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 시장만 100조원…K웹툰 新한류을 이끌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1.03.16 14:00
  • 호수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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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에서 시작해 영화․드라마․게임 등으로 무한대 증식…잠재 시장만 100조원대

K웹툰이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신(新)한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0 만화산업 백서’에 따르면 웹툰시장 규모는 7조원 수준이다. 기존의 종이 만화책을 디지털 버전으로 추산한 수치다. 하지만 모바일 콘텐츠로 가치를 다시 환산하면 잠재 시장은 100조원에 달한다.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웹툰업체들이 최근 해외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다.

국내 포털업계 1위와 2위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먼저 두각을 보이고 있다. 카카오는 2013년 4월 카카오페이지라는 이름의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을 선보였다. 사업 초창기만 해도 실적은 저조했다. 트래픽과 수익이 오르지 않으면서 직원 절반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도입한 콘텐츠가 웹툰과 웹소설이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하루 사용자 수(DAU)와 월 매출액이 크게 증가했다. 그해 11월 카카오페이지는 ‘승부수’를 던졌다. ‘기다리면 무료’라는 서비스를 도입했는데,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24시간 기다리면 웹툰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게 이 서비스의 특징이다. 처음에는 기다리던 사람들이 결국 결제를 하면서 지속적인 재방문과 재구매를 한 것이다. 

이태원 클라쓰ⓒ다음웹툰 제공  

시장 선점 위해 ‘총성 없는 전쟁’ 중

K웹툰의 성공 공식은 일본에서도 통했다. 일본은 만화 강국이다. 최근 일본에서 역대 애니메이션 기록을 갈아치운 《귀멸의 칼날》은 종이책으로만 1억 부 이상 판매됐다. 《원피스》의 누적 판매량은 4억2000부에 달한다. 그만큼 유료 콘텐츠 수요가 탄탄하다는 얘기다.

카카오는 2016년 4월 일본 디지털 만화 플랫폼인 픽코마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좋아하면 울리는》 《황제의 외동딸》 등 한국에서 검증받은 작품들이 현재 일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단순히 단행본을 스캔해 올리는 일본 만화와 달리, 한국의 웹툰은 연재형이고 스토리도 탄탄하다. 여기에 더해 ‘기다리면 무료’ 서비스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추천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단기간에 일본 내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픽코마가 서비스하는 만화 중에서 국내 작품은 전체의 1% 수준이지만 매출은 전체의 40%에 이른다”면서 “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비중이 5% 미만이어서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고 설명했다. 유안타증권은 픽코마와 카카오페이지의 기업 가치를 각각 5조원과 1조9000억원으로 평가했다.

일본 시장에 먼저 진출하고도 ‘픽코마’에 일격을 당한 네이버는 현재 유럽과 미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네이버가 웹툰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4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원 3명의 작은 조직에 불과했다. 포털인 네이버의 트래픽 확보용이었다. 네이버는 2006년 신인 작가 발굴 프로젝트인 ‘도전 만화’ 서비스를 시작해 이른바 ‘대박’을 터트렸다. 

‘도전 만화’는 일반인도 웹툰 작가로 큰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누적 조회 수 70억 건이라는 기록을 세운 《마음의 소리》의 조석 작가도 이때 발굴됐다. 네이버는 2017년 사내 독립기업을 네이버웹툰 주식회사로 분사시켰다. 현재 네이버웹툰은 연간 거래액 8000억원, 글로벌 MAU 6700만 명의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 중이다. 구글스토어의 만화 앱 분야 수익 역시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네이버는 이 ‘도전 만화’ 모델을 ‘Canvas’라는 아마추어 창작 공간 플랫폼을 통해 미국 시장을 두드렸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웹툰 창작 생태계가 형성됐다. 레이첼 스마이스의 《로어 올림푸스》는 북미 누적 조회 수 2억5000만 뷰, 글로벌 누적 조회 수 5억6000만 뷰를 기록 중이다. 2019년 미국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꼽히는 ‘아이즈너 어워드’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네이버 웹툰의 성공 모델이 유튜브와 많이 닮았다고 평가한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2005년 시작된 유튜브는 전 세계 100여 국가에서 80개 언어로 20억 명의 사용자가 매일 1억 개의 비디오를 하루 10억 시간 이상 시청하고 있다. 사용자 창작 동영상의 롱테일 소비, 짧은 콘텐츠, 개인 맞춤형 콘텐츠 추천 등이 유튜브의 장점”이라면서 “네이버 웹툰 역시 아마추어 창작 공간 플랫폼인 ‘Canva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70만 명 규모의 창작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말했다.

