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0일의 여론조사 1위, 노무현 때 빼고 다 대통령 됐다
  • 현경보 한국정치조사협회연구소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1.22 10:00
  • 호수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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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례 대선 중 6차례 지지율 1위 후보가 청와대 입성

내년 3월9일로 예정된 20대 대통령선거가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현재까지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그리고 무소속의 김동연 후보 등 5자 대결 구도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윤 후보가 40% 안팎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그 뒤를 이재명 후보가 30~35%로 추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나머지 제3지대 후보들 지지율은 아직 모두 합쳐도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다자대결 구도라고 하지만 일단은 ‘윤석열 vs 이재명’ 양자대결 구도에 가까운 모양새다. 그렇다면 대선 D-100일 시점의 후보 지지율 순위가 투표일까지 그대로 이어질 수 있을까. 역대 대선 사례를 보자.

D-100일을 보면 대선 판세 보인다

1987년 12월 대선은 6월 민주화 항쟁으로 16년 만에 직선제를 쟁취한 후 첫 선거였다. 대선 D-100일 시점인 9월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김영삼-김대중 두 야권 후보의 단일화가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하지만 단일화는 끝내 무산되고 민정당 노태우, 민주당 김영삼, 평민당 김대중, 공화당 김종필 후보 4자대결 구도로 치러졌다. 당시는 대선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를 언론에 보도할 수 없던 시절이어서 후보 지지율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후 한국갤럽이 공개한 선거 2개월 전 지지율을 보면 노태우 39%, 김대중 24%, 김영삼 21%, 김종필 17%로 노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실제 선거 결과에서도 노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2위 김영삼 후보(28%)를 8.6%포인트 차로 따돌리며 당선됐다.

1992년 대선은 김영삼-김대중 양김 대결 구도 속에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제3세력으로 정치에 뛰어들면서 화제가 되었다. 민자당 김영삼, 민주당 김대중, 국민당 정주영, 신정당 박찬종 등 4자대결 구도였다. 역시 선거 이전 여론조사 공표를 놓고 위법 논란이 이어지면서 D-100일 시점의 여론조사 결과는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선거 6개월 전에 위법을 무릅쓰고 중앙일보에서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김영삼 33%, 김대중 21%, 박찬종 15%, 정주영 10%로 나타났다. 실제 선거 결과는 ‘초원복집 사건’ 등 공권력 개입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서도 여당의 김영삼 후보가 8.2%포인트 득표율 차이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난립했다. 선거 5개월 전인 7월까지도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10%포인트 정도 앞서 나갔다. 하지만 8월 들어 불거진 이른바 ‘병풍(兵風·이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이 대선 판도를 바꿨다. 대선 D-100일을 앞둔 9월초 한국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김대중 30%, 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이회창 21%, 민주당 조순 17%, 자민련 김종필 7%로 각각 나타났다. 김대중 후보가 일단 기선을 잡은 모습이다.

하지만 한바탕 파란이 일어났다. 여당인 신한국당 경선 패배 불복으로 신당을 창당하고 대선판에 뛰어든 이인제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김 후보의 1위 자리를 위협했다.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후보 간 합종연횡이 이루어졌다. ‘DJP(김대중·김종필)연합’에 이어, ‘이회창-조순 연대’가 성사되면서 지지율이 출렁거렸다. 김대중-이회창-이인제 후보의 3자대결 구도 속에 선거 막판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후보를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넘어서진 못했다. 결국 김대중 후보가 1.6%포인트 득표율 차이로 이회창 후보에게 신승을 거두었다.

2002년 대선 D-100일 시점의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3자대결 구도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이회창 30%, 무소속 정몽준 27%, 민주당 노무현 20% 순으로, 이 후보가 선두를 달렸다.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정 후보가 ‘월드컵 4강 신화’의 바람을 타고 이 후보와 양강 구도를 만들었다. 일찌감치 민주당 후보가 된 노 후보는 한때 40%가 넘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면서 6월 지방선거와 8·8 재보선 패배 책임으로 후보 지위마저 위태로운 처지였다. 하지만 정몽준 바람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면서 1강(이회창)-2중(정몽준·노무현) 구도로 바뀌었고, 결국 정·노 후보의 단일화 요구가 급물살을 탔다. 불리할 것으로 봤던 노무현 후보가 극적으로 단일후보에 성공하면서 이 여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득표율 48.8% 대 46.6%로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했다.

