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시대'가 왔다…왜 메타버스에 올라타는가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1.08.02 10:00
  • 호수 16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 메타버스가 뜨는 이유
‘Z세대 놀이터’에서 기업 필수 진출 공간으로
대세 플랫폼이 된 네이버Z의 제페토...SKT도 이프랜드 출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만남은 불편하고 어색해졌다. 하나의 공간에 함께 머무르는 것도 어려워졌다. ‘줌’ ‘팀즈’ ‘원격교육’ 같은, 비대면에 특화된 단어들이 익숙해졌다. 존재했지만 시선에서 비켜나 있었던 것들이 갑자기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시킨 비대면의 일상. 현실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혹은 현실을 재개시키기 바라는 갈망은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가상의 공간에서 콘서트가 열리고, 신입생 환영회와 기업 설명회가 열리고, 각종 마케팅이 펼쳐진다. 이제 어디서나 메타버스라는 말이 들린다. 대체 메타버스는 뭘까. Z세대의 놀이터, 혹은 게임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메타버스에 모든 산업군이 올라타려는 이유가 뭘까.

메타버스라는 말의 기원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닐 스티븐슨의 SF소설 《스노크래시》에서 처음 사용됐다. ‘초월하는’ ‘더 높은’이라는 뜻의 ‘메타’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가 조합된 단어다. ‘초월적 세계’다. 주인공은 현실에서 파트타임 피자 배달부지만, 메타버스 내에서는 최고의 전사이자 영웅이다. 그는 고글과 이어폰이라는 시청각 출력장치를 이용해 가상세계에 접속한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것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이다. ‘오아시스’라 불리는 가상세계는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가 돼 어디든지 갈 수 있고, 뭐든지 할 수 있고, 상상하는 모든 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SF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듯, 가상의 공간이 디지털을 이용해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메타버스다.

《레디 플레이어 원》
《레디 플레이어 원》

아담·싸이월드부터 시작된 한국의 메타버스

그렇다면 아바타를 만들어본 적도 없고, 가상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면 아직 메타버스를 접하지 못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메타버스와 맞닿아 있었다. 과거를 돌아보자. 1998년에는 사이버 가수 아담이 데뷔했다. 2000년대에는 한국형 SNS의 시작이었던 싸이월드가 있었다. 2010년대 이후부터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일상이 됐다. 그리고 지금, AR과 VR을 활용한 증강현실이 곳곳에서 등장한다. 이 사례들이 가상세계와 무슨 관련성이 있다는 것인지 의문점이 들 수 있지만, 바로 이 모든 게 메타버스다. 비영리 기술연구단체 ASF(Acceleration Studies Foundation)는 메타버스를 네 가지로 분류했다. 증강현실, 라이프로깅(일상의 디지털화), 거울세계, 가상세계다.

증강현실은 현실 공간 위에 디지털로 구현된 정보를 겹쳐 보이게 만든, 말 그대로 ‘증강된 현실’이다. 게임 ‘포켓몬고’를 떠올리면 된다. GPS를 기반으로 특정 이벤트를 발생하게 만들고, 카메라와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한 포켓몬고는 탄탄한 스토리를 증강현실로 잘 구현한 사례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우주선 내에 레이저 홀로그램이 투영되는 장면도 증강현실이다. 라이프로깅은 개인을 중심으로 일상에서 발생하는 정보와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하거나, 센서가 측정해 낸 데이터가 축적되는 공간이다.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디지털로 구현되면서 확장되기 때문에 메타버스의 일종이 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가 그것이다.

거울세계는 연결돼 있는 현실세계를 사실적으로 모사해 디지털로 보여주는 세계다. 실제 거리와 건물을 항공 촬영해 3D로 변환하거나 모델링하는 구글 어스가 대표적이다. 구글 지도, 카카오 지도, 티맵, 카카오 내비뿐 아니라, 현실세계를 디지털로 반영한다는 데서 배달의민족이나 에어비앤비 등의 앱도 큰 범주의 메타버스에 포함된다. 가상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메타버스다. 여러 명이 접속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가상화된 공유 공간’이다. WOW나 리그오브레전드처럼 게임을 기반으로 한 가상세계와 일상과 소셜 라이프 환경 기반의 가상세계, 업무나 교육, 전시, 등 특정한 목적을 접목한 서비스형 가상세계가 있다.

