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면계약서에 담긴 ‘빗썸 인수 사기’ 사건의 진실
  • 송응철·송창섭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6 10: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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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과 이정훈 빗썸 이사회 의장 간 이면계약서
‘BXA 50억 개’로 빗썸 인수자금 충당하려다 대규모 피해자 발생

국내 1위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이 혼란에 휩싸였다. 실소유주인 이정훈 빗썸 이사회 의장과 빗썸 인수자로 나섰던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이 투자 사기 등의 혐의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빗썸거래소에 상장을 미끼로 암호화폐인 ‘BXA토큰’을 판매한 뒤 상장하지 않아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수서경찰서에서 시작된 이번 수사는 최근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로 이관되며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시사저널이 입수한 김 회장과 이 의장 간 이면계약서는 이번 ‘빗썸 사태’의 전말을 보여준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새 암호화폐 BXA 상장 통해 빗썸 인수자금 확보 노려 

사건은 이 의장과 김 회장 간에 체결한 빗썸 주식 매매계약에서 비롯됐다. 김 회장은 2018년 10월 빗썸 인수를 발표했다. 인수가는 3억5000만 달러였다. 이와 함께 그는 새로운 암호화폐인 BXA(Blockchain Exchange Alliance)토큰도 공개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김 회장이 BXA토큰(이하 BXA)을 빗썸의 거래소코인으로 상장시켜 인수자금을 조달하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거래소코인은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암호화폐를 말한다. 거래소가 정기적으로 코인을 매수한 뒤 소각하는 방식으로 유통량을 조절해 가격과 거래량 변동성이 적다는 게 특징이다. 거래 수수료 지불에 사용할 경우 할인이 적용된다는 이점도 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래소코인은 투자가치가 높은 암호화폐로 인식되고 있다.

김 회장은 당초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빗썸 인수가 무산된 이후 지난해 10월 이 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이런 입장을 뒤집었다. 김 회장은 계약금 1억 달러를 제외한 잔금을 끝내 납입하지 못하면서 빗썸 인수가 불발됐다. 이에 김 회장은 이 의장을 상대로 계약금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민사소송을 냈다. 이 의장이 BXA를 빗썸거래소에 상장시켜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정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소장에서 김 회장은 이 의장이 개발한 암호화폐(BXA)의 20%를 자신에게 무상 배정하고 이를 빗썸거래소에 상장시켜 기축통화로 사용토록 하겠다고 이 의장이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상장을 통해 BXA의 가치가 상승하면 이를 통해 빗썸 인수대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었다. 김 회장은 또 이 의장이 인수대금이 부족할 경우엔 빗썸 인수를 위해 싱가포르에 설립한 법인 지분 20%를 재무적 투자자(FI)에게 매각해 인수대금을 충당하도록 해 주겠다는 제안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이 의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취했지만 회신은 없었다. 이 의장은 현재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 의장은 앞서 언론을 통해 “BXA 발행과 판매에 관여하지 않았고, 빗썸거래소 상장 약속도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빗썸코리아 관계자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김 회장과 이 의장 간 투자약정서에 빗썸코리아에 상장시켜주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시사저널은 이런 해명을 정면으로 반박할 근거를 확보했다. 김 회장과 이 의장 간 이면계약서(이하 문건)가 바로 그것이다. 주식매매계약이 이뤄진 2018년 10월12일 체결된 이 문건에는 BXA를 판매해 인수자금을 충당하려 한 사실이 자세히 담겨 있다. 실제 여기엔 ‘이 의장이 김 회장 측과 합의된 재단·단체·법인을 통해서만 암호화폐 발행을 진행하는 것에 동의하며, 암호화폐 발행 후 글로벌 거래소 또는 빗썸거래소 상장을 최우선으로 진행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코인 발행의 목적이 인수자금 확보를 위함이라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건에는 ‘코인을 발행해 모집되는 자금 등은 2018년 10월12일자 주식매매계약에 따라 지급돼야 하는 1·2차 계약금 및 잔금 전부가 지급되는 데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런 식의 자금 조달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데 이 의장과 김 회장은 모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는 ‘본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구두 또는 문서에 의해 협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본 약정이 해지·해체돼도 상호 비밀을 유지한다’는 비밀 유지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의장은 김 회장에게 어느 정도의 BXA 배정을 약속했을까. 그 규모 또한 문건에 나타나 있다. 문건에는 ‘대주주가 지정하는 자에게 암호화폐(BXA) 총 발행 수량의 20%의 암호화폐를 배정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대주주’는 김 회장이 지분 100%를 보유한 싱가포르 법인 ‘SG BKGroup’이다. 이를 감안하면 김 회장에게 총 발행 수량의 20%를 배정할 권한이 있던 셈이다. 또 이와 별개로 문건에는 김 회장과 이 의장이 BXA 전체 발행 수량의 5%씩을 배정받기로 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의장, ‘BXA 상장 최우선 진행’ 이면계약서에 명시

