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 피하기 위한 허위진단서 변조, 처벌 될까 [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 남기엽 변호사 (kyn.attorney@gmail.com)
  • 승인 2020.07.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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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석 피하기 위해 날짜 바꾼 진단서 재차 변조, 처벌되지 않는다

지각을 피하는 손쉬운 방법

변론이 잡혀있는 변호사에게 지각(遲刻)은 치명적이다. 1분만 늦어도 칼 같은 재판부를 만나면 불출석 처리된다. 그 경우 기일은 공전되고 변호사는 의뢰인을 대할 낯이 없어진다. 변호사들이 여유 있게 법정에 가는 이유다.

지각은 권력이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은 학창시절부터 의원시절까지 자주 지각했다. 의원들이 항의하자 “여러분들도 나처럼 예쁜 아내와 살면 늦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반박했다. 그의 이런 어록은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의 기틀이 된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 역시 지각에 능숙했다. 교황도(15분), 오바마도(40분), 메르켈도(40분) 그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지각은 불이익을 수반한다. 특히 학교에서 지각, 불출석은 치명적이다. 우리 모두 '출석점수'가 있음을 안다. 결석할수록 점수를 깎고 몇 회 이상이면 F를 준다. 예비군은 늦으면 아예 돌려보낸다. 학점 0.1에 목숨을 걸고 투서가 난무하는 마당에 출석점수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모두의 욕망이다.

그래서 꺼내는 카드는 “아프다”이다. 사적 약속에선 잘 안 통하지만 학교에선 의외로 쉽다. 우선 병원에 가서 머리가 아프다거나, 숨이 안 쉬어진다고 하면 의사는 그 의견을 반영해 진단서를 써준다. 물론 대부분 확진이 아닌 ‘의증’이지만 이렇게 발급된 진단서를 교수가 반영하지 않기도 곤란하다.

ⓒ시사저널 자료사진
ⓒ시사저널 자료사진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진단서는 대개 1~3만원으로 발급비용이 비싸다. 학생들의 관심은 좀 더 저렴한 진단확인서, 진료확인서로 바뀐다. 확인서는 질병코드가 들어갈 필요도 없고 의사의 법적 책임이 진단서와 확연히 다르다. 가격도 무료에서 3000원으로 훨씬 싸다.

대형 강의일수록 많이 제출된다. 대학 당국은 이런 얌체족들의 행위를 모를 리 없지만 수사권도 없고 병원에 개인정보를 말하라고 할 권한도 없다. 결석을 피하고 싶은 학생들의 ‘욕망’과 책임회피 가능한 대학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형성된 오랜 대학의 풍경이다.

 

무리한 욕심, 범죄자 될 수 있어

여기까지는 그래도 법적 문제는 없다. 진단서든 진료확인서든 적법하게 발급 받았으니까. 그런데 욕심이 생긴다. 원래 뭐든 ‘한 사람’이 계속 하고 ‘늦는 사람’이 계속 늦는 법이다. 여러 수업에 진료확인서가 필요한데 매번 진료비와 발급비가 들고, 병원 가기도 귀찮다. 그래서 위조(변조)한다.

실제로 필자가 대형 강의 조교로 있던 시절, 도장이 희한하게 ‘똑같은’ 위치에 날인된 날짜만 다른 진료확인서 10장을 본 일이 있다. 이건 명백하게 사문서변조죄에 해당한다. 실제로 진료확인서를 한 번 발급받은 뒤 수십 차례 날짜만 바꿔 예비군 훈련을 연기하여 실형을 받은 사례도 있다.

A는 대학 시절, 결석하면 포토샵으로 진단서의 날짜만 바꿔 제출해 감점을 피했다. 그렇게 졸업하고 취직한 뒤 이번엔 예비군을 미루고 싶었다. 병원 갈 시간도 없고 고민하던 A는 대학시절 변조했던 진단서 파일을 불러내 또다시 날짜와 병원장 명의를 변조했다. 그런데 그 병원은 이미 몇 년 전 폐업한 상황. 이를 수상하게 여긴 병무청은 A를 사문서변조 혐의로 고발했고 검사는 A를 재판에 넘겼다. 처벌 될까.

1심은 이미 변조된 문서를 재차 변조한 행위에 대해 “새로운 증명력을 작출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A는 항소했으나 2심 역시 사문서변조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권한 없는 자가 이미 변조한 부분을 다시 권한 없이 변경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문서변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하여 원심에 사건을 돌려보냈다.

 

변조한 문서 재차 변조해도 처벌하지 않아

사문서변조죄에서 ‘변조’는 적법하게 작성된 문서의 내용에 변경을 가해 새로운 증명력을 만드는 것이다. 즉 이미 변조된 부분을 다시 권한 없이 변경했다고 해도 사문서변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병원으로부터 발급받은 진단서의 날짜를 고치는 것은 적법하게 발급된 사문서를, 권한 없는 A가 변경한 것이므로 사문서변조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A가 자신이 과거에 이미 변조한 사문서를, 재차 변조한 경우는 ‘적법’한 문서가 아닌 ‘위법’한 문서를 변조한 경우에 해당하여 사문서변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변조할 ‘원본’ 문서가 적법하게 발급된 문서라면 처벌되고, 이미 변조된 문서라면 처벌, 안 된다.

그런데 변조의 ‘원본’ 문서가 적법하였든 위법하였든 발급 경위에 ‘신빙성’ 있는 외관을 지녔다면 ‘증명력’에 차이가 있을까? 문서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가 위협받는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게다가 의료정보는 내밀한 개인정보이므로 학교당국도 접근하기 쉽지 않기에 적발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결석 피하기 위해 날짜 바꾼 진단서 재차 변조, 처벌되지 않는다.

 

사족: 이미 변조한 문서는 적법한 문서가 아니므로 다시 변조해도 변조죄로 처벌할 수 없음은 전술한 바와 같다. 그러나 안심할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하여 학교의 학사출결업무가 방해된 경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형법제137조)로 처벌된다. 변조는 프로필 사진까지가 좋다.

 

남기엽 변호사대법원 국선변호인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남기엽 변호사
대법원 국선변호인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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