가상세계를 바탕으로 증강현실이나 라이프로깅 요소가 조합된 경우도 많다. 싸이월드를 떠올려보자. 내 ‘아바타’인 미니미가 있었고, 각자의 가상공간인 미니홈피가 존재했다. 도토리로 음원을 구매해 배경음악을 설정하고, 방을 꾸몄다.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기도 하고, 일촌을 맺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싸이월드는 소셜 라이프 기반의 가상세계이자, 일상의 디지털화가 결합된 융합형 메타버스였던 셈이다. 이용자 플랫폼을 확장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경쟁자에 밀려 ‘지는 별’이 됐지만, 싸이월드는 한국 메타버스의 선구자로 기록돼 있다.

로블록스
로블록스

메타버스 안에서 시작된 경제활동

그렇다면 지금의 메타버스는 싸이월드와 무엇이 달라졌을까. 메타버스를 이야기할 때 가장 ‘핫한’ 미국의 기업, 로블록스를 보자. 로블록스는 블록으로 구성된 3D 가상세계에서 아바타로 구현된 개인들이 소통하며 노는 공간이다. 미국 Z세대의 55%가 로블록스에 가입했고, 월간 활성 이용자는 1억5000만 명에 달한다. 하루 4000만 명의 이용자가 로블록스에 접속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점. 사용자는 로블록스의 게임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데, 게임 패스가 판매되면 로벅스라는 가상화폐를 받는다. 패션 아이템도 마찬가지다.

수익이 일정 금액 이상 되면 실제 화폐로도 환전이 가능하다. 지난해 125만 명의 크리에이터가 3억3000만 달러(약 3780억원)를 벌어들였다. ‘수익을 창출하는 공간’으로 거듭나면서 메타버스는 고평가됐다. 올해 3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로블록스의 시장가치는 383억 달러(약 44조원)였다. 플랫폼으로서의 메타버스의 저력은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됐다. 미국의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은 미국의 에픽게임즈에서 출시한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동시 접속자는 1230만 명에 이르렀고, 216억원의 수익이 발생했다. BTS도 포트나이트에서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을 론칭하고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바 있다.

게임을 기반으로 한 뜨거운 메타버스 기업들이 세계에 있다면, 한국의 현재에는 제페토가 있다.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한 제페토는 아바타 생성 기술과 사용자 창작 콘텐츠를 주력으로 삼는다. 셀카 앱으로 유명한 스노우가 출시한 서비스답게(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Z는 지난해 5월 스노우에서 물적 분할로 분사했다), 직접 찍은 사진을 이용해 자신과 닮은 아바타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테마의 가상공간인 맵에서 아바타들이 만나 소통하고, 게임을 하고, 사진을 찍는다. 제페토는 팬 플랫폼으로도 기능한다. 제페토 안에서 열린 블랙핑크 가상 팬사인회에는 4600만 명이 참여했다. BTS 캐릭터인 BT21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BT21 테마파크도 구경할 수 있다.

제페토에는 젬과 코인이라는 디지털 화폐도 존재한다. 여기서도 수익 활동이 일어난다. 제페토에서 아이템을 제작하는 크리에이터 수는 70만 명이 넘고, 제출된 아이템은 200만 개에 이른다. 일명 ‘전업 크리에이터’들도 등장했다. 유진투자증권은 보고서를 통해 “일방적으로 제공받는 콘텐츠가 아닌, 사용자의 콘텐츠 제작 참여를 통해 몰입 효과를 높이며 락인효과를 강화하면서, Z세대에게 제페토는 게임 그 이상의 콘텐츠를 즐기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구찌는 제페토에 ‘구찌 빌라’를 짓고 신상품을 선보였다.ⓒ제페토 인스타그램

나이키 신제품, 현실보다 가상세계에서 더 많이 팔려

메타버스 시장은 커지는 추세다. 글로벌 통계 전문업체 스태티스타는 2021년 307억 달러(약 35조3265억원)이던 메타버스 시장 규모가 2025년 2969억 달러(약 341조6428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온라인 놀이터에 그치지 않고 경제활동까지 이뤄지는 공간으로 메타버스가 확장되고, MZ세대가 메타버스 안에서 또 하나의 생태계를 꾸리게 되면서, 기업들도 메타버스에 올라타기 위해 줄을 섰다. 이제 메타버스가 ‘기회의 땅’이 됐다. 주된 이용층인 MZ세대가 새로운 소비 세력으로 떠오른 지금, 이들의 공간인 메타버스에서 접점을 만드려는 것이다. 이미 게임으로 구현된 메타버스에서 마케팅을 벌인 사례도 존재한다.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 속에서는 패션 브랜드 발렌티노와 마크제이콥스의 컬렉션 전시가 오픈됐고, LG디스플레이의 OLED 홍보 전시관도 열렸다.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키워드는 ‘경험’이다. 최신 트렌드에 민감한 이 세대는 단순한 소비보다 직접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 경험은 오프라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상의 세계에서 아바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일종의 경험 비즈니스에 해당한다. Z세대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이 제페토 안에서 숍을 여는 이유다. 나이키, 컨버스, 푸마 등 다양한 브랜드 숍이 이미 제페토에 입점했다. 심지어 나이키의 신제품은 현실보다 메타버스에서 팔리는 양이 더 많다. 현대차는 플랫폼 내 다운타운과 드라이빙 존에서 쏘나타 차량을 시승할 수 있도록 차량을 구현했다. 미래의 소비자가 될 Z세대에게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전략이다. 현실 속 한강을 찾는 이들이 편의점에서 음료나 맥주를 구매한다는 점을 고려해, CU는 제페토의 한강공원 맵에 편의점을 개설하기로 했다.

