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 같다” 계속되는 ‘사찰 입장료’ 부당징수 논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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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32년만에 입장료 폐지 지리산 천은사 가보니…인근 화엄사에선 문화재 관람료 통행세화 ‘여전’
관광객 “매표소, 사찰 입구에 세워라”

최근 전북 정읍 내장사에서는 한 수행승이 “함께 생활하던 스님들이 서운하게 했다”면서 불을 질러 대웅전이 전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불교계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은 또 다른 불편한 진실인 사찰 문화재 관람료 부당징수 논란으로 향하고 있다. 관광객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과연 사찰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적절한 가에 대한 의문에서다.

 

내장사 대웅전 화재, 문화재 관람료에 불똥

9일 오후 전남 구례군 지리산 자락 천은사 산문 입구. 문화재 입장료를 폐지한 이후 검문소 같은 칙칙한 매표소가 사라지고 차들이 2차선 도로를 거침없이 달렸다. 며칠 전 천은제 수변 데크길·숲길 등 탐방로가 공식 개방되면서 주변 포켓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수변 경치를 감상하는 관광객들이 꽤 눈에 띄었다. 인근 동네 주민들은 간편한 복장으로 나와 애완견과 함께 산책을 즐겼다. 

간혹 천은사 주변 ‘묵언의 길’을 걸으며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진다는 박아무개(56·순천시 서면)씨는 천은사 산문 입장료 징수 당시를 술회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불과 3년 전만해도 성삼재를 지나 노고단에 오르려면 천은사를 둘러보지 않더라도 통행세 명목으로 입장료를 내야했다. 그때 부당한 입장료 징수뿐만 아니라 교통지체와 함께 건강한 체격의 남자 매표원들에게 차 안의 사생활까지 검문당하는 느낌이 들어 많이 언짢았다.”

논란이 됐던 천은사 문화재관람료는 징수 32년 만인 지난 2019년 4월 폐지됐다. 당시 천은사는 도로가 사찰경내를 통과한다는 이유로 등산객들에게 1600원의 관람료를 받았다. 매표소가 위치한 지방도 861호선은 지리산 노고단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도로다. 이에 천은사를 방문하지 않으면서 이 도로만 이용하는 탐방객들의 ‘부당징수’라는 불만과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구례 화엄사 매표소 ⓒ시사저널 정성환
구례 화엄사 매표소 ⓒ시사저널 정성환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천은사 입장료 폐지 

이와 관련, 소송까지 제기됐지만 폐지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3년 광주고법에서 통행의 자유 침해로 불법행위라는 판단을 내렸다. 2015년 대법원은 등산객을 사찰관람자로 취급해서 관람료를 징수하면 안 된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사찰 측은 계속 버티다가 2019년 4월 폐지에 합의했다. 천은사가 입장료를 폐지하면서 얻은 이익도 상당하다. 천은사는 산문 개방 후속 조치로 2019년 4월 환경부·문화재청·전남도·구례군 등 8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운영기반 조성사업이 추진됐다.

사업추진 1년만인 3월 6일 오전 천은사 현장에서는 마침내 운영기반 조성 공사와 탐방로 정비 사업 준공식이 열렸다. 천은사 운영기반조성사업은 문화재청이 문화재 보수사업을, 환경부는 천은제 주변 수변 데크길·숲길 등 탐방로 조성을, 전남도와 구례군은 찻집·휴게소 리모델링을 지원해 이뤄졌다. 전남도는 “지역사회 상생협력 모델이 됐다”고 평가했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 천은사의 문화재 관람료 폐지는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곳에서 2km 남짓 떨어진 구례 화엄사 매표소 입구. 앞서 박씨가 언급했던 3년 전 천은사 산문 입구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오후 4시 35분쯤 하얀색 중형 승용차에 함께 탄 3명의 탐방객들은 매표소 직원과는 차창을 사이에 두고 1인당 3500원씩을 합한 총 1만5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마치 불만을 토해 내듯 화엄사 경내로 쏜살같이 들어갔다. 

