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연예인∙기업이 투자한 암호화폐, 사기·횡령 의혹 불거져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12.23 08:00
  • 호수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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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 W재단 이사장 주도한 암호화폐 WGP 둘러싼 논란…4월 거래소 상장폐지 밝혀져

30대 젊은 사업가로 연예계와 정·재계에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욱 W재단 이사장. 최근 그를 둘러싼 사기·횡령 의혹이 불거졌다. 4000억원대 규모의 암호화폐가 상장폐지됐는데,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사업을 내세워 판매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W재단의 공금을 암호화폐 관련 사업에 쓴 내용도 포착됐다. 이 이사장은 지난 8월 가수 벤과 결혼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W재단은 2018년 10월 암호화폐 ‘W그린페이(W Green Pay·WGP)’ 공개 판매에 나섰다. 공개 판매는 암호화폐 발행사가 외부 투자자를 상대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다. 당시 W재단이 예고한 초기 WGP 판매량은 2억 개. 개당 설정 가격은 2달러로 총 4억 달러(약 4340억원)어치다. 여기에는 다수 연예인과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등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W재단은 자연재해 난민 구호를 목적으로 2012년 출범한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이 이사장이 친누나인 이유리 W재단 대표와 공동 설립했다.

2018년 4월26일 국회에서 W재단이 주최한 행사. 이를 공동 주최한 임종성 민주당 의원(가운데) 측은 W재단에 대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지 몰랐다. 같이 활동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임 의원 좌우로 이유리 대표와 이욱 이사장 ⓒ뉴시스

의혹① 화폐 유통?…쿠코인 거래소 상폐 결정

WGP는 2018년 12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후오비코리아에 상장됐다. 지난해에는 글로벌 거래소 비트렉스와 쿠코인에 상장됐다. 그런데 쿠코인이 올 4월 WGP 상장폐지를 결정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쿠코인 측은 “(WGP 등이) 특별처리규칙에 따라 자격을 잃어 거래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특별처리규칙에 따르면, 특정 화폐가 기술적 결함을 보이거나 불법 행각에 연루되는 등의 경우에 상장폐지할 수 있다. 쿠코인은 세계 순위 10위권의 대형 거래소다.

암호화폐 발행사는 주식시장 상장사와 달리 상장폐지를 공시할 법적 의무가 없다. 물론 W재단도 상장폐지 사실을 따로 알리지 않았다. 또 거래소 한 곳에서 상장폐지가 됐다고 해서 유통이 완전히 막히는 건 아니다. 후오비코리아와 비트렉스에는 여전히 WGP가 상장돼 있다. 하지만 현재 WGP의 거래량은 ‘0’이다.

가격도 곤두박질쳤다. 전 세계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을 보면, 지난해 6월 개당 0.4달러(약 430원)였던 WGP 가격은 올 12월 들어 0.004달러(약 4원)로 그야말로 폭락했다. 하락률이 90%다. 투자자들의 큰 손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은 시사저널에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노코멘트 하겠다”고 했다.

W재단은 원래 WGP를 총 10억 개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공개 판매분 외에 20%(2억 개)는 ‘후시(HOOXI)’란 앱을 통해 공급할 계획이었다. 이 앱은 이 이사장의 누나인 이 대표가 이끄는 별도 영리법인 WGI코리아가 개발했다. 후시 앱에서 이용자가 ‘외출 시 전기 플러그 뽑기’ ‘머그컵으로 커피 마시기’ 등 친환경 미션을 수행하면 포인트를 받게 된다. 다른 사람의 미션을 평가해도 포인트를 딸 수 있다. 이렇게 쌓은 포인트는 나중에 WGP로 보상받을 수 있다.

WGP 보상을 위해 W재단이 내세운 개념은 탄소배출권이다. W재단은 후시 앱 이용자들이 친환경 미션을 수행해 줄인 온실가스 감축량을 제시해 탄소배출권을 부여받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이를 거래해 WGP를 사들인 뒤 이용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에선 2015년부터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한국거래소에서 거래하고 있다. W재단은 백서를 통해 “개인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모아 정부로부터 탄소배출권 교환 허가를 받기까지는 앱 출시 후 최대 1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시 앱은 2018년 12월 출시됐다.

의혹② 사업 실현성?...“배출권 거래 불가능”

2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환경부 기후경제과 관계자는 “재단이 탄소배출권을 거래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관련법에 의하면, 탄소배출권의 할당 대상은 일정 기준 이상의 온실가스를 내뿜는 업체로 규정돼 있다. 단 개인의 에너지 절약 실적을 포인트로 환산해 현금·상품권·기념품 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탄소포인트제)은 있다. 그러나 포인트로 탄소배출권을 살 수는 없다.

