도 명시돼 있다. 산업 전반에 걸쳐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확산시키겠다는 것도, 금융산업구조 선진화를 위해 진입 규제를 포함한 사전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겠다는 것도, 공정한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하겠다는 것도 모두 이미 들어가 있다.

정부는 이미 할 일을 대부분 알고 있다. 하겠다고 한 일부터 그냥 하면 된다. 물론 개혁은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틀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쉽지 않다. 구조 개혁은 돈 풀고 금리를 낮춘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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