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단체가 지하철 시위 재개한 이유는…“반복되는 희망 고문”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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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장애인 정책 발표에 “요구 내용 하나도 없어…매우 실망”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 '제2차 삭발 투쟁 결의식'에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연 '제2차 삭발 투쟁 결의식'에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는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이 아닌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는 19일 YTN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2001년 한 지체 장애인이 지하철역 리프트에서 떨어져 숨진 이후부터 이 날을 장애인의 권리를 얘기하고 노래하는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로 부르고 있다. 이들이 휠체어를 탄 채 시민들의 출근길을 막아서면서까지 '차별 철폐'를 외치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장애인 이동권 관련 대책을 내놨는데도, 시위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이유는 뭘까. 

전장연은 20일까지로 시한을 못박고 인수위에 장애인 정책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원하는 답변을 듣지 못할 시엔 21일 오전 7시부터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2호선 시청역·5호선 광화문역 3곳에서 동시에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 시위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3일 5호선 여의도역에서 첫번째 운동을 시작한 이후 지난달까지 총 25번의 시위를 벌였으나, 인수위가 요구안 실현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시위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잠정 중단한 상태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 정책의 핵심은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를 위한 내년도 예산 편성이다. 그러나 인수위가 전날 내놓은 '장애와 비장애와의 경계 없는 사회 구현을 위한 장애인 정책'에는 이와 관련한 언급은 없다. 인수위 발표에는 장애인 개인 예산제 도입 검토, 지하철 역사당 1개 이상의 엘리베이터 설치, 2023년부터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의무 교체,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도입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정책은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시민권을 보장하기에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게 전장연 측 주장이다. 박 대표는 인수위 발표와 관련해 "저희가 요구하고 있는 내용들은 하나도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다"며 "구체적인 대안이 있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고 희망 고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권이 출발할 때마다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한 정권은 없었다.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겠다고 한 적도 없었다. 모든 정권이 확대하고 검토하겠다는 똑같은 말을 했다"고 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청와대 인근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1박2일 집중 결의대회에서 단체 삭발에 동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청와대 인근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열린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1박2일 집중 결의대회에서 단체 삭발에 동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장연은 인수위가 검토 중인 '장애인 개인예산제'보다 탈시설 예산 등 장애인 권리 전반에 대한 예산을 대폭 늘리는 '권리예산제'가 더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장애인 개인에게 예산을 지급하고 각자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인프라 확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행할 경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내년도 예산에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에 쓸 807억원을 편성하고, 장애인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아 24시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 활동지원예산 2조9000억원을 편성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 ▲특별교통수단의 지역별 격차 해소를 위한 기재부의 관련 시행령 개정 ▲장애인평생교육법 통과 ▲고용노동부 차원의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지침 마련 등의 요구안도 제시했다.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잠정 중단하면서 경복궁역 승강장에서 삭발결의식을 매일 진행해왔다. 전날에는 발달장애인과 가족 550여 명이 인수위에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단체로 삭발식을 했다. 발달장애인 가족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동료 의원들의 관심을 촉구하며 삭발에 동참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장애인들의 이동권에 더 배려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무관심을 자책해야 한다"며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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