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감 커진 홍콩, ‘反中’ 기세 한풀 꺾이나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5 15:00
  • 호수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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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국가보안법’ 밀어붙이는 중국의 속내…미국 외 국제사회 반응도 ‘소극적’

5월28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3기 3차 전체회의에서 ‘홍콩 국가보안법(香港國家安全法)’ 초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표결 과정은 홍콩 봉황(鳳凰)TV가 생중계했다. 대형 전광판에 결과가 공개됐다. 찬성은 2878명, 반대와 기권은 각각 1명과 6명이었다. 압도적인 찬성 결과가 나오자 참석한 대표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리잔수(栗戰書)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표결 직후 진행된 폐막식에서 “홍콩 보안법은 헌법과 홍콩 기본법에 부합하고 홍콩 동포를 포함한 중국인 전체의 근본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홍콩 보안법이 통과됐다고 해서 법률이 바로 발효되진 않는다. 전인대 상무위원회에서 다시 3차례 이상 심의를 거쳐야 한다.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보통 두 달에 한 번 개최된다. 따라서 3차례 심의를 거치려면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이런 과정을 고려한다면, 홍콩 보안법이 시행세칙과 함께 실제로 발효되는 시점은 빠르면 올 연말쯤이다. 그러나 홍콩 보안법은 민감한 내용을 여럿 담고 있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이 그간 유지해 온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6월1일 홍콩 시민들이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6월1일 홍콩 시민들이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중국, 미국과의 정면충돌 꺼리는 기류 보여

홍콩 보안법은 아직 초안이라 7조항의 결의 내용만 공개됐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제1조는 홍콩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법률제도와 집행기관을 건설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와 활동을 예방하고 금지하며 처벌토록 했다. 이는 향후 중국 정보기관이 홍콩에 상주해 반중 활동을 하는 홍콩인들을 검거해 처벌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해 홍콩 시위사태와 관련해 이 조항을 적용하면, 중국 국기를 불태우거나 중국 국가휘장을 훼손하는 행위를 엄벌할 수 있다. 중국 기업과 은행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지르는 시위대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다.

제2조는 어떠한 외국 세력이 어떤 방식으로도 홍콩 내정에 개입하는 걸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홍콩을 이용해 분열·전복·침투·파괴하는 활동을 방지하고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지난해 민주화 시위대가 미국을 위시한 다른 나라들에 홍콩 민주화를 지원하도록 요청했던 전례를 겨냥한 조치다. 시위를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조슈아 웡(黃之鋒)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9월 미국 의회가 개최한 청문회에 출석해 ‘홍콩 인권민주주의법’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러한 행위는 홍콩 보안법에 따라 엄벌에 처해지게 된다.

홍콩 보안법이 통과되자 국제사회는 일제히 중국을 비판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중국을 압박해 온 미국의 반응이 가장 거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29일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약속한 일국양제 원칙을 ‘일국일제’로 대체했다”며 “홍콩의 특별대우를 제공하는 정책적인 면제를 제거하는 절차를 시작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홍콩의 특별대우’는 1992년 미국이 제정한 ‘홍콩정책법’에서 비롯됐다. 법률은 홍콩을 독립된 자치지역으로 규정하고 외환거래, 무역과 관세, 투자와 기술 이전, 비자 발급 등에서 중국과 다른 대우를 해 왔다. 그 덕분에 홍콩은 1997년 중국에 반환된 이후에도 아시아의 금융 허브 역할을 유지했다. 만약 특별지위를 박탈할 경우, 홍콩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된다.

지금까지 홍콩을 중국 진출의 교두보로 이용해 왔던 미국과 서구 기업의 타격도 만만치 않게 된다. 그래서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의 특별지위를 어떤 식으로 박탈할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체결한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철회 가능성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대응 수위를 조절하면서 중국을 압박할 공산인 셈이다. 그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중국에서는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꺼리는 기류가 깊어지고 있다. 중국 언론매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정례 브리핑을 통해 국제 이슈나 문제에 대해 논평하거나 입장을 밝히는 중국 외교부도 수일 동안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오직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환구시보(環球時報)만 사설을 통해 미국을 비난했을 뿐이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홍콩 문제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 중국 GDP에서 홍콩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1년 21.4%에서 2018년 2.7%로 급감했다. 수년 전부터 홍콩의 최대 외국인 직접투자국도 중국이다.

게다가 중국은 금융시장을 점진적으로 개방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이후에는 개방의 폭을 넓히고 속도를 더욱 내왔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홍콩에 대한 특별지위가 사라지면, 상하이 및 선전(深柏) 증시가 홍콩을 대체한 금융 허브로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마저 나온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소극적인 반응도 중국에 호재다. 각국은 홍콩 보안법에 우려를 표명했을 뿐 대중 제재안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심지어 대만 정부조차 “홍콩에서 오는 체류 신청자의 자격 요건을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대만으로 유입될 홍콩인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다.

 

경제 악화한 홍콩, 中에 반발할 동력 잃어

가장 주목할 것은 홍콩 내 반응이었다. 홍콩 보안법이 통과되기 직전인 5월27일 홍콩 도심의 여러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주로 1020세대인 시위 참가자는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 時代革命)’ 깃발을 앞세우고 중국과 홍콩 경찰을 성토했다. 그런데 참가자 수는 수백 명에 그쳤다.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시위였던 점을 감안해도, 적어진 시위대 규모는 확연히 드러났다.

지난해 시위 사태에 대한 홍콩인들의 피로감은 크게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크게 악화된 홍콩의 경제 사정도 중국 조처에 대한 반발심을 상쇄하고 있다. 홍콩의 변호사 마이클 차우는 “지난해 반년 넘게 시위가 이어졌으나 얻은 정치적 성과는 적은 대신, 경제적 타격만 입어 시민들이 지쳤다”고 말했다. 올 1분기 홍콩 GDP는 지난해 동기 대비 8.9%나 줄어들었다. 이는 1974년부터 관련 통계를 발표한 이래 최악의 수치다. 홍콩은 시위 사태로 지난해 3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다. 3월 실업률은 10년래 최고인 4.2%였다.

여론조사센터가 6월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엔 홍콩인들의 복잡한 심정이 잘 드러난다. 15세 이상 홍콩인 815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응답자의 64%가 ‘중국이 홍콩 의회를 우회해 홍콩 보안법을 제정하는 데 반대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응답자의 52.3%는 ‘국가안보를 위해하는 행위와 활동을 예방·금지·처벌해야 한다’고 답했다. 중국이 홍콩인을 배제하고 법률을 제정하는 데 분노하지만, 법 취지에는 공감하는 상반된 심리가 담겨 있다. 이런 현실에 좌절해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는 응답자가 37.2%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5월 첫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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