유미의 세포들ⓒ네이버웹툰 제공 

한국형 스토리, 해외에서 통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웹툰을 기반으로 드라마와 영화, 게임, 캐릭터 등으로 사업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레진코믹스의 《신의나라》가 원작인 《킹덤》 시리즈는 넷플릭스 방영 후 ‘K좀비’와 ‘갓 열풍’ 등을 이끌어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인간수업》 《이태원 클라쓰》 《경이로운 소문》 《스위트홈》 《승리호》 등도 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18일 공개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의 경우 작품 공개 4일 만에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 11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에서는 한국 콘텐츠 최초로 3위에 랭크됐다. 작품 공개 이후 첫 4주 동안 전 세계 유료 구독 가구는 2200만 곳에 달한다. 모두가 웹툰이 원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BTS로 대표되는 K팝과 K무비, K드라마에 이어 K웹툰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플릭스는 올해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대거 늘려 잡았다. 넷플릭스는 2월25일 열린 ‘시 왓츠 넥스트 코리아 2021(See What’s Next Korea 2021)’에서 2021년 한 해에만 한국 콘텐츠 제작에 5억 달러(약 55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영 넷플릭스 한국·아태지역(일본, 인도 제외) 콘텐츠 총괄 VP는 “넷플릭스는 지금까지 한국 콘텐츠에 약 7700억원을 투자했다. 2021년에도 약 5500억원을 투자해 액션, 스릴러, SF, 스탠드업 코미디, 시트콤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풍성한 한국 오리지널 작품을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이로운 소문ⓒ다음웹툰 제공

영화·드라마·게임으로…웹툰의 진화는 ‘현재진행형’ 

K웹툰은 최근 참신하고 탄탄한 웹툰의 스토리를 발판 삼아 드라마와 영화, 게임 등으로 영역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웹툰 원작 드라마는 2020년까지 80여 편이 제작됐다. 2014년 《미생》이 드라마로 제작된 후 큰 인기를 끌면서 이런 추세는 가속화되는 추세다. 박정서 다음웹툰컴퍼니 대표는 3월5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드라마 제작 때는 걱정을 많이 했다. 만화 캐릭터를 영상화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면서 “다행히 드라마에 맞게 잘 각색을 했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뛰어나 웰메이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에는 웹툰의 중요한 요소를 살리기 위해 원작자와 영상 제작자들이 협업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웹툰 원작 영화는 2020년까지 30여 편이 제작됐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강풀 작가의 웹툰이 주로 영화됐다. 하지만 원작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2013년 개봉한 《은밀하게 위대하게》나 2015년 《내부자들》, 2017년과 2018년 《신과 함께》 시리즈가 큰 히트를 치면서 제작 편수 역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 밖에도 웹툰 기반 게임으로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달빛조각사》와 《여신강림》 《바른연애 길잡이》 등이 출시되거나 출시 예정이다 .

2차 제작물의 성공은 다시 웹툰 원작에 대한 관심 증대로 이어진다. 1차 제작물의 수익이 늘어나는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성공으로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홈》 《경이로운 소문》 등 웹툰이 다시 순위 상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 등 포털뿐 아니라 키다리스튜디오, 디앤씨미디어, 대원미디어 등 기존 웹툰 제작업체들도 지분 투자나 관련 회사 인수를 통해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최근 미국 법인을 통해 웹툰 원천 IP(지식재산권) 확보와 영상화 사업에 본격 나섰다. 이를 위해 영화 《인베이젼》과 《링》의 제작사인 버티고 엔터테인먼트와 루스터티스 스튜디어, 바운드 엔터테인먼트 등과 파트너십을 맺었다. 카카오페이지 역시 마블 시리즈처럼 ‘IP 유니버스’ 구축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디앤씨미디어를 포함해 국내 CP사나 해외 플랫폼 업체들을 인수하거나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

윤창민 신한금융투자 수석애널리스트는 “1차 제작물인 웹툰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유료 결제와 광고 등으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원 소소 멀티 유즈’ 전략으로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이고, 게임이나 캐릭터로 확대할 경우 수익 확장에 한계가 없어지는 만큼 관련 업계의 합종연횡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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