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광풍’ 잡고 싶으면, 집값을 잡아라 제발”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1.05.06 07:30
  • 호수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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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거래 90%가 변동성 큰 ‘알트코인’…폭탄 방치하는 정부
2030의 ‘영끌’과 ‘빚투’ 행진의 의미 제대로 살펴야

한국 가상화폐 시장에는 하나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알트코인(비주류 가상화폐) 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해외의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세계 최초·최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을 주로 거래한다. 한국의 가상화폐 투자예탁금은 약 4조6000억원(2월말 기준)이다. 1년 전의 6배 수준으로 불어났는데, 거래량의 90% 이상이 알트코인에 몰려 있다.

한국인들이 유독 비트코인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뭘까.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가격 변동성이 시시하다고 여긴다. 한 방에 인생 역전을 꿈꾸기 때문인 걸까. 지금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최소한 하루 수십 퍼센트가 왔다 갔다 하는 알트코인에 더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알트코인의 변동성이 너무 크고, 도박과 비슷한 폭탄 돌리기성 투기가 많아 투자 손실 위험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4월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종합부동산세 등 과 관련해 여당의 부동산 정책 후퇴를 주장하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4월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종합부동산세 등 과 관련해 여당의 부동산 정책 후퇴를 주장하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알트코인의 천국’ 만든 정부의 직무유기

지난주 ‘빗썸’에 상장된 아로와나(ARW)가 대표 사례다. 50원에 상장된 아로와나는 30분 만에 무려 1075배 폭등했다. 100만원을 투자했으면 10억7500만원이 됐다는 얘기다. 이 코인의 거래 차트를 보면 5만3800원까지 올랐던 가격은 4월29일 오후 1시 기준 6000원 선이다. 상투 잡은 청년이 있다면 망한 셈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이런 투기상품이 있었을까. 아로와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가 바람을 넣은 도지코인은 한국의 거래가 전 세계의 65%를 차지한다. 알트코인 중에서도 비주류로 꼽히는 도지코인은 투기성 코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최근 국내 하루 거래액이 코스피를 넘어선 적도 있다.

지금 가상화폐 거래가 이뤄지는 국가 중 이 정도 수준의 투기판이 벌어진 나라는 단연코 없다. 하루 24시간 밤낮으로 악마의 맷돌처럼 쉼 없이 돌아가는 이 도박판에 하루 30조원이 거래되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 10명 중 6명은 2030세대다. 우리 청년 300만 명이 이 도박판을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20대 주식 투자자의 마이너스통장 부채 잔액이 전년 대비 75% 증가했다는 통계가 있었다. 지금 우리 청년들은 빚내서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지는 않을까.

도박장의 승자는 오직 도박장 주인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의 책임은 전적으로 투자자 몫”이라고 외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 4대 거래소 상장 코인은 559개로 일본의 29개, 미국 코인베이스의 58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업비트·빗썸 등 4대 거래소는 매일 100억원대의 수수료를 번다. 정부의 직무유기 속 누군가는 매일 피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2017~18년 가상화폐 1차 폭등 시기 이후 정부가 제대로 제도를 정비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으면서 지금의 도박판이 만들어졌다”며 “지금 우리 가상화폐 시장은 디지털화폐 기술 발달 등과 같은 애초의 목적과 동떨어지고 있다. 어떤 순기능도 없다. 불법적 행위에 남용되는 수준도 심각하다. 정부가 제대로 인프라와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정부가 일을 할 때”라고 지적했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전문가인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한발 더 나간 주장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Ai타임스 기고에서 “지금의 코인은 진정한 디지털 자산의 개발을 방해하는 해악이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지금의 코인을 없애야 비로소 기업들이 진정한 미래의 디지털 자산을 하나씩 개발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고 했다.

 

“코인 광풍은 집값 상승의 풍선효과”

“노력해서 집을 살 수 있으면 도박과 같은 코인에 투자하라고 해도 안 한다. 그러니 집값을 잡아라, 제발.” 시사저널이 만난 한 30대 가상화폐 투자자의 말이다. 왜 2030세대가 도박판과 같은 가상화폐 투자에 목을 매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람만의 이야기일까. 시사저널이 만난 이들은 “집값 상승 속도와 월급이 오르는 속도의 차이에 기가 질렸다” “땀보다 땅의 가치가 빛나는 시대”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정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단순히 투자를 넘어 가히 투기 수준의 가상화폐 광풍이 몰아치고 있음에도 주무부처조차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불법행위 등 각종 부작용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물론 가상화폐 시장의 불안정은 당연히 금융시장을 왜곡한다. 사회적 리스크도 키운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안정성 평가 등 확실한 신뢰 인프라 정비 없이 과세부터 하겠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더 큰 문제, 더 큰 직무유기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질문을 바꿔보자. 지금 수많은 전문가와 언론에서 지적하는 가상화폐 관련 인프라 정비를 정부가 마치면 문제는 정말 해결될까. 그러면 2030세대는 ‘코인 열차’ 탑승을 멈출까. 어쩌면 멈출 수도 있다. 거품이 터지면 코인시장을 떠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풍선효과는 없을까. 주식에서 가상화폐 투자로 옮겨온 것처럼 또 다른 자산상품으로 이동하지는 않을까. 더 중요한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왜 청년들의 ‘영끌’과 ‘빚투’는 멈추지 않는가. 부동산과 주식을 넘어 가상화폐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의 ‘영끌’과 ‘빚투’에는 어떤 목소리, 어떤 절규가 담겨 있을까.

우리 사회는 계속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최근 대한민국을 강타한 ‘코인 열풍’은 그저 드러난 현상이다. 그 현상의 이면에는 어떤 모순적 본질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수십 년간 지속됐던 ‘저축→집→노후’라는 부의 증식 고리는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위기로 드디어 깨졌다. 초저금리와 유동성은 기성세대에게는 자산 증식의 두 번째 기회를 제공했지만, 미래세대 청년층에게는 엄청난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겨줬다. 실제 치솟은 집값 문제 해결에는 ‘세대 간 부의 이동’이라는 중요한 질문이 담겨 있다. 이런 문제 해결은 정부가 해야 한다는 지적이 당연히 제기된다. 그런데 정부는 자꾸 문제 해결을 유예하는 모습이다. 드러난 현상의 뒤꽁무니만 쫓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폭탄은 다시 옆으로 돌려진다. 여기에 정부의 진짜 직무유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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