MB-朴-文, ‘대세론’ 끝까지 유지하며 당선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대세론 속에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의 전신) 후보들은 지리멸렬했다. 대선 D-100일을 앞두고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 이명박 49%,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12%, 정동영 9%, 김근태 5%, 민주노동당(정의당의 전신) 권영길 5% 등으로 이 후보가 크게 앞서 나갔다. 아직 대선후보를 선출하지 못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의 지지율을 다 합쳐도 30%가 안 됐다. 여당이 무력감을 드러내면서 ‘문국현 대안론’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에 대한 ‘BBK 주가조작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보수진영 분열로 대선 판세가 출렁거렸다. 50%를 넘나들던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30% 후반대로 급락했고,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단숨에 25%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더 이상 탄력을 받지 못한 채 10%대로 주저앉으면서, 결국 이명박 후보가 48.7%의 득표율로 2위 정동영 후보(26.1%)에게 압승을 거두었다.

2012년 대선의 핵심 변수는 ‘안철수 바람’이었다. 대선 D-100일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새누리당(국민의힘의 전신) 박근혜 41%, 무소속 안철수 23%, 민주당 문재인 18%, 손학규 5% 순이었다. 새누리당은 이미 대선후보를 선출했지만, 민주당은 아직 경선 중이었다.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안 후보가 지지율 2위를 차지하면서 3자대결 구도를 예고했다. 대선 3개월을 앞두고 안 후보가 출마를 본격 선언하면서 지지율이 30%를 넘어섰다. 반면 40%를 넘던 박 후보의 지지율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5·16과 인혁당 사건 관련 역사 인식’ 논란에 이어 ‘선대위 인선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불거지면서, 후보 선출 직후 44%이던 박 후보의 지지율이 한 달여 만에 35%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새누리당의 ‘네거티브 공격’에 밀려 다시 20%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손학규를 경선에서 누르고 민주당 후보가 된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이 박근혜 후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후보 단일화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문재인 후보가 야권 단일화에 성공해 막판 스퍼트를 올렸지만, 득표율 51.6%의 박근혜 후보에게 3.6%포인트 차이로 무릎을 꿇었다.

2017년의 19대 대선은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에 따라 12월이 아닌 5월9일 치러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진 가운데 야당으로선 정권교체를 위한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대선 D-100일을 앞둔 1월말 실시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 문재인 28%, 무소속 반기문 17%, 민주당 이재명 10%, 국민의당 안철수 9%, 새누리당 황교안 9%, 민주당 안희정 7% 등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박 대통령 탄핵 이후 문재인 후보가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렸다. 보수진영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문 후보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 후보였지만, 대선 행보 20일 만에 대권의 뜻을 접었다. 반 전 총장의 출마 포기로 문 후보는 다자대결 구도에서 30%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세론을 굳혀 나갔다. D-100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재인 후보가 결국 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이, 7%p 차가 일주일 만에 1%p 차로 요동치기도

역대 대선을 되돌아보면 2002년 16대 대선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선 D-100일 시점에 지지율이 가장 높았던 후보들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16대 대선에서만 노무현 후보가 D-100일 시점 지지율 3위의 열세를 딛고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는 승부수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한 번의 예외가 있었지만, D-100일 시점의 후보 지지율이 실제 대선 결과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역대 대선은 보여주고 있다.

2022년 20대 대선을 앞둔 현시점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 7~8%포인트 정도 앞서 있다. 역대 대선 사례에 비춰보면 윤 후보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 더 많은 변수를 안고 있다. 두 후보에 대한 사정기관의 수사도 진행 중이다. ‘대장동 개발’과 ‘고발 사주’ 의혹을 비롯한 후보 주변 비리에 대한 검찰·공수처 수사가 중대 변수다. 후보들의 향후 행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앞으로 밝혀질 ‘사건의 진실’이나 ‘공정한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이 대선판을 크게 흔들 수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7%포인트 차(11월8~10일 NBS 조사)가 일주일 만에 1%포인트 차로 좁혀지는 초박빙 양상(11월15~17일 NBS 조사)이 나타나기도 했다. NBS는 전화면접 조사다. 그 중간 시기에 KSOI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ARS 조사로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두 후보의 격차가 14%까지 벌어졌다(11월12~13일). 이렇듯 요동치는 지지율 속에 두 후보가 접전 양상을 이어간다면 역대 그 어느 대선보다 크게 불확실한 안갯속 판세가 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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