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와 성노예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6 16:00
  • 호수 15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에는 이력이 있다, 인권이라는 이력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남긴 파장이 국회 의원회관 530호 앞에 진을 친 기자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유감이다. 이번 기회가 ‘위안부’ 문제를 국민들이 많이 알고 이해하는 계기가 되게 할 수도 있는데.

“최초의 미투” 당사자 김학순이 등장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잘 모른다는 사실을 이번에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정대협의 그간 운동 역사도 당연히 모르고, 1400회가 넘게 지속해 온 수요집회가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지도 모른다. 정대협과 피해자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피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인권운동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이고, 어떤 과정이 그 뒤에 있었을까를 모른다. 보통 사람들뿐 아니라 기사를 쓰는 기자들도 비슷하다. ‘지금 당장’이 중요한 뉴스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아쉽다.

만삭의 위안부가 구출되는 장면 ⓒKBS
만삭의 위안부가 구출되는 장면 ⓒKBS

다시 결을 다스려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용어 하나하나가 다 논쟁적이다. 문제 자체도 그렇다. 거칠게 나눠보아도 ‘위안부’는 전시성폭력 희생자이자 식민지 착취 피해자이자 가부장제의 희생자다. 심지어 그 가부장제는 국가가부장 군국주의 일본의 중요한 특징이다. 어느 측면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해결하고자 하는 내용도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근 쟁점이 된 ‘위안부’의 이름조차도 그렇다.

‘할머니’가 그러셨다. 성노예란 말 더럽고 부끄럽다고. 그런데 미국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 말을 써야 한다고 (윤미향이) 그랬단다. 곧바로 SNS에선 또 편싸움이 벌어지고. 심각한 오해들도 발생한다. 정대협이 국제적 지원을 이끌어내려고 성노예란 말을 발명한 듯한 오해. 정신대와 위안부가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사람들도 있는 만큼, 성노예라는 말에 상처 입었노라는 할머니의 말씀 그 자체만을 듣고 성노예라는 말을 전면에 내건 정의연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

약간만 물러서서 생각해 보자. 피해자들은 왜 ‘위안부’였음을 증언하셨을까.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일본으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베트남으로 전국 각지로 다니면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셨을까. 국제사회는 이 사태의 엄중함을 어떤 차원에서 이해했길래 ‘성노예’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할까.

 

유엔이 성노예 용어를 권고한 이유

국제사회가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김복동·이용수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준 것은 ‘위안부 제도’가 본질적으로 ‘성노예제’라는 점과 분리해서 설명하기 어렵다. 이미 1945년 8월 미국 신문에 ‘성노예’라는 표현이 등장한다고 하고, 1996년 유엔인권위원회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도, 1998년 맥두걸 보고서도 위안부 문제를 전시성노예제로 보고 있다. 국제적으로 ‘노예제’ 용어의 개념이 이미 정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엔은 2014년에 일본을 향해 공식적으로 ‘위안부’ 대신 ‘강제성노예’란 용어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2015년 한·일 합의에 이 문제가 거론된 실제 배경이다. 우리 사회도 최근 들어 성착취 피해자를 성노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n번방 성노예를 보라. 성노예는 더럽고 부끄러운 이름이 아니라 착취당함의 고발장인 셈이다. 인권의식이 발달한 결과다.

그렇더라도 할머니 입장에서 성노예가 듣기 싫다는 데는 너무 공감한다. 그렇다면 이참에 위안부의 영어 이름을 캄폴트 우먼 말고 위안부(WiAnBu)라 부르기 운동이라도 하시라. WiAnBu의 뜻이 역사상 유례없이 잔인했던 일본군 성노예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설하면 되지 않겠나.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