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폐지된 암호화폐들 왜?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6.28 07:30
  • 호수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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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비트 24종 상폐 이유 살펴보니…“지표 참고해 가치 따져보는 안목 중요”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가 화폐 24종을 상장폐지하기로 결정했다. 단일 상장폐지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 기준이 있다. 상장폐지 수순을 밟게 된 일부 암호화폐는 해당 기준에 반발하고 있다. 반면에 투자자 입장에선 옥석을 가리는 데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업비트는 6월18일 홈페이지를 통해 “코모도 등 24종 암호화폐에 대해 오는 28일 낮 12시에 거래 지원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업비트 관계자는 “거래 지원 종료의 구체적 기준과 평가 점수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업비트는 이전에 비해 각 코인의 상장폐지 사유를 비교적 세부적으로 밝혔다.

그 사유를 종합해 보면 여섯 가지 평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팀 역량 및 사업 △정보 공개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 역량 △블록체인 네트워크상 활동 △글로벌 유동성 △거래 투명성 등이다. 업비트는 이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한 코인을 정리했다. 즉, 이 여섯 가지 항목이 암호화폐의 존폐 여부를 가르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코인 상폐 사유에서 나타난 여섯 가지 지표

상장폐지된 암호화폐들이 가장 많이 걸린 항목은 ‘팀 역량 및 사업’이다. 24개 중 17개가 해당 평가에서 자격 미달로 퇴출됐다. 암호화폐 발행에서 개발팀은 코인의 효용성과 사업 성공 가능성을 책임지는 핵심 인력이다. 암호화폐의 사업계획서인 백서에는 대부분 개발진의 학력과 경력 등이 적혀 있다.

일반투자자가 각 암호화폐 개발팀의 사업 진행 상황을 알아보는 데는 ‘깃허브(GitHub)’를 참고하는 방법이 있다. 깃허브는 개발팀이 프로그램 소스를 공유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웹 서비스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백악관까지 공공정보를 깃허브에 올리고 있다. 업계에선 ‘개발자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깃허브의 업데이트 주기를 살펴보면 개발팀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업을 이끌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프로그램 소스를 잘 몰라도 상관없다. 팀·사업 평가가 저조한 17개 코인 중 람다는 5월24일을 끝으로 업데이트 기록이 없다. 또 다른 코인 뉴클리어스비전의 깃허브 기록은 2019년 1월이 마지막이다.

팀·사업 평가 다음으로 상장폐지 암호화폐가 많은 지적을 받은 항목은 ‘글로벌 유동성’이다. 코인의 거래량이 너무 적은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업비트는 “(거래량이 낮으면) 시세 조작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4개 코인 중 13개가 글로벌 유동성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거래량은 각 거래소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한 업계 관계자는 “거래소나 발행사가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부풀리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원회는 거래소의 자전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6월17일 입법 예고했다.

이 밖에 상장폐지 암호화폐 12개는 ‘기술 역량’ 또는 ‘정보 공개 및 커뮤니케이션’ 항목에서 발목이 잡혔다. 기술력은 일반인들이 판가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소통력은 각 코인 발행사의 홍보 채널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다수 발행사는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텔레그램 등을 통해 개발 상황이나 주요 소식을 전달하고 있다.

업계에서 나오는 볼멘소리..."우리에게 한 말은 다르다"

업비트의 상장폐지 사유가 절대적 기준이라고 단언하긴 힘들다. 이번 결정에 대한 업계 측의 반발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 공방도 이어지고 있다. 시사저널은 6월22일 상장폐지 코인 24개 중 연락처가 확인되지 않는 2개(엔도르, 뉴클리어스비전)를 제외한 22개의 발행사에 이메일 또는 SNS 메시지를 보냈다.

이 가운데 불가리아에 본사를 둔 애드엑스 발행사의 관계자는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상당히 많은 업적을 이뤄냈고, 계획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성과 정보는 모두 업비트에 전달했다”면서 “업비트가 우리에게 한 말과 상장폐지 이유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몰타 코인 코모도의 발행사 측은 상장폐지 사유를 조목조목 반박하며 “한국의 규제 환경 변화에 따른 반응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내 코인 피카의 발행사는 6월21일 업비트를 상대로 ‘거래지원 종료결정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또 “업비트가 상장 과정에서 대가를 요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캐나다 코인 아인스타이늄의 발행사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우리도 법적 대응을 고려 중”이라며 “업비트는 우리에게 소명 의지가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분명히 소명 자료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업비트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업비트가 상장폐지했다고 해서 모든 코인의 가치가 ‘0’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업비트에서 퇴출돼도 글로벌 시장에서 영원히 쫓겨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업비트가 상장폐지한 코인 퓨전은 다른 7개 거래소에서 지금도 유통되고 있다. 암호화폐 정보공시 포털 쟁글에 따르면, 나머지 중 6월22일 퓨전의 전 세계 거래량 중 업비트에서 이뤄진 분량은 20%에 그쳤다. 65%는 글로벌 거래소 후오비에서 이뤄졌다. 퓨전 발행사 CEO인 데준 첸은 6월18일 트위터를 통해 “한 곳에서 내려갔지만 다른 곳에 또 올라갈 것”이라며 추가 상장 소식을 알렸다.

이처럼 혼란한 상황 속에서 중요한 건 투자 가치를 따져보는 투자자의 안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글로벌 거래소의 전직 한국 대표는 “업비트의 상장폐지 기준이 꼭 객관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투자자가 평가할 때 근거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투자자의 알권리를 위해 평가 근거를 더 자세히 알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주호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변호사)은 “상장폐지 때 내세우는 이유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며 “코인을 상장시킬 때부터 비이상적인 거래가 감지되면 미리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비트의 평가항목 중 ‘블록체인 네트워크상 활동’과 ‘거래 투명성’은 추적하지 않는 한 외부에서 확인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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