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 잃은 가장의 ‘나홀로 4년 투쟁기’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9 10:00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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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16년 ‘부산 싼타페 참변’ 그 후…1심 판결도 아직
유가족 최씨 “함께 슬퍼할 사람 하나 없다는 게 가장 힘든 일”

소풍을 가던 중이었다. 휴가를 맞아 부산에 있는 친정을 찾은 아내는 장인과 장모, 3세, 3개월 된 두 아들과 함께 30분 거리 해수욕장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빠”를 부르며 찾는 큰아들의 동영상도 보내왔다. 남편 최아무개씨도 퇴근 후 곧장 가족에게로 갈 참이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청천벽력 같은 사고 소식에 최씨가 달려간 곳은 바닷가가 아닌 병원이었다. 먼저 도착해 있던 손위 처남은 최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주저앉았다. “사고 소식과 동시에 가족들을 병원 세 곳에 나눠 이송했다는 말을 들었다. 가볍게 다쳤으면 한 병원으로 보냈을 텐데, 불길했다.” 어느 병원을 먼저 가야 할까. 그는 장인과 큰아들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장인은 중상, 큰아들은 병원으로 오는 길에 사망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무너질 틈도 없었다. 이내 다른 병원에 있던 장모와 아내, 둘째 아들의 사망 소식도 연이어 전해졌다. “슬픔을 같이 나눌 사람 하나 없이 모두 데려가 버렸다.” 2016년 여름, 이 비극으로 최씨는 혼자가 됐다. 이후 4년 넘게 그날의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긴 싸움을 하고 있다.

2016년 8월 사고로 부서진 싼타페 차량. 나들이를 가던 최씨의 아내와 두 아들, 장모가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

“의료사고 집도의에게 부검 맡긴 격”

이 사고는 이내 ‘현대차 급발진 사망 사고’ ‘부산 싼타페 급발진 사고’ 등의 이름으로 전국에 알려졌다. 최씨를 포함한 유가족들은 차량 급발진을 사고 원인으로 지목했다. 녹화된 블랙박스에도 “차가 왜 이러지. 아이고”라는 운전자 장인의 다급한 음성과 함께, 도로에 주차돼 있던 트레일러를 들이받기까지 질주하는 영상이 고스란히 담겼다.

차량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겨졌다. 결론은 ‘파손에 따른 감정 불가’. 국과수는 분석을 위한 인력과 기술이 부족하다며 차량 제조사인 현대차와 합동조사를 벌이겠다고 알려왔다. 사고 후 제대로 한 번 울지도 못 했던 최씨는 이때 무너졌다고 말한다. “사고 차량 제조사가 직접 조사를 한다니, 이건 의료사고 집도의에게 피해자 부검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경찰은 이 국과수 결과를 바탕으로 아버님(장인)을 운전 실수 등 과실 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무혐의로 결론 났지만, 이 시기 남은 가족들의 트라우마는 극에 달했다.” 택시기사 경력도 있는 운전 베테랑(장인)이 도로를 질주하는 내내 브레이크와 액셀을 혼동했다는 경찰의 입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당시에도 쏟아졌다.

최씨는 그때부터 펜을 들었다. 자동차의 원리를 파헤치고 관련법들을 살펴봤다. 4시간이 넘는 기자와의 인터뷰 동안에도 최씨는 차량의 메커니즘과 관련 현행법 등 사건과 관련해 막힘없이 설명했다. 재판부와 변호사는 물론, 이젠 웬만한 관련 종사자들 못지 않았다.

“우리나라 법이,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도록 돼 있다. 특히 급발진 사고는 제대로 밝혀진 전례도 없다. 모든 게 처음 가는 길이었다.” 현행법상 여전히 제조물의 결함에 대한 입증 책임은 제조사가 아닌 소송을 제기하는 피해자에게 치중돼 있다. 피해자가 사고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에 접근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이 때문에 그동안 급발진 신고가 연간 수십 건씩 들어왔음에도 제조사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 등 외국의 경우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조사가 원인을 밝히지 못하면 피해자에게 배상토록 하고 있다.

“싸우기 위해 내가 사고 현장에 없었던 건 아닐까”

사고 직후부터 인터넷 자동차 커뮤니티 등엔 연료 ‘누유’로 인한 급발진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다수 올라왔다. 해당 글들과 최씨의 설명에 따르면, 디젤 차량 내 고압펌프의 결함(볼트 풀림 현상)으로 연료가 새어 나와 엔진오일과 섞이면서 문제는 시작된다. 연료가 섞인 엔진오일이 연소실로 유입되면서, 브레이크를 밟거나 시동을 꺼도 엔진 급가속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고 차량 운전자였던 최씨의 장인 역시 사고 당시 차량 계기판의 rpm(엔진 회전수)이 최고치까지 올라갔다고 주장했다.

