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폐기물과 페트병이 패션으로 변신하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4 16:00
  • 호수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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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업사이클링’에 빠진 재계…기업 총수까지 나서 친환경 ‘드라이브’

이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됐다. 가치소비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더 눈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소비의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는 특히 ESG 경영에 관심이 많다. ‘가치소비’ ‘미닝아웃’ ‘돈쭐’ ‘가심비’ 등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이들은 개인의 신념과 가치관을 소비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최근 대한상의가 MZ세대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MZ세대의 절반 정도(46.6%)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보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제품을 구매할 때도 이들은 기업의 ESG 실천 여부를 중요하게 인식한다. 응답자의 64.5%가 ‘ESG 경영 실천 기업의 제품이 더 비싸더라도 사겠다’고 말했다.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였던 ESG가 기업의 가치와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새로운 투자 지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가성비보다 가심비 챙기는 MZ세대 겨냥

최근 재계가 앞다퉈 ESG 경영에 뛰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 총수까지 나서 ‘ESG 경영’에 대한 드라이브를 걸 정도로 변화가 가팔라지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비자의 니즈(욕구)나 비즈니스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면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객 경험이 필요하다. ESG 경영은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에게 기업이 다가갈 수 있는 최고의 무기”라고 설명했다.

이 중에서도 ‘업사이클링(up-cycl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디자인 등을 가미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면서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킨다”면서 “업사이클링은 최근 경영 트렌드가 된 ESG를 실천하면서 지속 가능 경영도 실현할 수 있어 재계가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재계의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찬양자’다. 그는 지난해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의 일종인 고고챌린지에 동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와 현대차그룹은 탈(脫)플라스틱 사회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겠다. 이런 노력이 플라스틱 줄이기, 더 나아가 업사이클링 제품 이용 확대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는 페트병에서 뽑아낸 재생섬유로 만든 업사이클링 티셔츠를 입고, 업사이클링 인형을 손에 든 사진을 그룹 페이스북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자동차 소재를 업사이클링한 제품을 잇달아 공개했다. 2019년에는 미국 친환경 브랜드인 제로+마리아 코르네호와 함께 폐가죽시트를 업사이클링한 의상을 뉴욕에서 공개했다. 2020년에는 알리기애리, 이엘브이 데님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자동차 폐기물을 활용한 주얼리 및 조끼를 선보였고, 지난해에는 글로벌 패션 편집숍인 분더샵 등과 함께 자동차 소재를 업사이클링한 재킷, 후드, 바지 등 12종을 공개했다. 정 회장은 “지속 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전기차나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 확대나 수소 캠페인도 그 연장선상이다”고 말했다.

효성티앤씨가 서울시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으로 만든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 ‘리젠서울’ⓒ효성티앤씨 제공
효성티앤씨가 서울시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으로 만든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 ‘리젠서울’ⓒ효성티앤씨 제공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도 평소 “고객들은 이미 높은 수준의 환경 인식과 책임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면서 “친환경은 선택이 아니라 프리미엄 브랜드를 위한 필수 요소다”고 말했다. 때문에 효성그룹 역시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친환경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효성티앤씨는 최근 투명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인 ‘리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서울과 제주 등에서 수거한 페트병을 ‘리젠서울’이나 ‘리젠제주’ 등의 섬유로 재활용하는 ‘리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현재 서울에서만 900만 개의 폐페트병을 재활용하는 성과를 냈다.

효성화학은 친환경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폴리케톤’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폴리케톤은 친환경·탄소 저감형 소재다. 폴리케톤을 1톤 생산할 때마다 일산화탄소를 0.5톤 줄일 수 있다. 효성화학은 이 폴리케톤을 최근 수도계량기에 이어 전력량계에도 적용했다. 조 회장은 “효성은 그간 리젠과 폴리케톤을 필두로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며 지속가능경영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비자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설치된 CJ제일제당 햇 반 용기 전용 수거함에 사용한 햇반 용기를 넣고 있다.ⓒCJ제일제당 제공
한 소비자가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설치된 CJ제일제당 햇 반 용기 전용 수거함에 사용한 햇반 용기를 넣고 있다.ⓒCJ제일제당 제공

