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공화국 현대중공업 “정부 특별관리 받는다”
  • 부산경남취재본부 박치현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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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현대중공업 안전관리 불량 사업장’ 지정
잇따른 산재 사고에 ‘상설감독팀’ 구성 고강도 밀착관리
현대중공업, 산재사고 대비 전격 인사 단행

산재공화국 오명을 쓰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결국 정부 특별관리를 받는다. 노동부가 "현대중공업을 안전관리 불량 사업장"으로 지정하고 고강도 밀착관리에 나섰다. 반복되는 산재사고를 두고만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는 연이은 사망사고 발생으로 특별감독을 실시(5월11~20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감독 종료 다음날인 지난 21일 곧바로 사망사고(아르곤 질식사 1명)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을 안전관리가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해 특별관리에 돌입했다.

현대중공업 골리앗크레인 작업현장ⓒ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 5명의 노동자가 추락사, 질식사, 압사 등 산재사고로 숨졌다. 모두 안전부주의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였다. 

지난 2월 추락사고에 이어 4월에는 2건의 끼임사고가 발생해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1일에는 가스질식 사망사고로 또 한 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같은 달 16일에도 유압 작동문 사고로 근로자 1명이 사망했다. 나머지 1명은 지난 3월 당직 중 익사체로 발견됐다. 21일 사망사고는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이 진행된 직후였다.

한 달에 1명꼴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현대중공업은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앞서도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대대적인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을 향한 시선은 더욱 싸늘했다.

 

현중, 안전대책 강화방안 전격 인사 단행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은 공식 사과했다. "잇따른 현대중공업의 중대재해로 인해 지역사회는 물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면서 "안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인 만큼, 앞으로 모든 계열사가 안전을 최우선가치로 삼는 경영을 펼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25일 안전대책 강화방안으로 인사조치를 단행했다. 조선사업부문 대표를 맡고 있던 하수 부사장이 연이은 사망사고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고, 그 자리에 이상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이 선임됐다.

이와 함께 조선사업부문 대표를 사장급으로 격상시켜 생산 및 안전을 총괄하도록 했고, ‘생산본부’를 ‘안전생산본부’로 확대 개편했다. 현대중공업이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 인사조치를 단행한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믿는 노동자들은 별로 없다. 사람을 바꾸기 보다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중공업의 산재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에는 13명이 목숨을 잃었고, 2015년에도 7명이 사망했다. 2016년에는 일주일 새 3명이 사망하는 등 11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산재사고로 숨진 동료에게 묵념하고 있다ⓒ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산재사고로 숨진 동료에게 묵념하고 있다ⓒ현대중공업

지난해에도 현대중공업은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망 재해·산재 은폐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기업’ 명단에서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를 발생시킨 기업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산재사고는 계속 반복됐다. 알맹이 없는 대책발표로 여론의 뭇매를 피하려는 꼼수였음을 보여준 결과다.

 

노동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요구 농성 투쟁

현대중공업 노조 등 노동계는 최근 잇단 사망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사업주에 대한 구속수사 등 엄중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25일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긴급 농성투쟁에 돌입한 상태다.

20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0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조합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실질적인 주체에게 제대로 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거듭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 잔혹사를 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경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지부장은 지난 20일 청와대 앞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정몽준은 현대중공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으로 인수한 현대오일뱅크를 토대로 2년간 1767억 원이라는 배당금을 챙겨갔다. 정몽준이 선임한 현대중공업 사장은 대주주의 이윤을 늘리기 위해 생산제일주의 경영행위를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선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법과 제도, 엄격한 행정집행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동안 현대중공업그룹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장남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단 한 번도 공식사과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오너일가의 최측근인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회장 역시 책임을 진적이 없다.

노동부도 더 이상 현대중공업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현대중공업에 중대재해 재발 방지를 위한 `전사적 차원의 근원대책`을 수립해 시행할 것과 빠른 시일 내 대책을 마련해  대외적으로 표명할 것을 요구했다.

 

노동부, 현대중공업에 고강도 밀착 특별관리

아울러 대책 마련을 자문하고 대책 수립 후 이행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울산지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안전보건개선특별위원회` 운영을 요청했다. 또한 현중의 안전관리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될 때까지 고강도 밀착관리를 시행할 계획이다.

특히 잇따른 사망사고에 대한 특별감독 결과, 원청의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 적발된 만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자를 엄중처벌해 `안전경영`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부산고용노동청 주관으로 현대중공업을 전담하는 `상설감독팀`을 구성해 6월과 7월 2달 동안 강도 높게 밀착 관리한 다음 `위험작업 전 안전수칙 이행은 필수`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심어주겠다는 거다.

하반기에는 조선업 안전지킴이를 신설·운영해 사업장을 순찰하며 안전조치 미흡 사항에 대해 개선 권고할 방침이다. 그리고 미이행 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기술지도 및 고용노동부 감독과 연계할 계획이다.

여기에 현중에 대한 자체 상시점검단을 구성해 상시 안전점검하고 작업허가서 등을 통해 하청 노동자의 작업현장을 확인ㆍ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등 자체 안전보건관리 시스템을 강화하도록 했다. 또 현대중공업 스스로 중대 재해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 외부에 공개하도록 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은 "이번 특별관리를 통해 현대중공업이 기업경영에서 노동자의 생명을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 창사 이래 466명 산재사고로 사망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회사와 노조가 가진 자료를 분석해 1974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46년 동안 조선업 현장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1974년 창사 이래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가 46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사고로 매달 0.85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0년대에는 137명, 1980년대에는 113명의 노동자가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후 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1990년대 87명, 2000년대 81명으로 기록됐다.

2000년대 들어 정규직의 산재사망은 점차 줄고 하청노동자의 사망은 늘어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 확산됐다. 2007년 한 해에 하청노동자 8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2010년대의 산재사망자 수는 44명이다. 현장의 안전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조선업 불황으로 작업량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지부의 설명이다. 올해도 벌써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산재사망사고를 유형별로 보면 '추락'이 6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압착·협착(53건), 과로(41건), 충돌(16건), 폭발·화재로 인한 화상·질식(12건), 감전사(5건), 유해물질 사고(2건), 익사·매몰(각 1건) 등 순이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조선소 내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안전보건관리의 사각지대에 있어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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