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강남역 인근 화장실 살인사건’ 후 4년…여전한 ‘화장실포비아’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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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은 공염불…남녀 공용화장실 10곳 중 3곳 보안장치 없어
화장실 불법촬영 범죄 5년간 3만여 건

#열쇠를 가져갔지만 문은 열려있었다. “출입문을 반드시 닫아 달라”는 안내문이 무색했다. 불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남성용 소변기 앞에 선 채 볼일을 보는 20대 남성이었다. “죄송합니다!”라고 소리치고는 달려 나왔다. 5분여간 밖에서 서성이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었다. 손만 씻고 나왔다.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근처 한 상가의 1층 화장실이었다. 입구엔 공용화장실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었다.

다시 ‘화장실포비아’가 시작됐다. KBS 서울 여의도 사옥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에 쓰이는 카메라가 발견되면서다. 화장실 관련 범죄가 사회 이슈로 대두된 건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 살인사건이다. 20대 여성이었던 피해자는 보안장치가 없는 남녀 공용화장실에서 살해당했다. 때문에 정부는 대책으로 남녀 공용화장실을 분리하고 보안장치를 달도록 권고했다. 4년이 지난 현재, 화장실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 상태를 점검해 봤다. 

서울 강남역 인근 민간 상가 남녀공용화장실. 남성용 소변기 맞은편에 여성용 칸이 마련돼 있다. 보안장치라고는 화장실 안쪽 걸쇠뿐이었다. ⓒ 시사저널 조문희
서울 강남역 인근 민간 상가 남녀공용화장실. 남성용 소변기 맞은편에 여성용 칸이 마련돼 있다. 보안장치라고는 화장실 안쪽 걸쇠뿐이었다. ⓒ 시사저널 조문희

화장실도 ‘빈부격차’…소형 상가는 여전히 범죄에 ‘취약’

4년 전 살인사건이 발생한 현장은 2층 상가가 바뀌면서 리모델링을 했다. 개방형 화장실이 사라졌고, 상점별로 화장실을 따로 이용하게 됐다. 또 남녀 화장실이 층별로 구분돼 있었으며 도어락이 설치됐다. 같은 거리에 있는 인근 건물 8곳을 둘러본 결과, 상점마다 개별화장실이 있고 개방형 화장실은 없었다. 특히 최신건물이거나 대형건물인 경우 남녀 화장실이 구분돼 있었으며, 보안장치도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길 건너 영화관 뒷골목에 위치한 상가들의 상태는 달랐다. 소형 건물일수록 남녀 공용화장실인 경우가 많았고, 도어락 등 보안장치가 설치되어있지 않았다. 강남역 11번 출구와 신논현역 5번 출구 사이에 있는 건물 중 남녀공용화장실이 설치된 10곳을 확인한 결과, 3곳은 잠금장치 없이 개방되어 있었다.

ⓒ 시사저널 조문희
남녀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고 도어락도 설치되어 있었으나 모두 활짝 열려있다. ⓒ 시사저널 조문희

공용화장실 10개 중 3곳 보안장치 없이 뻥 뚫려

잠금장치가 없는 탓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남녀가 마주치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4층짜리 건물에 6개의 상점이 있는 A건물의 경우, 개방되어 있는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세면대 옆에 남성용 소변기 2대가 위치해있다. 여성용 좌변기를 이용하려면 해당 소변기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화장실 앞 CCTV나 비상벨은 없었다.

보다 규모가 큰 B건물 화장실의 경우, 남녀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으나 두 곳 모두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화장실 안에는 변기가 한 대밖에 없어서, 이용객이 있을 경우 남녀가 비좁은 공간에서 함께 대기를 해야 했다. 역시 CCTV나 비상벨 등 보안장치는 없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남녀공용화장실 ⓒ 시사저널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남녀공용화장실 ⓒ 시사저널

범죄의 ‘온상’ 된 공용화장실…공사비 지원에도 건물주는 요지부동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8년 8년간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강력범죄는 1만8590건이다. 이 가운데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성범죄는 1393건에 달한다. 특히 불법촬영 범죄가 급증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 공중화장실에서 총 3만719건의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했는데, 2013년 4823건에서 2017년 6465건으로 35%나 증가했다.

이처럼 화장실 보안이 허술하다는 비판이 계속되자 정부는 남녀 공용화장실 분리 사업에 나섰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 관련 사업을 공고한 뒤 지난해 22억6000만원 예산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서울시 등 지자체에서는 공용화장실을 분리하길 원하는 건물주에게 최대 500만원 등을 지원하고 있다. 평균 공사비용 1500만원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물주들의 입장은 다르다. 서울시가 지난해 12월 남녀공용 화장실이 설치된 민간건물주 315명과 임차인 683명 등 9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4%인 39명만이 사업에 참여의사를 보였다. 앞서 A건물에서 만난 관리인 역시 “코로나 때문에 매출 안 나온다고 난리인데, 화장실 공사에 수백만원을 투자할 리가 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2016년 5월22일 시청역 출구에 서울 강남역 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2016년 5월22일 시청역 출구에 서울 강남역 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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