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 오프라인 스토어의 ‘힙한’ 문이 열렸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7.14 10:00
  • 호수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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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팝업 스토어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
MZ세대의 ‘경험 경제’가 SNS와 만나 시너지 창출

서울 강남구 선정릉역 인근. 평범한 건물들 사이에 붉은 벽돌로 꾸며진 독특한 매장이 있다. 내부 곳곳에 동그란 오뚝이들이 서있고, 오뚝이 키링과 포스트잇 등 굿즈가 놓였다. 천장과 건물의 벽면을 꾸민 색상은 노란색. 이곳은 식당이다. 메뉴는 방아잎 키마 카레, 치즈 떡라면, 마라맛 라조장 기름 떡볶이, 롤리폴리 샐러드 씬 피자. 음식의 가격은 모두 ‘8’00원으로 끝난다. 눕혀도 쓰러지지 않는 조형물들이 테라스를 장식하고 있다. 식당에 숨겨진 힌트들을 좇다 보면, 하나의 기업이 떠오른다. 오뚜기. 여기는 카레, 진라면, 고추맛기름, 피자 같은 오뚜기 제품들을 재료로, 요즘 유행하는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 롤리폴리 꼬또다. 오뚜기라는 단어는 공간의 어디에도 없고 오뚜기 라면 한 봉지도 살 수 없지만, 오뚜기를 연상시키는 모든 것이 이 안에 있다. 그렇게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오뚜기 해시태그를 건다.

오뚜기가 만든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의 외식 매장 롤리폴리 꼬또. 매장 내에서 오뚜기와 관련된 로고는 찾아볼 수 없다.ⓒ시사저널 최준필
오뚜기가 만든 플래그십 스토어 형태의 외식 매장 롤리폴리 꼬또. 매장 내에서 오뚜기와 관련된 로고는 찾아볼 수 없다.ⓒ시사저널 최준필

MZ세대 이끄는 무기는 ‘경험’

이렇게 특정한 장소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소비자들을 이끄는 무기가 된다. 타깃은 MZ세대다. 직접 체험하고 경험해야만 하는 MZ세대가 새로운 소비권력이 됐고, SNS를 기반으로 유통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순히 ‘맛’이나 ‘성능’으로 제품을 평가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가치와 이미지가 마음에 들면 제품 구매에 나선다.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그래서 중요하다. 기업들이 자사 제품을 활용한 새로운 음식을 선보이거나, 브랜드를 연상케 하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통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이유다.

오프라인 스토어에는 플래그십 스토어와 팝업 스토어가 있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짧은 기간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와 달리, 장기적으로 운영하면서 브랜드의 대표 제품을 알린다. 현재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조금 다르다. 제품을 단순히 비치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정체성과 제품의 신뢰성을 소비자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바로 옆에 스타벅스가 있음에도 ‘커피’로 주목받는 한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으니, 동서식품이 운영하는 맥심 플랜트다.

한남동에 위치한 이곳은 ‘도심 속 정원, 숲속 커피 공장’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커피를 만드는 회사가 커피와 관련한 공간을 운영하는 데는 별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맥심은 인스턴트커피의 대명사인데, 맥심 플랜트에서 제공하는 커피는 맞춤형 커피다. 테스트를 통해 고객의 기호에 맞는 맞춤형 블렌딩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에 어울리는 문구와 음악을 보고 듣게 해준다. 일명 ‘공감각 커피’다. 곳곳에 커피 제조공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면서, 50년 역사를 가진 커피 전문기업으로서의 정체성도 강조했다. ‘커피=맥심’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하는 것이다.

제품을 겪어보게 하는 ‘경험 마케팅’은 오래된 브랜드가 젊은 고객들과 소통하려는 방법으로도 쓰여왔다. 사실 동서식품은 경험 마케팅의 DNA를 이미 갖고 있는 회사다. 젊은 세대들이 모카골드를 마시지 않는 이유를 분석하고 이들에게 커피를 맛보이기 위해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제주의 모카다방, 서울의 모카책방, 부산의 모카사진관 등에서 캠페인을 열었다. 옛것이지만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서 모카골드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전략은 레트로를 선호하는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똑같은 프랜차이즈 매장과 달리, 개성이 강한 공간을 통해 브랜드를 강조하는 전략도 있다. 배스킨라빈스가 지난해 오픈한 카페 공간인 하이브 한남은 새로운 콘셉트를 통해 고객을 유치한 공간이다. 벌집을 주제로 만든 카페형 매장의 인테리어는 ‘힙한 곳’이라는 인식을 준다. 자사의 아이스크림을 활용해 독특한 디저트도 만들어 판매하면서,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심어주고자 했다.

