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쏘아올린 ‘여성 징병제’…실현 가능성 따져보니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4.2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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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군복무’ 대선 주요 의제 되나
합동임관식에서 소위 계급장을 단 신임 장병들의 모습 ⓒ연합뉴스
합동임관식에서 소위 계급장을 단 신임 장병들의 모습 ⓒ연합뉴스

여성징병제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찬반을 두고 거센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젠더 이슈까지 더해지면서 여성징병제는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이를 두고 소모적인 남녀 갈등과 정쟁 등을 경계하며 여성 군복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2만 명을 돌파하면서 여성 군복무 논의에 불이 붙었다. 지난 16일 글을 올린 청원인은 “나날이 줄어드는 출산율과 함께 우리 군은 병력 보충에 큰 차질을 겪고 있다”며 “그 대책으로 여성 또한 징집 대상에 포함해 더욱 효율적인 병 구성을 해야 한다. 여자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여성 징병제 도입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성징병제’ 청와대 청원 12만 돌파

일각에서는 4‧7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이대남(20대 남성)’의 분노가 표면화된 것이라는 반응이지만, 이와 관련된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만큼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할 때가 왔다는 해석도 나온다.

여성징병제 논란에 불을 지핀 건 내년 대선 도전을 선언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그는 지난 19일 발간한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을 통해 ‘남녀평등복무제’를 제안했다. 지원 자원을 중심으로 군대를 유지하되 온 국민이 남녀불문 40~100일 정도의 기초군사훈련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이대남의 표심을 얻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내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의원 뿐만 아니라 최근 김남국 민주당 의원도 전국 지자체 공무원을 채용할 때 군경력을 인정토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기로 했고, 당내 최연소 국회의원인 20대 전용기 의원은 공기업·공공기관 승진평가 시 병역 경력을 반영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박 의원의 여성징병제 도입 주장에 대해 “모병제는 장기적으로 가야 할 목표이나, 현재로써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실현가능성 없는 입술 서비스로 2030 표나 좀 얻어보겠다는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젠더 갈등으로 주목경쟁, 정치장사하려는 ‘(국민의힘) 하태경·이준석 따라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여성징병제에 동의한다는 청원이 12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 가운데 여성계도 여성 군복무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래 전부터 여성계는 여성 군 복무제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9년 7월 18~29일까지 남성 1036명과 여성 9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질문에 여성 53.7%가 동의했다.

19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출간한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 ‘남녀평등복무제’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지난 19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출간한 저서 《박용진의 정치혁명》에 ‘남녀평등복무제’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여성계, 정쟁·젠더 갈등 경계…진지하게 논의해야

여성 운동가 출신이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낸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MBC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남성 중심의 징병제가 여성의 전 삶에 걸쳐, 특히 일자리나 직장 문화와 관련한 성차별의 굉장히 큰 근원이었다”며 “이번 대선 국면에서 모병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여성들의 의지, 모병제 준비 상태, 국제 정세 등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징병제 논의가 정치나 성별간 갈등 문제로 소모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 군복무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여성 징병제 등 여성 군복무 문제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위헌판결을 내리면서다. 그해 12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복무할 수 있다”고 한 병역법 3조1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이후 비슷한 취지의 헌법소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헌재는 합헌 또는 각하 결정을 내렸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여성의 군복무를 현실화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2009년 국방부는 ‘여성지원병(兵)’ 도입을 검토했다. 당시 국방부는 병역자원 부족 등을 이유로 여성지원병제 도입 방안을 검토했고, 2011년까지 검토 작업을 끝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군필자 가산점 제도 추진 논란에 이어 여성 복무 방안 찬반 논란이 거세지자 검토 작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군 당국은 인구 감소로 병역 자원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여성 군복무 제도를 꾸준히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여성 군복무 사례도 거론되고 있다. 여성징병제를 도입한 국가는 북한,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 볼리비아, 차드, 모잠비크, 에리트리아 등 8개국이다. 북한 여군은 7년간 복무한다. 부대에 따라 여군은 10∼3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성 24개월, 남성 30개월을 각각 복무한다. 단, 여성은 결혼과 임신, 종교 등으로 면제가 가능해 실제 전체 여성의 40∼50%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국방부 모습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방부 ⓒ연합뉴스

여성 군복무 둘러싼 뜨거운 찬·반 논란

군 당국은 최근 제기된 여성 군복무제에 대한 여론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날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모든 병역제도를 포괄하는 개편은 안보 상황을 기초로 해야 한다”며 “군사적 효용성이라든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사회적 합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보기 때문에 국방부가 어떤 입장을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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