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려난 오거돈…여성단체는 “분노”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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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증거 확보되고 증거인멸 염려 없다” 구속영장 기각
여성단체 “힘 있는 사람은 중대한 범죄에도 구속 걱정 없이 재판 받나”

여직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2일 기각됐다. 여성단체 등은 "법원이 권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조현철 부산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일 오후 오 전 부산시장의 영장실질심사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조 부장판사는 “증거가 모두 확보되고 피의자가 범행 내용을 인정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일정한 주거와 가족 관계, 연령 등 제반사항을 종합하면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오 전 시장 측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납득할 수 없는 범행을 저질러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스스로 용서가 되지 않는다. (범행은) 고의적이지도 계획적이지도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의 영장 기각에 따라 부산 동래경찰서 유치장에서 대기하던 오 전 시장은 이날 저녁 8시25분쯤 풀려났다. 오 전 시장은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자택으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 그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게 된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5월22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 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마친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오 전 시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자 여성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부산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시민단체 연합체인 '오거돈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판사가 이 사안에 대해서 국민에게 던진 대답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은 비록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구속에 대한 걱정 없이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권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고, 공직의 무거움을 알리는 이정표를 세울 기회를 법원은 놓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김규리 부산여성단체협의회장은 "권력형 성추행은 지독한 범죄인데 사안의 중대성이 제대로 다뤄졌는지 의문"이라며 "여성계에서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정중한 사과도 받은 적도 없고 너무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 초 부산시청 시장 집무실에 여성 직원을 불러 강제로 신체를 접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돌연 사퇴했다. 부산경찰청은 전담팀을 꾸린 뒤 여러 시민단체와 미래통합당 등의 고발 내용을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해 왔다.

경찰은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사건 당일 시장 집무실 주변 상황을 파악한 뒤 지난달 22일 오 전 시장을 비공개로 소환해 14시간가량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달 28일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오 전 시장의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검찰도 별다른 보강수사 지시 없이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오 전 시장은 이날 법원에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죄송하다”고 답한 뒤 법정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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