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IT 기업과 생존 경쟁 예고한 현대차의 ‘승부수’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1.08.11 10:00
  • 호수 1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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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의 이유 있는 변신 “車만 만들어선 생존 못한다”

“현대자동차는 IT 기업보다 더 IT를 잘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지난 2018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18’에 참석해 한 말이다.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기존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정 회장은 수년 전부터 내연기관 차량을 대신할 전기차, 수소차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율주행, 인공지능(AI)에 이어 최근 로보틱스와 도심항공모빌리티(UAM)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자동차 기업에서 벗어나 첨단 IT기술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오는 2025년까지 60조1000억원을 투자해 미래 모빌리티 사업 역량을 키울 방침이다. 신차 개발과 설비 투자 등 기존 자동차 산업 경쟁력 강화에 36조6000억원을, 전동화·수소 에너지·자율주행·UAM·로보틱스 등에 23조5000억원을 투입한다. 기아도 2025년까지 29조원을 투자해 미래 먹거리 개발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연합뉴스
글로벌 자동차 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현대차그룹 역시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하고 있다. 사진은 부산 벡스코에 전시된 현대차의 넥소 내부 구조 모습ⓒ연합뉴스

성장 한계에 봉착한 자동차 사업

자동차는 ‘제조업의 꽃’으로 불리며 국내 경제 발전을 이끌어온 핵심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도 자동차 강국으로 2차 산업 시대를 이끌어왔다. 현대차그룹은 다른 글로벌 완성차 기업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대중화 전략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으며 연 매출 150조원대, 글로벌 4위 자동차 회사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기술 산업이 떠오르는 동안 자동차 산업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자동차 산업은 원자재, 부품, 설비, 인건비 등 고정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원이 발표한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전 세계 자동차 산업 영업이익률은 4.8%로 유통(1.6%), 조선(2.7%)에 이어 뒤에서 세 번째를 기록했다. 올해 포브스 자료(2021년 4월16일 기준 최근 1년)를 보면 반도체 산업 이익률이 21.8%로 가장 높았고 IT소프트웨어(17.5%), IT하드웨어(8.3%) 등이 뒤를 이었다. 자동차가 포함된 내구소비재 산업은 2.7%에 그쳤다.

최근 중국 자동차 시장 변화도 현대차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수년간 현대차그룹의 가장 큰 위기는 2017년 중국 사드(THAAD) 보복 때 나타났다. 사드 사태 이후 중국 내 반한감정으로 판매량이 크게 꺾였고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다. 사드 보복 이전인 지난 2016년 북경현대와 동풍열달기아는 각각 1조1719억원과 4148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그 후 사드로 갈등이 고조되자 2017년 곧바로 적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양사는 각각 1조1520억원, 6498억원의 적자를 냈다. 중국에서의 부진으로 현대차그룹 전체가 휘청거리자 정의선 회장은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됐다.

특히 중국은 그동안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제조업 강국으로 군림했으나, 유독 자동차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임에도 현지 기업들의 기술력이 부족해 해외 기업들에 자리를 내줘야 했다. 하지만 최근 지리자동차, 상하이자동차, BYD 등 현지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며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현대차그룹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한다고 자동차 사업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 회장은 그룹 미래 사업 구조를 ‘자동차 50%, UAM 30%, 로보틱스 20%’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전히 자동차 산업은 ‘캐시카우’를 담당하며 그룹의 중추 역할을 맡는단 의미다.

현대차그룹이 IT 산업에 눈독을 들인 것은 전기·자율주행차 시대에 앞서 나가기 위해서다. 완성차 기업에 이어 IT 기업들도 자율주행차 시장 참전을 예고하면서 기술 경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히 자동차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에 처음 진출한 후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 IT 기업들에 영감을 줬다. 지난해 애플이 전기자율주행차 ‘애플카’를 출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가 들썩였으며 구글, 엔비디아, 아마존, 바이두 등도 전기차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 폭스바겐, GM, 도요타 등 완성차 기업 외에도 공룡 IT 기업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에 현대차는 글로벌 기업들과 합작해 전기자율주행차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핵심인 배터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LG에너지솔루션과 인도네시아에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연간 15만 대 분량의 전기차 배터리셀을 생산할 계획이며, 향후 현대차·기아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다. 자율주행과 관련해 미국 앱티브사와 합작으로 자율주행 기업 ‘모셔널’도 설립했다. 모셔널은 최근 일반도로에서 운전자 없이 주행할 수 있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에 성공했으며 2023년 무인자율주행차를 활용한 로보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경쟁 상대, 폭스바겐에서 애플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뿐 아니라 로봇과 UAM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 투자도 확대했다. 지난 6월 로봇 전문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했으며 이를 통해 자율주행, UAM 개발, 스마트 팩토리 등에 로봇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로봇 시장 규모가 올해 444억 달러(약 51조원)에서 2025년 1772억 달러(약 204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절대 강자가 없는 UAM 시장에 먼저 진출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UAM 시장 규모는 오는 2040년까지 1조5000억 달러(약 17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는 오는 2026년 화물용 무인 항공 시스템을 선보이고 2028년엔 도심 운영을 위한 완전 전동화 UAM을 출시한다.

다만 현대차그룹 변화에 대해 내부에서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생산직의 경우 전기차 시대를 맞아 고용 안정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생산직뿐 아니라 일반직원들 사이에서 자동차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자칫 ‘헛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들의 불만은 성과급과 직결된다. 현대차가 최근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낮은 연봉과 성과급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 투자에 앞서 직원 처우 개선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현대차 신입 초봉 순위가 대기업 10위권 밖으로 밀린 데다 성과급마저 줄어들면서 신입사원들의 경우 실질 임금이 이전 세대보다 크게 낮아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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