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우파냐 좌파냐 하는 논쟁은 무의미”
  • 이상헌 팩트경제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1 07:30
  • 호수 16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별의 순간은 오는가》에서 드러난 윤석열의 실체
천준 작가 “그의 한계점은 가족 문제가 아닌 자기 자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삶과 국가관을 다룬 《별의 순간은 오는가》(서울문화사 펴냄)가 6월16일 출간됐다. 저자는 인문학 작가이자 과학기술정책 연구자인 천준 작가다. 그는 경영학과 과학기술 정책을 전공했고, 리더십과 전략적 의사결정을 주제로 다룬 다수의 책을 썼다. 《별의 순간은 오는가》는 살아 있는 사람을 주제로 쓴 첫 번째 책이다.

‘역사 에세이’를 자주 쓰던 그가 현재 가장 뜨거운 정치 인물인 윤석열을 주제로 다루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천 작가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국회가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법적 주체였음에도 정치적 중재, 조정 능력을 상실한 나머지 여야를 막론하고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색다른 정치 인물을 선호하게 되고 장외(場外)에 있는 예비 지도자를 찾게 된다. ‘윤석열 현상’은 전통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국민적 불신에서 나온 국민의 정치적 선택에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6월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첫 공개 행보로 서울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6월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첫 공개 행보로 서울 남산예장공원에서 열린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고 있다.ⓒ시사저널 이종현

‘김기춘의 사위’ 안상훈 교수가 복지 자문

더 나아가 천 작가는 “코로나19 시대의 미디어 정치”를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는다. 과거에는 정당의 조직을 기반으로 한 동원 선거가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각 정당은 온라인 정치 플랫폼으로 핵심 역량을 전환하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에서 나타난 ‘이준석 현상’이라는 이변의 배경에도 코로나19 시대의 미디어 정치가 한몫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현재 별다른 정당 조직 없이 국민의 관심만으로 큰 인물이다. 하지만 “뉴미디어가 정치 판세를 좌우하는 코로나19 시대의 특수성이 없었다면 선풍적 인기의 주인공이 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게 천 작가의 주장이다. 가령 2019년 광화문 집회를 큰 정치적 이벤트로 만들었던 ‘조국 사태’가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음에도, 2020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몰입과 뉴스 민감도 없이 “윤석열 현상은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별의 순간은 오는가》는 윤 전 총장의 정치적 면모를 조명하는 과제도 놓치지 않는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출감 이후 측근을 통해 소회를 전달했다”는 서술이 대표적이다. 이 측근은 김 전 실장의 사위인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전해졌다. 그는 스웨덴 웁살라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 “현금 지급식 복지가 아닌 서비스형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학자다. 다시 말해 현 여권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측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이나 코로나19 사태 당시 활용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정책과는 반대 방향의 복지 모델을 주장하는 것이다.

천 작가는 “윤석열 자신이 경제 자유주의자이니만큼 기본소득과는 다른 대안을 낼 것으로 보인다”고 책에서 밝혔다. 안 교수와의 면담은 대안적 복지정책 연구를 통해 중도·보수 진영의 선거공약을 짜기 위한 일환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이 지난날 자신에게 큰 시련을 준 인물의 사위와 소통하는 이유에 대한 추론도 재미있는 관찰 요소다. 최근 몇몇 언론에서 “윤석열과 친박의 해원(解寃)”에 대해 언급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탄핵은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단행한 사건이고, 윤석열 자신은 검사로서 수사를 했을 뿐이라는 입장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소속의 한 의원이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했어야 하느냐”고 묻자 “나도 불구속을 주장했지만 검찰총장의 지시로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전·현직 의원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친박’인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윤석열 말고 대안이 있나. 악마와도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문화사에서 펴낸 《별의 순간은 오는가》의 표지
서울문화사에서 펴낸 《별의 순간은 오는가》의 표지

윤석열 천주교 세례명은 암브로시오

천준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윤석열 전 총장의 종교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학생 시절 천주교 영세를 받아 ‘암브로시오’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지만, 외가의 영향으로 거의 불교인에 가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종교에 열려 있고, 영성(靈性)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천 작가는 ‘무아론’이라는 불교 특유의 개념에 대해 밝히고 있다. 무아(無我)는 언제 어디서나 실체적 존재로서 자신이 존재한다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관점이다. 무엇보다 초기 불교에서는 자신을 하나의 상(相)으로 보며 여러 번 생이 윤회(輪廻)하는 동안 실체적 자아가 이어질 것이라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작가는 여기에 덧붙여 ‘정치적 무아론’을 이야기하며 중국 북위(北魏) 시대의 호한(胡漢) 융합 정책, 고대 로마의 포용적 국가관 등이 윤석열의 정신세계와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고 언급했다. 한마디로 “윤석열이 우파다, 좌파다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최근 윤 전 총장 측에 의해 임명된 이동훈 대변인 역시 “중도, 진보(민주당 이탈)까지 아우르는 세력의 지지를 통해 압도적으로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윤 전 총장의 뜻”이라고 전했다. 실용주의와 포용주의가 아니면 기획하기 힘든 전략인 셈이다.

천 작가는 “오랫동안 이어진, 민주공화국 역사에서 이전 정권을 숙청에 가깝게 법적으로 단죄하는 문화가 계속되는 한, 성숙한 민주주의는 도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평가했다. 그는 “윤석열의 가장 큰 한계점은 장모 문제나 부인 문제 같은 이슈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로 “정치는 정해진 문제를 정해진 답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문제를 정의하고, 답도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즉 검찰총장 윤석열이 아니라 정치인 윤석열로 거듭나야만 2022년 3월로 설정된 대선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으리라는 지적이다.

그는 “윤 전 총장이 의회민주주의를 통해 훈련받은 정치인이 아닌 만큼, 더 많이 경청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윤석열식 정치’가 정통 브랜드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