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와 K드라마의 행복한 동거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8 12:00
  • 호수 16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측의 전략 맞아떨어진 결과…넷플릭스 하청업체 전락 우려도

이제 넷플릭스는 우리네 콘텐츠 소비에서 일상적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K드라마가 글로벌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도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무엇이 이런 시너지를 만들어낸 것일까. 

개화기를 배경으로 의병 활동을 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 션샤인》에 넷플릭스가 투자했을 때 우리네 드라마는 어쩌면 개화기를 맞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간 로컬에 머물렀던 우리네 드라마의 소재는 가족이나 멜로, 사극이 대부분이었다. 의학 드라마나 범죄 드라마 같은 우리 식으로 해석된 장르물들이 이제 막 태동하고 있었다.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을 통틀어 제작비가 430억원에 달하는 《미스터 션샤인》 같은 작품을 독자적으로 제작하기는 불가능했다. 이를 가능케 한 건 넷플릭스의 200억원 넘는 투자 덕분이었다. 냉정한 이야기지만 드라마도 제작비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다. 어느 정도 규모 이상의 드라마는 제작비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미스터 션샤인》은 제작 규모만으로도 우리네 드라마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지평들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회당 12억원에서 15억원이 투입된 《킹덤》 역시 넷플릭스의 지원이 있었기에 제작이 가능한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네 드라마만 일방적으로 받는 혜택이 아니었다. 넷플릭스 역시 《킹덤》 같은 독특한 소재의 ‘조선 좀비물’로 제작비 정도는 간단히 상쇄할 만큼 효과가 있을 거라 예측했고, 그건 실제로 현실화되었다. 《왕좌의 게임》이나 《프렌즈》 한 편 제작비가 무려 80억원, 110억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큰 가성비 투자를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로컬을 글로벌화하겠다’는 넷플릭스의 전략과 맞아떨어졌다. 조선이라는 차별화된 시공간 위에 좀비물이라는 보편적인 장르를 더함으로써 《킹덤》은 로컬과 글로벌이 적절히 조화된 한국형 장르물의 신기원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넷플릭스가 전 세계 곳곳의 지역 콘텐츠들을 발굴하고 투자함으로써 글로벌한 호응과 회수를 꾀하는 데 안성맞춤인 작품의 형태가 아닐 수 없었다. 

넷플릭스 웹 드라마《스위트홈》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한국형 장르물의 탄생 

지난해 말 방영을 시작한 《스위트홈》 역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총 300억원을 투자해 제작된 《스위트홈》은 그간 제작 규모나 장르적 이질성 때문에 한국 드라마가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크리처물’을 현실화한 것이었다. 욕망에 따라 괴물이 되기도 하지만 그걸 억제해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기도 하고, 나아가 괴물 중에서도 착한 괴물과 나쁜 괴물이 나눠지는 이 독특한 세계관을 가르는 건 다름 아닌 ‘가족’ 개념이다. 《스위트홈》이라는 제목에 담겨 있듯이 크리처물에 깊이 배어든 가족 코드는 이 작품이 ‘한국형 크리처물’이라는 색다른 지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가 됐다. 바로 이런 장르의 보편성 속에 깃든 한국적 정서라는 차별점은 여지없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과 맞아떨어졌고 글로벌한 반응들을 이끌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K드라마가 그간 가지 못한 지대를 탐험한 것은 투자 측면만이 아니었다.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성격이 그 위에 얹어지는 우리네 드라마의 소재나 표현 수위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킹덤》은 애초 국내에서는 돈이 있다고 해도 제작이 꺼려질 수밖에 없는 장르다. 좀비 장르가 익숙지 않은 데다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그간 지상파 플랫폼들이 구축해 온 사극의 틀과 부딪히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달랐다. 이미 《워킹데드》 같은 좀비물로 글로벌한 마니아 팬덤을 갖고 있는 이 플랫폼에 《킹덤》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재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이 플랫폼의 특성이 달랐기 때문에 《킹덤》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방영되어 큰 화제가 됐던 《인간수업》도 마찬가지다.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지만 성매매 소재가 들어간 이 작품은 19금 콘텐츠로 넷플릭스였기에 제작 가능한 작품이었다. 《스위트홈》 역시 제아무리 성공한 웹툰 원작이라 해도, 크리처물이라는 장르는 우리네 기성 플랫폼과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 《킹덤》이나 《인간수업》 《스위트홈》 등은 그래서 넷플릭스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이면서 동시에 지금껏 기성 플랫폼들이 수용하지 못했던 우리네 드라마의 새로운 도전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그것은 제작비 규모가 달라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기도 하다. 로컬과 글로벌을 연결시킨 이 플랫폼은 그래서 우리네 드라마에도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을 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여는 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올해 넷플릭스의 K드라마 투자금액, 지난해의 두 배 이상 

넷플릭스의 K드라마 투자는 올해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먼저 《킹덤》의 스핀오프라 할 수 있는 《킹덤: 아신전》이 시즌3 전 스페셜 에피소드로 제작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공유·배두나 주연의 SF 호러 장르 《고요의 바다》도 제작되고 있다. 2019년 방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천계영 작가 원작의 《좋아하면 울리는》 시즌2나, 주동근 작가의 웹툰 원작인 좀비 학원물 《지금 우리 학교는》, 연상호 감독의 《지옥》,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을 소재로 한 《오징어 게임》 등도 방영될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올해 한국 콘텐츠 확보를 위해 투자하는 금액은 8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금액은 작년 투자금액 3331억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그만큼 넷플릭스가 K콘텐츠 투자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방증하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 콘텐츠들도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얻는 이익이 적지 않다. 그간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들이 개척되고, 글로벌한 K콘텐츠에 대한 인지도를 높여주는 데다,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과 더불어 제작자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콘텐츠 소유권이 온전히 넷플릭스에 귀속되는 부분이다. 마치 우리 콘텐츠들이 넷플릭스의 하청업자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만든다. 또 《킹덤》이나 《스위트홈》처럼 대박을 내는 콘텐츠라 해도 그에 따른 인센티브가 없다는 점도 제작자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다. 

이미 열린 글로벌 시장 속에서 이제 로컬에 머무르는 건 우리네 콘텐츠들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 새로운 변혁의 시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게 앞으로 도래할 글로벌 콘텐츠 시대에 도태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콘텐츠들이 종속적인 관계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네 글로벌 OTT 육성이나 국내 제작사들이 만들어낸 자체 IP의 소유권을 어떻게 글로벌화 과정에서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야 지속적인 K콘텐츠의 도전과 성장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