명품 브랜드도 MZ세대의 잠재적 소비력을 무시할 수 없다. 구찌는 제페토에 구찌 빌라를 짓고, 아바타가 직접 패션 아이템을 착용해본 뒤 구매할 수 있게 했다. 가상세계에서도 아이템이 유한하다는 입소문이 퍼져 나가자 몇몇 아이템은 완판되기 시작했다. 현실 공간에서 200만원에 가까운 가방이 제페토에서는 3000원이다. 현실세계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곧 출시될 제품을 메타버스 안에서 선보이면서 MZ세대의 잠재적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브랜드에 대한 경험을 늘리는 것이다. 구찌가 1020세대 사이에서 마케팅 효과를 내자, 프랑스 패션기업인 LVMH도 주력 브랜드인 크리스찬 디올의 메이크업 세트를 입점시켰다.

마케팅 에이전시인 PMX는 2025년까지 세계 명품시장 고객의 45% 이상을 Z세대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2019년 루이비통이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와 협업을 진행하고, 버버리가 직접 게임을 만들어 가상 의상을 무료로 제공하는 마케팅을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저서인 《메타버스-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을 통해 “명품의 노숙한 이미지를 탈피해 Z세대와 소통하려는 노력이다. 그들에게 제품을 알리기 위해 그들을 현실세계로 끌어내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이 주로 머무르는 메타버스 속으로 기업이 들어가야 한다. 현실세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더 다양하고 깊은 경험을 메타버스 속에서 전해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메타버스 산업에 직접 뛰어드는 기업들

세계적인 기업들은 직접 메타버스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전 세계 클라우드 서비스 1위 업체인 AWS를 운영하는 아마존은 메타버스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서버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2014년 가상현실 장비를 만드는 오큘러스VR을 인수한 페이스북은 2018년 가상현실 장치를 통해 가상세계를 즐길 수 있는 오큘러스 룸을 오픈했다. 지난해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분야 투자를 늘리겠다고 밝힌 페이스북은, 최근 ‘5년 이내에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2014년 구글 글래스를 발표한 경험이 있는 구글은 구글 어스시턴스, 네스트, 핏빗 등을 통해 일상과 구글 생태계를 연결하고 있다.

김 교수는 “세계 시가총액 1~8위 기업 중 절반이 메타버스 관련 기업이다. 메타버스를 주름잡는 기업들의 성장세는 오프라인 기반의 제조, 유통 기업을 넘어서고 있다”면서 “메타버스라는 개념을 그저 먼 세상 이야기, 일부 디지털 마니아나 Z세대의 놀이터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도 메타버스로 향하고 있다. 네이버에 이어 움직인 기업은 SKT다. SKT는 7월14일 메타버스 브랜드인 이프랜드를 출시했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회의나 발표, 미팅 등 활용성이 다양해지는 사회적 흐름을 고려해 문서나 영상 등의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도 구축했다.

아직 메타버스는 초기 단계일 뿐이다. MZ세대의 플랫폼으로 기능하던 메타버스의 영역은 계속 확장되는 중이다. 더 이상 메타버스는 Z세대에 한정된 공간이 아니기에, 다양한 연령대가 메타버스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실버서퍼(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듯 정보를 찾는 50대 이상의 장년층)들처럼 온라인에 익숙한 이도 많지만,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환경은 온라인과는 또 다른 진화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정준화 입법조사관은 “지금은 MZ세대, 특히 10대가 메타버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이 강화될 경우 장년층 및 노년층의 메타버스 이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향후 메타버스가 일상생활의 플랫폼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해 다양한 계층이 메타버스에 어려움 없이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