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는 산불을 부르고, 산불은 지구온난화에 기름을 붓는다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4 13: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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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월 ‘불의 고리’ 된 동해안에서 집중 발생…지구 온도 높을수록 산불 발생 기간 길어져

올해 3월과 4월, 동해안은 ‘불의 고리’였다. 지진과 화산활동이 중첩된 곳이 환태평양조산대라면, 봄철 대형 산불의 진앙지는 경북·강원(동해안)이다. 4월17일 경북 군위군에서, 같은 날 강원도 인제군과 전남 화순군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다. 하루 전인 16일에는 전남 보성군 겸백면에서, 15일에는 춘천시 남산면에서, 그리고 4일에는 경기도 하남 위례신도시 인근에서 산불이 났다. 당시 6곳의 산불은 바람(3m/s)이 세지 않은 탓에 3월 발생한 동해안 대형 산불의 재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산불은 가뭄과 강풍을 만나면 괴력을 발휘한다. 지난 3월, 서울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숲을 초토화시킨 동해안 산불이 대표적 사례다. 3월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은 6시간 만에 바람 방향이 바뀌며 강원도 삼척까지 번졌다. 불길은 울진 한울핵발전소 부근까지 급습했고, 삼척 LNG생산기지도 산불에 포위됐다. 민가는 불타기 시작했고, 주민들은 혼비백산 집을 빠져나왔다. 태백산맥을 타고 번진 산불은 휘발유를 들이부은 듯 활활 타면서 동해안의 숲과 도시를 삼켰다. 겨울 가뭄에 말라버린 잡풀은 삽시간 불을 번지게 하는 땔감으로 돌변했고,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이 거대한 불길을 만들었다.

지난 3월 발생한 산불이 동해시의 한 마을을 집어삼키고 있다.ⓒ동해시 제공

건조한 날씨와 강풍…‘대형 산불 유발’

당시 기상청 미시령 자동관측장비에는 순간 최대 초속 35m를 넘나드는 중형 태풍급 강풍이 관측됐다. 대형 산불로 이어진 이유는 ‘양간지풍(襄杆之風)’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봄철 고기압이 시계 방향으로 돌며 서풍을 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이 서풍은 태백산맥을 타고 넘어가면서 수분을 빼앗겨 동쪽에 건조한 날씨를 형성한다. 이 바람은 양양~고성·간성, 양양~강릉 사이에서 불어 ‘양간지풍’ 또는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고 불린다. 봄철에만 부는 계절풍이다. ‘불을 몰고 온다’고 해서 ‘화풍(火風)’이라고도 한다. 동해안 지방에서 봄철 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다. 지난해에도 가장 큰 산불 피해면적을 기록한 지역은 경북 2053㏊, 울산 531㏊, 강원 220㏊였다.

기후 전문가들은 건조한 날씨와 50년 만의 극심한 겨울 가뭄도 동해안 산불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지난겨울 강수량(13.3mm)은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 여기에 강풍이 더해지며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최적의 조건이 완성됐다. 강릉·동해 산불은 3월8일, 울진·삼척 산불은 3월14일에야 진화됐다. 1986년 산불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후 최장 시간(213시간) 동안 산림 2만923㏊(축구장 2만8000여 개, 역대 2위)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동해안 산불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4월10일 경북 군위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임야 347ha(축구장 486개)를 태웠다. 고온건조한 기상과 국지적 강풍(10m/s)으로 불길이 재확산되면서 49시간의 사투 끝에 가까스로 진화했다. 11일에는 강원도 양구에서도 산불이 났다.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불길의 띠가 무려 16km나 됐고, 바람을 타고 민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주민들이 인근 초등학교로 대피했다. 당시 불어닥친 강풍(10m/s)은 산림 521ha(축구장 730개)를 완전히 태웠다.   

자고 일어나면 산불 소식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발생한 산불만 304건이다. 전년도 같은 기간 167건의 1.8배, 지난해 총 발생한 349건에 근접한 수치다. 이번 겨울가뭄이 유독 심한 탓이란 분석도 있지만, 과거 통계를 살펴보면 산불 피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11년(277건)과 2012년(197건), 2013년(296건)은 비슷했다. 그러다 2019년 653건, 2020년 620건까지 증가했다. 

역대 산불 피해 현황을 보면 2000년 4월7일 동해안 산불 2만3794㏊(2명 사망, 15명 부상), 2005년 4월4일 양양 낙산사 산불 973㏊, 2019년 4월4일 강원도 산불 1260㏊(2명 사망, 11명 부상), 2020년 5월1일 고성 산불 85㏊, 2022년 3월4일 동해안 산불 2만523㏊(울진·삼척 1만6302㏊, 강릉·동해 4,221㏊)로 대부분 3, 4월에 발생했다. 

3월5일 경북 봉화군 야산에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공중진화대원이 산불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산림청 제공
동해안 산불이 남긴 상처. 강원 동해시 일원의 산림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다.ⓒ연합뉴스

기후변화에 전 세계가 대형 산불 위험에 노출

전문가들은 대형 산불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한편에는 홍수가, 다른 편에는 가뭄이 든다. 봄가뭄이 지속되면 산불 발생 가능성이 높다. 올해 3~4월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실제로 지난 2월 울진·강릉·동해·삼척의 평균 강수량은 약 6.3mm, 10년 전(2012년) 같은 달 51.8mm와 비교하면 12.2%에 불과했다. 산림청은 이번 동해안 대형 산불은 겨울철 마른 초본들이 말라 ‘연소재’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1970년대에는 이런 대형 산불이 없었다. 그때 겨울은 발목이 푹푹 빠질 만큼 눈이 내렸다. 봄비도 자주 내렸다. 요즘처럼 봄바람도 강하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 지표면의 습기가 증발하면서 토양이 건조해지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산불 위험도 높아진다. 산불이 발생하면 건조한 탓에 대형 산불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진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따르면 기온이 산불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기온이 1.5도 높아지면 산불 기상지수는 8.6%, 2도 높아지면 13.5% 증가한다. 산불 기상지수는 기온이나 습도, 풍속 등을 이용해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치화한 지표다. 

대형 산불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9년 6월 호주 대형 산불(1100만ha)은 진화에만 6개월이 걸렸다. 2021년 미국 서부를 삼킨 산불(191만ha)도 3개월간 지속됐다. 밴쿠버와 주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도 지난해 여름 뜨겁고 건조한 날씨로 1500여 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에 따르면 초대형 산불이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30%, 2100년까지 5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온도가 높을수록 산불 발생 기간이 길어지고, 지속 시간도 늘어나 피해를 키운다고 진단한다. 산불과 거리가 멀 것으로 느껴지는 시베리아도 예외는 아니다. 그린피스는 2021년 시베리아 곳곳에서 산불이 200건 발생했고, 피해지역이 16만1356㎢에 이른다고 밝혔다.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더욱 강력한 기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2019년 이후 자주 발생하는 대형 산불이 이를 증명한다. 기후변화와 산불은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돼 있다. 지구온난화는 산불을 유발하고, 산불이 발생하면 나무 안에 저장된 온실가스가 대기 중으로 배출돼 기후변화를 더욱 가속화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잿더미 속에서 다시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회복하려면 30~50년이 걸린다. 산불이 지나간 숲에서는 한동안 풀과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산불을 버텨낸 나무들도 대부분 고사한다. 올해는 가뭄이 불러들인 산불이 기세를 확장했다. 동해안 숲에서는 새 소리도, 새 잎도, 봄꽃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동해안 숲은 검게 그을린 채 ‘침묵의 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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