구례 화엄사가 연간 걷어 들이는 입장료는 11억~12억원 수준이다. 신영진 지리산화엄사 매표소장은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한 입장객 격감 탓에 올해는 입장료 수입이 전년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신 소장은 “종종 막무가내로 입장료에 시비를 거는 관광객들이 있어, 설득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여전히 받는 국립공원 내 사찰은 총 23곳

문화재 입장료 징수는 비단 이곳 뿐만 아니다. 호남의 내장산 내장사, 백암산 백양사, 월출산 도갑사, 변산 내소사와 설악산 신흥사 오대산 월정사 등 들어본 적 많은 국립공원 전통사찰들이 지금도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다. 2019년 기준 국립공원 내 문화재관람료 징수 사찰은 총 23곳이다. 국립공원 안에 있으면서도 관람료를 받지 않는 곳은 4곳으로 덕유산 백련사·안국사, 설악산 백담사, 그리고 지리산 천은사 등이다. 국립공원이 아닌 사찰이 등산로 입구에서 징수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전국적으로 60곳이 넘는다. 징수비용은 적게는 1000원부터 많게는 5000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매표소는 대부분이 국립공원 입구 혹은 등산로 입구에 있다. 그러다보니 순수하게 등산을 하는 사람들도 문화재관람료를 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전북 정읍 내장산국립공원은 관광지로 등산은 물론 내장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만 해도 3km 전방 공원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어김없이 내야 한다. 지난 6일 오후 내장산 집단시설지구에서 만난 김아무개(여·53)씨는 이런 불교계의 행태에 대해 “현대판 산적 같다”고 했다. 관광객들은 “그렇게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싶으면 매표소를 등산로 입구가 아니라 사찰 입구에 세워서 사찰에 들어가는 사람한테만 받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남 구례 천은사는 지난 2019년 산문개방 후속조치로 운영기반 조성 및 탐방로 정비사업을 완료, 6일 준공식을 열었다. 준공식에는 김영록 도지사와 서동용 국회의원, 화엄사 주지, 천은사 주지 등 천은사 입장료 폐지 업무협약에 참여했던 8개 기관 50여 명이 참석했다. ⓒ전남도
전남 구례 천은사는 지난 2019년 산문개방 후속조치로 운영기반 조성 및 탐방로 정비사업을 완료, 6일 준공식을 열었다. 준공식에는 김영록 도지사와 서동용 국회의원, 화엄사 주지, 천은사 주지 등 천은사 입장료 폐지 업무협약에 참여했던 8개 기관 50여 명이 참석했다. ⓒ전남도

사찰 측 “법에 따른 정당한 징수...일방적 매도 억울”

물론 문화재관람료 징수는 합법이다. 문화재보호법 제49조에 문화재 소유자가 시설을 공개할 경우 관람료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서다. 이 법을 근거로 불교계는 전통사찰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니까 그에 따른 시설 개보수 비용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한다. 특히 사찰 측은 소유한 땅이 국립공원에 편입되면서 재산권 행사 제한 등 피해를 입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도 일방적으로 매도당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관람료 논란의 핵심은 사찰의 재산상 불이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찰에 가지 않는데도 돈을 내야 하는 국민들이 겪는 억울함에 있다는 지적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사찰의 재산권 문제는 별개의 사항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이중징수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사찰 수리와 방제, 방법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국가예산은 이미 투입되고 있어서다. 시민단체는 “정부에서 지원받고, 시민들에게 또 받는 이중징수다”고 반발하고 있다. 2017년 문화재청이 전통사찰 유지보수 비용으로 집행한 예산은 47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는 102개 사찰을 보수하는 데 121억원, 49개 사찰에 방재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48억원, 560개 사찰 방재시스템 유지에 25억원 등 총 194억원을 지원했다.

참여연대는 “2003년과 2013년 대법원은 문화재 관람 의사가 없는 시민들에게까지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사법부의 판단마저 무시한 채 여전히 부당한 통행료를 징수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조계종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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