환경부 관계자는 “개인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계량화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후시 앱 이용자가 친환경 미션을 인증했다고 해도, 진짜 이를 이행했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주호 변호사는 “이행 불가능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암호화폐 판매 대금을 챙겼다면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후시 앱 자체도 활성화돼 있지 않았다. 시사저널이 12월14일 앱에 가입해 미션 평가를 20번 정도 해 봤다. 10포인트를 얻었다. 단숨에 전체 포인트 랭킹 59위를 기록하더니 ‘상위 5%’에 들었다. 가입한 지 1분도 안 돼 이룬 성과다. 앱을 둘러보니 친환경 미션을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이용자는 약 10명에 불과했다.

후시 앱 운영에 대해 이 이사장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거듭 말했다. 탄소배출권 거래의 실현 가능성에 관해선 “방법론에 어려움이 있을 뿐이지 기술 발전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적으론 힘들지 몰라도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선 우리의 아이디어에 대해 개방적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단 “정부와는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의혹③ 재단 통해 화폐 보유?…“횡령 소지”

W재단은 후시 앱 등의 개발을 위해 재단 공금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홈택스에 공시된 공익법인 결산서류에 따르면, W재단은 ‘글로벌 자연보전 공익캠페인’ 사업에 2019년 7710만원, 2018년 3억430만원을 썼다. 이 사업에는 ‘후시 앱 출시·구축’이 포함돼 있다.

후시 앱은 WGP의 통용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W재단은 “WGP는 후시 앱 이용자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대한 보상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시 앱이 WGP 지갑처럼 쓰일 것”이란 주장도 곁들였다. 동시에 W재단은 WGP 총 발행량 중 20%(2억 개)를 발행사가 갖도록 했다. 발행사는 싱가포르에 소재지를 둔 ‘W 글로벌 인베스트먼트’란 곳이다. W재단의 파트너사라고 하지만 이곳도 이 대표가 이끌고 있다. 즉 재단이 앱을 만들고, 협력업체가 이와 관계된 암호화폐를 발행한 뒤 일부를 챙겼는데, 두 곳의 대표가 동일 인물인 셈이다.

블록체인 업계 출신의 P소트웨어 업체 법무팀장(변호사)은 “W재단과 W 글로벌 인베스트먼트의 계약 내용에 따라 횡령 소지가 불거질 수 있다”고 봤다. 또 “W 글로벌 인베스트먼트가 이유리 대표 개인 회사인지 여부와, 회사가 보유한 암호화폐가 어디로 얼마만큼 빠져나갔는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투자자에게 암호화폐를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는 게 밝혀지면 불완전판매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단 이 이사장은 “후시 앱은 WGP의 발행 근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 기자가 12월14일 후시 앱에 가입해 1분 안에 기록한 성적. 10포인트를 얻었는데 상위 5%에 들었다.

의혹④ 정·재계 연관?...“화폐 발행 몰랐다”

W재단은 사업 홍보를 위해 정치권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2017년 12월 국회에서 ‘대국민 온실가스 감축운동 선포식’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 우원식·조정식·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2018년 4월에도 국회에서 ‘대국민 온실가스 감축운동 위원회 발대식’을 열었다. 여기엔 당시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해 추미애 민주당 대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 김은경 환경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가수 인피니트도 홍보대사로 얼굴을 비쳤다.

이들 행사는 모두 임종성 민주당 의원과 공동 주최했다. 임 의원실 관계자는 “환경 캠페인이란 취지에 공감해 행사만 같이 주최했을 뿐 실제로 같이 활동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W재단이 암호화폐를 발행하는지 몰랐고 관련된 언급조차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한 달 뒤인 2018년 5월 WGP 출시 소식이 알려졌고, 국회 행사는 WGP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당시 행사 후원사 중에는 롯데홈쇼핑도 포함돼 있었다. 롯데홈쇼핑은 W재단이 암호화폐 발행 계획을 밝힌 2018년 1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암호화폐의 연관성은 몰랐다”면서 “W재단에서 후원 요청이 들어왔기에 공익성만 보고 기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W재단과 인연을 맺은 기업들은 그 외에도 더 있다. 2018년 한 해 동안 LG전자·NH농협생명·NH투자증권·안국약품 등 대기업 및 중견기업이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의류 제조업체 블랙야크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 9억4000만원 상당의 물품과 현금 등을 기부했다. 단일 기업으로선 최다 액수다.

블랙야크 관계자는 “환경 분야 지원을 같이 할 파트너를 찾다가 이 이사장을 만나 W재단의 존재를 알게 됐다”며 “좋은 기사도 많이 나고 공신력 있는 인사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아 믿게 됐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오로지 공익 목적으로만 기부했고 암호화폐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YG그룹은 W재단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YG엔터테인먼트는 2017년 W재단에 1억원을 기부했다. 또 계열사 YG인베스트먼트가 2018년 8월 WGP 투자를 결정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투자 규모와 배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YG 관계자는 “답할 의무는 없을 것 같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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