현대차·효성·CJ·한화 등 변화에 적극적

식품기업인 CJ제일제당은 최근 이사회 내에 지속가능경영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신설했다. CJ제일제당은 올 초 사용한 햇반 용기를 회수해 가치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재활용 플랫폼을 만들었다. 포장지는 쓰고 버린 페트병을 재활용했고, 깨진 조각쌀과 콩비지로 고단백 영양 스낵을 만들었다. 자연에서 소비자 식탁으로, 다시 자연으로 되돌리는 이 회사의 ‘Nature to Nature’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총 5577톤의 폐기물을 줄였다. 전년 대비 7.7배 증가한 수치다. 재활용 소재 활용과 경량화 등 패키징 기술 개발을 통해 플라스틱 사용량도 1019톤이나 줄였다. CJ제일제당은 향후 생분해성 플라스틱 소재인 PHA를 활용한 제품이나 푸드 업사이클링 등 친환경 제품을 확대할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경영 철학인 사업보국(事業報國)에 뿌리를 두고 소비자, 주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신뢰를 주는 경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엑스 전시장에 설치된 투명페트병 IoT 수거함ⓒ한화솔루션 제공
코엑스 전시장에 설치된 투명페트병 IoT 수거함ⓒ한화솔루션 제공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ESG를 2022년 주요 경영화두로 잡았다. 그는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위기를 해결하는 데 기업의 책임과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이런 노력이 우리 안에 정착한 ESG 경영과 ‘함께 멀리’ 전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이 특히 강조한 게 업사이클링이다. 한화솔루션은 그동안 주요 사업인 태양광과 함께 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연계한 사회공헌활동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 친환경 스타트업 ‘오이스터 에이블’과 함께 최근 진행한 ‘플라스틱 투명페트병 분리배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분리배출을 통해 수거된 투명페트병은 의류 및 액세서리로 다시 탄생했다. 요컨대 오이스터 에이블이 개발한 투명페트병 분리 배출함에는 바코드 리더기와 인공지능(AI) 기반의 인식 기능이 있다. 사용자가 투명페트병 바코드를 태그하고 라벨을 분리한 뒤 수거함에 투입하면 ‘오늘의 수거’ 앱을 통해 포인트가 적립되는 식이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이 분리 배출함 설치 구역과 수거 플라스틱 종류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분리배출 문화를 정착시키고 폐기물 감축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기료만 아껴도 2.5% 추가 우대금리

금융권도 ‘녹색금융’ 통해 ESG 경영 본격화

ESG 경영은 재계뿐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화두다. 바로 ‘녹색금융’을 통해서다. 국내 주요 은행들은 친환경활동을 인증한 고객에게 우대금리 등의 혜택을 주면서 친환경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업의 녹색경영 지원을 위해 마련된 ‘녹색소비-ESG 얼라이언스’ 협약식에 재계뿐 아니라 금융권이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은행의 ‘에너지 챌린지 적금’이 대표적이다. 이 상품은 예금에 가입하기 전과 후의 전기 사용량을 비교해 우대금리를 부여한다. 플러그 뽑기, 불 끄기, 냉장고 적정 용량 유지하기 등 미션을 수행해 전기 사용량을 절감할 경우 최대 2.5%까지 추가로 금리를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이벤트는 단순히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차원만이 아니다. 자발적인 절전을 유도해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녹색금융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더 의미가 있다.

실제로 하나금융그룹은 2021년을 ESG 경영의 원년으로 공표했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 내에 지속가능경영위원회까지 만들었다. 그룹 관계자는 “2030년까지 총 60조원 규모의 ESG 금융 조달과 25조원 규모의 ESG 채권 및 여신을 발행하는 게 목표다”면서 “이런 노력 때문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 글로벌 ESG 평가기관으로부터 매년 상위 등급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등도 최근 녹색금융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기준금리가 오르자 ESG 상품인 ‘아름다운 용기 정기예금’ 금리를 0.4%포인트 인상했다. 이 상품은 일회용컵 사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서약을 하면 0.15%의 추가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으로 정기예금은 최대 2.2%, 적금은 3%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KB국민은행과 IBK기업은행은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KB 맑은하늘 적금’과 ‘IBK 늘 푸른 하늘’ 통장을 각각 판매하고 있다. 하나은행과 마찬가지로 종이통장 안 만들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미션을 실천할 때마다 우대금리를 제공받는다. 은행이나 상품별로 금리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정기 예·적금 상품에 가입할 경우 최대 3.6%의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바다 쓰레기’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해수부는 2030년까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50%로 줄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추세에 맞춰 출시된 상품이 수협의 ‘SH 해양 플라스틱 제로 예·적금’이다. 해양환경정화 활동을 직간접으로 지원하기 위한 공익 상품으로, 최근 금리 인상으로 적금은 최대 3.4%(3년 기준)의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적금을 통해 조성된 돈은 해양경찰청과 해양환경공단 등에 출연돼 해양 플라스틱 저감 활동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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