사고 이듬해인 2017년 7월 최씨 등 유가족은 현대차와 부품 제조사 로버트보쉬코리아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처음엔 모두가 소송하지 말라고 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홀로 싸움을 치러야 하니까. 그래도 밀어붙였다. 이 일을 하기 위해 내가 그날 사고 현장에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해 12월 첫 공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년여간 총 8번의 공판이 진행됐다. 공판에 빠짐없이 참석해 온 최씨는 매 순간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다고 말한다.

사고가 난 후 1년여는 진상규명에 속도가 붙는 듯했다. 여러 언론에서 연달아 보도하며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국회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최씨 가족과 유사한 사고를 경험한 피해자들을 위해 간담회도 열렸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 개정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고 당시를 재현하기 위한 정밀 모의실험도 전문가들에 의해 실시됐다. 유가족 측의 의뢰로 사고 차량과 동일한 모델 및 환경을 설정해 실험한 결과, 사고 당시와 마찬가지의 심각한 급발진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소송전에서 최씨 측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결과였다.

특히 사고가 나고 얼마 지나 현대차 공익제보자가 박용진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공개한 내부 문건은 막막하기만 했던 최씨와 유가족들에겐 큰 힘이 됐다. 현대차 리콜 담당 부서에 근무하던 제보자가 공개한 2015년 내부 회의록에는 문제의 고압펌프에 대해 관계자들이 모여 논의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고 차량에서 나타났던 볼트 풀림 문제에 대해 “수리비용 및 운행 중 사고 등 안전상 심각한 품질 문제”라고 적시한 문구도 포함돼 있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리콜’이 아닌 ‘무상수리’를 결정한 정황 또한 담겨 있었다. 현대차에선 사고가 나기 몇 해 전부터 내부적으로 피해자 측이 주장하는 차량의 결함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9월25일 경남 창원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동안 최씨가 설명하며 적은 메모 일부. 최씨는 사고 진상규명을 위해 자동차의 메커니즘과 관련법들을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사고 정황을 잊지 않기 위해 틈틈이 기억을 되짚었다. 4시간이 넘는 대화 동안 최씨는 사고 일지와 원인에 대해 막힘 없이 설명했다. ⓒ시사저널 구민주

일상의 붕괴, 그럼에도 싸우는 이유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 오랜 싸움의 과정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첫 공판에 쏠렸던 시선은 점점 줄어들었고 정치권에서의 논의 역시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최씨 역시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에서 자주 한계에 부딪혔다. “1심 4~5년, 항고심 3년에 대법원 판결 2년으로 잡아도 족히 10년이다. 맘 같아선 1심 결과만 나오면 끝을 내고 싶다. 항소까지 달릴 기력이 없다. 지난 4년 버틴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겨야 하지만 승소를 해도 걱정이다.” 1심 판결은 이르면 내년 초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고가 있기 전까지 번듯한 조선업계 회사에 다니던 최씨는 이후 소송전에 필요한 자료를 모으고 때마다 공판에 참석하느라 한곳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다. 그는 “부동산 일도 잠깐 했고, 보험 관련 일도 좀 했었다. 친척 일을 좀 돕다가 지금은 잠시 일을 쉬고 있다. 소송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진득하게 한곳에 소속돼 월급 받는 일을 하진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괜찮은 듯하다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감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최씨는 “지인에게, 변호사에게 또는 언론에 이렇게 사고에 대해 얘길 하고 나면 그 후 연이틀은 아무 일도 못 한다. 가족들 역시 상처가 여전하다. 우리 어머니는 요즘도 내가 전화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이 고통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심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마음을 잡기 위해 못 할 게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처럼 사고의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블랙박스 사고 영상 등 보고 싶지 않은 자료들을 수도 없이 들춰보며 때마다 업데이트하는 이유다.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라는 최씨는 그럼에도 이 긴 소송전의 끝을 보려 한다. “사고가 난 차량과 동일한 모델이 여전히 길거리에 수만 대 다니고 있다. 낮은 확률이겠지만 또 비슷한 사고가 발생하면 어쩌나. 우리 사고로 이미 4명의 생명이 떠났는데 얼마나 더 죽어야 리콜을 할까. 내가 여기서 덮어버리고 놓아버릴 수 없는 이유다.” 마땅한 전례도 기준도 없는 차량 급발진 논란의 의미 있는 선례를 남기는 것. 최씨에겐 금전적 보상만큼 중요한 싸움의 목적이다.

급발진 피해 신고 건수는 최근 감소하는 추세지만 해마다 꾸준히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급발진 사고의 경우 한 번 발생하면 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제조사의 입증 책임을 좀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편 최씨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현대차 측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선 어떤 얘기도 해 주기 어렵다”며 재판 준비 및 향후 계획 등을 묻는 질문에 짧게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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