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아침이 힘들어…운동·호흡·긍정 훈련으로 극복
  • 함영준 전 청와대 비서관 (mindgil@naver.com)
  • 승인 2022.05.18 10:00
  • 호수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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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찾아온 공허감, 밤마다 악몽…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어나
신체.정신.마음 3대 요소 조화시켜야…도리도리 운동도 도움

내가 겪은 우울증, 그 극복기

자신의 우울증 체험기 《한낮의 우울》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에 오른 앤드루 솔로몬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명문대를 졸업했으며 신인 작가로서도 성공한, 부러울 게 없는 사내였다.

그러던 그에게 격렬한 우울증이 찾아왔는데 그는 결정적 동기로 ‘상실감’을 들었다. 발병 전 3년 동안 사랑하던 어머니, 여자친구, 그 여자친구와 사이에 가지게 된 태아를 연달아 잃게 됐으며, 마지막에는 자신을 돌봐준, 어머니를 빼닮은 정신분석가와의 관계마저 끊어져버린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우울감에 빠지거나 심하면 우울증에 걸린다. 나도 앤드루 솔로몬과 같은 ‘상실감’으로 짧은 기간이지만 호되게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관계에서 온 상실감이 아니라 퇴직 후 찾아온 공허감, 추구하려던 일(욕망)의 좌절에서 온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 했다.

ⓒfreepik

후회·회한·반성·자책·수치심·죄책감이 감정을 지배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50대 중반 나이였다. 나름 후반기 인생을 위해 일을 도모하다 생리에 맞지 않아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집에 있다 보니 처음에는 무기력하고 허탈했다. 세상이 재미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지난 시간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후회, 회한, 반성,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수치심, 죄책감 등으로 발전됐다(생각의 힘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다. 자다가 벌떡벌떡 깨어났다. 새벽에 마치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듯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깨어났다.

문제는 외부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나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사람도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 스스로 가해자요 피해자였던 셈이다. 스스로 느끼는 패배감, 후회, 자책, 허탈감의 공격이 하루에도 수없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곤했다. 어두운 마음이 덮치면서 온갖 잡념과 번뇌, 우울감에 휩싸이곤 했다. 그렇게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 원장은 내가 지나친 성취욕구로 스스로를 소모했고, 그에 따른 피로와 자책, 회한이 우울증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치료의 첫 단계는 망가진 몸과 마음, 정신을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좀 쉬고 자신을 즐겁게 해주세요.”

그는 환자의 노력과 의지로 몇 달 만에 약을 끊고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었다. 나는 우울증을 약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인간은 신체와 정신(이성)과 마음(감정)으로 이뤄져 있다.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로 조화를 이뤄야 행복한 삶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두뇌활동이 이뤄지며 이것이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나는 운동으로 심신에 활력을 주고,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정신력을 강화하고, 명상으로 마음을 쉬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우울증 극복 일과표를 이렇게 만들었다.

새벽 5시에 무조건 일어나 자전거를 한 시간 탔다. 우울증에 걸리면 아침 시간이 가장 힘든 법인데 이를 참고 일어났다. 아침 운동을 하면 몸에 활기가 생긴다.

낮에 마음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최대한 긍정적 사고와 태도로 살려고 애썼다. 말을 적게 하고, 기도문이나 마음에 힘이 솟는 좋은 구절 등을 수첩에 적어놓고 외웠다.

저녁에는 동네 한적한 길을 산책하면서 마음을 추슬렀다. 텔레비전 뉴스는 되도록 보지 않았다. 대신 단전호흡이나 머리를 좌우로 돌리는 ‘도리도리 운동’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쉬었다. 이런 식으로 3개월을 보내면서 약을 다 끊고 병원 치료를 마쳤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항상 신체 질환과 마찬가지로 마음 질환도 재발할 수 있습니다. 늘 마음 관리를 하십시오.”

나는 스스로 재활훈련에 들어갔다. 평소 부정적 감정에 익숙했던 마음 회로를 긍정적으로 돌리기 위해 운동과 기도, 성경책 읽기를 열심히 했다. 또한 내 성격의 장단점, 불안이나 트라우마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 자기 성찰을 해나갔다. 한편 평소 좋아하던 일들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새벽 5시에 무조건 일어나 자전거 타기…3개월 만에 약 끊어

점차 마음이 편해지고 설렘이 찾아왔으며, 서서히 자책감 등에서 벗어났다. 한 1년쯤 지났을까. 나는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러나 내친김에 인생 후반기에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마음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직이었던 기자의 노하우를 살려 우울증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의사, 성직자, 환자, 심리학자 등 많은 사람을 만나며 지식을 얻고 이해의 폭을 넓혔다.

결국 2017년에 나의 우울증 치유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이어 명상강좌, 마음 컨퍼런스 등 관련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증 발병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몸과 마음이 훨씬 강건해진 상태로 살고 있다. 우울증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알게 되고, 나의 심신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대응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우울증 극복을 위한 나의 노력을 정리해 보면 크게 7가지다. △운동 △긍정적 사고 △명상 △글쓰기 △음악 등 취미생활 △친교(인간관계) △신앙이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기쁨, 감사, 자신감, 배려심, 희망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무엇보다 값진 소득은 깨달음이다.

첫째는 어려움이 주는 축복이다. 비록 과정은 힘들었지만 이겨내면서 더 성숙해졌다.

둘째는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는 나나 다른 사람에 대한 긍정적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셋째는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다. 어떻게 살아야 나다운 삶이고, 행복한 삶이며, 진정 의미 있는 삶일까?

우울증을 겪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까지 이런 생각들은 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 같다.

함영준은 누구

마음건강 길(mindgil.com) 대표. 조선일보 사회부장·국제부장을 지내고 청와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고려대 초빙교수. 자살률 원인 1위인 우울증 퇴치를 인생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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