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백신 바꿔치기’ 논란, 해프닝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3.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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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설명에도 의혹 확산하며 의료진 협박까지
근거없는 백신 공격에 의료진·방역 모두 ‘위태’
3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건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건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각종 논란이 급기야 '바꿔치기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23일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접종 직전 약물을 바꿔치기 해 실은 다른 종류의 백신을 맞았다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온라인 게시물을 통해 제기된 주장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 했지만, 각종 커뮤니티와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졌고 결국 경찰 수사로까지 확대됐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이번 '사건'이 논쟁이나 공방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백신 바꿔치기 의혹을 제기한 게시물 작성자와 일부 단체, 유튜버 등이 백신 안전성과 방역을 고의적으로 폄훼하려 했고 급기야 의료진 협박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강경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최전선에 섰던 의료진은 의학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바꿔치기 의혹으로 졸지에 범죄에 협력한 존재가 돼버렸고, 현장에서 협박·막말에 더해 국민적 불신까지 상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백신에 대한 거듭된 공격은 집단면역 도달을 늦추고, 결국 그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엄중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방역당국 설명에도 근거없는 의혹 '일파만파'

백신 바꿔치기 의혹은 지난 23일 문 대통령 부부가 백신 접종을 맞은 당일 오후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작성자는 '캡 열린 주사기로 주사약 뽑고 파티션 뒤로 가더니 캡이 닫혀 있는 주사기가 나오노'라는 내용의 글과 영상을 게시했다. 가려진 파티션에서 간호사가 주사기를 바꿔치기 해 AZ 백신이 아닌 다른 종류의 백신을 문 대통령에게 놨다는 취지다. 

이후 해당 게시글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급속도로 번졌다. 정부가 그간 AZ 백신 안전성 논란에 거듭 '문제없다'고 밝히며 국민을 안심시켰지만 정작 문 대통령은 AZ가 아닌 다른 백신을 맞았다는 '설'이 '사실'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질병관리청은 의혹에 대해 "예방접종 시 주사기 바늘에 다시 캡을 씌웠다가 접종 직전 벗기고 접종한 것은 분주(주사액을 주사기별로 옮김) 후 접종 준비작업 시간 동안 바늘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주 후 바로 주사를 놓는 경우도 있지만, 문 대통령 접종 당시엔 촬영으로 인해 분주와 접종 시점 간 시차가 생기면서 오염이 우려돼 캡을 씌웠다는 것이다.

의료계에서도 분주 후 캡을 씌워놓는 등의 행위는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지난달부터 시작된 요양병원 종사자 등을 상대로 한 1차 접종에서 바늘 오염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분주 후 캡을 씌웠다가 주사를 놓는 장면이 포착됐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때 주사기 바늘을 리캡(뚜껑 다시 덮기)한 이후 맞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홍정익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예방접종기획팀장은 "오염 방지를 위해 캡을 씌울 수 있다. 의료인이 오염이 가장 덜 되는 방법으로 작업한 것"이라고 말하며 근거없는 의혹 제기를 경계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방역총괄반장도 정례 브리핑을 통해 "상식적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아마도 의아해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접종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코로나19 백신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월23일 오전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접종한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코로나19 백신 ⓒ 연합뉴스

"의료진 향한 협박 멈춰야"…경찰 내사 착수

방역당국의 적극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문 대통령에 접종을 한 간호사와 종로구 보건소를 향한 협박까지 나오며 예상치 못한 반응이 이어졌다. 

25일 종로구청 등에 따르면, 해당 의혹이 제기된 이튿날 구청과 보건소에는 "불을 지르겠다" "폭파시키겠다" "정부의 거짓 설명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밝히라"는 등의 협박성 전화가 잇달았다. 또 문 대통령이 접종 전 과정이 녹화된 폐쇄회로(CC)TV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의료진 개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종로구 관계자는 "접종을 담당한 간호사(간호직 8급)를 비롯해 여러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며 "보호를 위해 (문 대통령에 백신을 접종한) 간호사를 업무에서 배제했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조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논란이 된 캡을 다시 씌우는 조치 등은 감염 예방을 위한 조치라며, 의료진을 향한 도 넘은 공격과 비방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은미 이화여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날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에게 백신을 놓은 간호사를 향해 양심선언을 하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는 질문에 "그러한 일을 하는 국민들께서는 이번 기회로 안 하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리겠다"고 당부했다.

천 교수는 간호사가 접종 전 캡을 닫았던 것에 대해 "아무래도 대통령께서 접종을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준비나 (오염 방지 등) 조심성 측면에서 뚜껑을 다시 끼운 것이 아닌가 싶다"며 현장 의료진의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간호사가 협박을 받고 있어) 참 안타깝다. 간호사 분께서는 정말 열심히 일을 하셨을 거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여러 안 좋은 협박까지 받고 있다는 점에 대해 같은 의료인으로서 마음이 힘들고 불편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백신 바꿔치기 논란이 확산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통령 주사 맞는 거 갖고 음모론을 펴는 바보들이 있네"라고 직격하며 "음모론 펴는 놈도 미련하지만, 그거 믿는 놈들은 더 멍청하다. 의무교육을 시켜 놓으면 뭐하나. 두뇌구조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경찰은 백신을 둘러싼 가짜뉴스 생산과 의료진에 대한 협박에 엄정 대처할 방침을 밝혔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25일 보건소와 간호사에 대한 협박 행위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내사에 착수했다"며 "협박 등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엄정하게 사법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백신 관련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방역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아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은 경찰청은 대구경찰청을 책임관서로 지정하고, 허위 게시글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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