배스킨라빈스가 오픈한 새로운 콘셉트의 카페 공간 '하이브 한남'. 이곳은 벌집(HIVE) 콘셉트로 기획됐다. ⓒ시사저널 임준선
배스킨라빈스가 오픈한 새로운 콘셉트의 카페 공간 '하이브 한남'. 이곳은 벌집(HIVE) 콘셉트로 기획됐다. ⓒ시사저널 임준선

대표 제품 없는 팝업 스토어도 등장

어느 브랜드에나 대표 제품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표 제품이 없는 오프라인 스토어들이 속속 등장한다. 최근 부산 해운대 ‘해리단길’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식료품점 하나가 열렸다. 침대회사 시몬스의 팝업 스토어인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다. 여기서는 쌀과 수박, 참외, 토마토를 판다. 레트로 감성을 담아낸 힙한 소품들이 식료품 콘셉트로 진열돼 있다. 침대는커녕 매트리스 비슷한 것도 없다. 침대 브랜드가 침대가 아닌 식료품, 혹은 식료품 콘셉트의 제품들을 파는 이유는 뭘까. 침대 대신 브랜드를 매개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소셜 트렌드를 형성해 나가는, ‘소셜 라이징’에 주목한 결과다. 시몬스 침대공장이 있는 이천과 스토어가 위치한 해운대를 대표하는 상품을 ‘메이드 인 이천’과 ‘메이드 인 부산’으로 소개하며 판다. ‘해운대 에디션’ 등 한정판도 있다.

시몬스의 목표는 MZ세대에게 시몬스의 브랜드 인지도를 확장하는 것. 젊은 소비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공간을 꾸며 MZ세대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들이 흥미로워하는 문화나 프로젝트를 경험하게 하면서 브랜드 자체를 각인시킨다. 카카오 브런치 브랜드 마케터 김키미 작가는 《오늘부터 나는 브랜드가 되기로 했다》라는 저서를 통해 “(시몬스는) 침대 없는 브랜딩 활동으로 힙한 브랜드, 친근한 브랜드, 세련된 브랜드로 정교하게 인식을 전환하며 ‘언젠가 침대를 구입할’ 잠재 고객들의 마음에 고정관념이라는 뿌리를 내린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시몬스가 부산 해운대 ‘해리단길’에 오픈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시몬스
시몬스가 부산 해운대 ‘해리단길’에 오픈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시몬스

화장품업체 에이블씨엔씨도 '제품 없는 매장'을 도입했다.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웅녀의 신전이다. 간판도 없이 돌덩이로 닫혀있는 동굴 같은 이 가게는 단군 신화를 모티브로 미샤의 ‘개똥쑥’ 라인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카페다. 카페 어디에도 미샤라는 브랜드는 없다. 화장품을 구매할 수도 없다. 쑥과 하늘을 콘셉트로 한 미디어 아트 월, 동굴과 신전을 연상케 하는 인테리어 속에서 쑥차를 마시며 개똥쑥을 생각하게 될 뿐이다.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미샤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쪽을 택했던 에이블씨엔씨의 선택은 옳았다. 콘셉트는 통했다.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제품을 감춘 신비함이 더해져 MZ세대를 저격했다. 주말 대기 기본 3시간이라는 핫 플레이스로 알려지며 덤으로 개똥쑥을 알린 웅녀의 신전은 6월말 시즌 1을 종료하고 시즌 2를 준비 중이다.

CJ제일제당은 ‘명탐정 사무소’라는 콘셉트로 ‘명탐정 컵반즈’라는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은 ‘명탐정 사무소’라는 콘셉트로 ‘명탐정 컵반즈’라는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다. ⓒCJ제일제당

인스타그래머블 스토어가 MZ세대에 통한다

MZ세대는 SNS 공간에 자신의 경험을 전시하는 것을 즐긴다. 그 경험은 공유되고, 동의되고, 공감된다. 중요한 건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다. 정보를 인스타를 통해 검색하는 MZ세대에게, 인스타를 통해 생활을 공유하는 MZ세대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곳인지는 중요한 요소다. 기본적으로 사진을 찍어 올릴 만한 인테리어, 포토존 등을 갖춘 곳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한 스토어로 주목을 받는다.

특히 여기에 제한된 시간 개념이 있는 팝업 스토어는 흥미를 유발한다. 지금 가야만 체험할 수 있다. 한시적으로, 허락된 시간 안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은 색다른 것을 추구하는 MZ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팝업 스토어의 성격에 ‘놀이’와 ‘세계관’을 더한 스토어도 있다. 지난 6월까지 CJ제일제당이 운영한 명탐정 컵반즈다. 그동안의 팝업 스토어가 신제품을 진열하고 맛보여주는 공간에 그쳤다면, 이제 가상의 세계관 속에서 MZ세대가 플레이할 수 있는 장치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MZ세대에게 힙한 지역 중 하나인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3주간 열린 이 팝업 스토어는 명탐정 사무소 안에서 열리는 추리게임에 참여해 제품과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됐다.

직접 참여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MZ세대를 겨냥하기 위해, 팝업 스토어를 새로운 콘셉트로 기획하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고. 내부에는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 브랜드 존, 퀴즈 존 등의 체험 공간을 구성했다. 이런 시도는 MZ세대에게 ‘먹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명탐정 컵반즈의 호응에 이어 제품의 매출도 올라갔다. CJ제일제당 관계자에 따르면 햇반컵반의 매출은 콘텐츠를 론칭한 5월 한 달 동안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MZ세대의 흥미를 유발하는가. SNS를 통해 알릴 만한 공간인가.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인가. 이것이 성공하는 오프라인 스토어의 요건인 셈이다. 소비자의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팅과 홍보가 가능하고, 브랜드가 각인된 소비자들이 해당 기업의 제품을 찾게 된다는 점만으로도 오프라인 스토어를 여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SNS를 통한 공유와 피드백은 즉각적이기에,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생각을 바로 캐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인싸’들의 놀이터로 거듭난 오프라인 스토어는 온라인 중심으로 소비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전달할 차별화된 마케팅 방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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