결국 전체 발행된 코인의 25%를 김 회장에게 배정키로 양자가 합의한 것이다. BXA 총 발행 수량이 200억 개라는 점을 감안하면 김 회장의 몫은 50억 개다.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0.3달러에서 0.35달러에 BXA를 상장시키려 했다. 이런 계획대로 상장이 진행될 경우 김 회장은 최소 15억 달러 이상의 자금력을 갖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경우 김 회장은 충분히 인수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이 의장은 어떤 이유에서 김 회장의 인수자금 마련을 물심양면 지원하려 한 걸까. 이런 궁금증은 주식매매계약서 등에 나타난 상세 계약 내용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해소된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김 회장과 이 의장 간 주식매매계약서 등에 따르면, 이 의장은 자신이 보유한 빗썸홀딩스(옛 BTC홀딩컴퍼니·빗썸코리아 지주사)와 이 회사 대주주인 DAA 지분을 BK컨소시엄(BTHMB HOLDINGS PTE. LTD.)에 매도하는 계약을 김 회장과 체결했다.

여기서 BK컨소시엄은 김 회장과 이 의장이 각각 ‘50%+1주’와 ‘50%-1주’를 지배하는 싱가포르 투자법인이다. 경영권은 김 회장이 가져가되, 지분은 두 사람이 절반씩 소유하는 구조다. 결국 이 의장은 김 회장과의 거래를 통해 빗썸에 대한 지배력과 재산권은 유지하면서 막대한 현금까지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거래가 성사되면 빗썸은 사실상 싱가포르 회사가 돼 좀 더 좋은 영업환경으로 터전을 바꿀 수 있었다. 두 사람이 계약을 맺은 시점은 정부 규제로 암호화폐 시장이 동력을 상실해 국내 업체들의 해외 진출이 이어지던 시기다.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은 2018년 12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BXA토큰으로 빗썸 인수자금을 충당하려 한다는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연합뉴스
김병건 BK메디컬그룹 회장은 2018년 12월27일 기자간담회에서 BXA토큰으로 빗썸 인수자금을 충당하려 한다는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연합뉴스

김 회장, 상장된다며 투자자 모았지만 결국 불발

김 회장은 2018년 10월 이후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BXA의 국내외 판매에 나섰다. 싱가포르에 설립된 코인 총판업체 오렌지블록을 통해서다. 오렌지블록은 빗썸 상장을 미끼로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투자자들이 오렌지블록을 상대로 낸 소장에 따르면 오렌지블록은 ‘2018년 12월에 BXA를 0.3달러 내지 0.35달러로 빗썸에 상장시킨다. 첫 달에는 그 가격을 0.3달러 내지 0.7달러로 유지시키되, 추후 2달러 내지 3달러로 가격을 유지시킬 계획’이라며 투자를 유인했다.

백서에도 BXA가 상장돼 거래소코인으로 사용될 것처럼 소개했다. 실제, 백서엔 ‘BXA로 수수료를 지불할 경우 수수료를 할인(Fee discount for exchanges within BXA)’ ‘거래 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익의 50%를 매월 BXA 매수·소각에 사용(50% of Operating Profits from affiliated exchanges will be used for Token Buyback and Burn on monthly basis)’ 등 거래소코인으로 상장될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BXA는 언론에 ‘빗썸코인’으로 보도됐다. 투자자들 사이에선 BXA가 빗썸의 거래소코인임이 기정사실화됐다. 빗썸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1월2일 홈페이지를 통해 ‘2019년 빗썸을 통해 BXA의 상장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공지를 게재하며 힘을 보탰다. 그 결과 BXA는 개당 150~300원의 가격으로 총 300억원어치가 판매됐다. 김 회장은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빗썸 인수를 위한 계약금 일부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BXA 상장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BXA 가격은 계속 하락했다. 이런 가운데 빗썸글로벌은 지난해 11월 빗썸코인(Bithumb Coin·BT)을 거래소코인으로 상장할 계획을 밝혔다. BXA의 상장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이로 인해 BXA 가격은 개당 2원까지 떨어졌다. 김 회장은 전액에 가까운 투자금을 잃게 된 투자자들로부터 특정경제가중처벌에 관한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BXA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오킴스의 권오훈 변호사는 “BXA가 다단계 판매구조를 거치며 유통마진이 더해져 실제 피해금액은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일로 김 회장은 상장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계약금을 몰취당한 피해자이자, 대규모 피해자를 양산한 가해자 입장이 됐다. 이면계약서 내용대로 상장이 진행되지 않은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김 회장에게 전화와 문자로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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