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냐, 농민 생존권이냐 갈림길에 서다
  • 김휘동 유럽통신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2 12: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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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정부, 질소 배출 줄이려 가축의 30% 감축 목표 제안
전체 농가 중 3분의 1이 문 닫을 위기에 농민들 과격 행동 나서

네덜란드 정부는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자 질소 배출을 줄이려고 ‘전체 가축의 30% 감축’이라는 극약처방을 발표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하는 3만 농민이 들고 일어나 정부와의 대치가 다시금 격화되면서 올여름 네덜란드 사회를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 농민들은 농축산물의 배송을 거부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형 트랙터를 동원한 고속도로 점거와 심지어 정치인에 대한 살해 협박과 자택까지 찾아가 분뇨를 뿌리는 등 과격한 양상의 시위가 발생했다.

네덜란드 농민들의 불만을 촉발한 ‘가축 30% 감소’ 정책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갈등의 첫발은 2018년 유럽사법재판소(CJEU)가 ‘네덜란드의 질소 감축 정책이 부실하며 유럽연합 법령을 위반하고 있다’는 한 환경단체의 고발에 그들의 손을 들어주면서다. 본 판결 이후 네덜란드 정부의 질소 감축 방안을 위한 논의 과정에서 농민들의 반발이 촉발됐다.

시위의 시발점은 네덜란드 국립 공중보건환경연구소(RIVM)가 질소 배출 관련 보고서를 발표한 2019년이다. 당시 연구소는 자국이 ‘과다한 질소 배출로 인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하며 ‘전체 배출량의 46%가 농업 분야에서 발생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대부분의 질소 배출이 가축 분뇨로 인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축산농가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6월27일 네덜란드 베스테르하르의 고속도로에서 농부들이 정부의 가축 30% 감소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6월27일 네덜란드 베스테르하르의 고속도로에서 농부들이 정부의 가축 30% 감소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EPA 연합

CJEU, “네덜란드 질소 감축 정책 부실” 지적

이에 당시 마르크 뤼터 총리의 3기 집권 연정을 구성하고 있던 네덜란드 하원의 주요 정당 중 하나인 ‘민주66’의 치어르드 드 흐로트 의원을 중심으로 당시 가축 총량의 절반을 감축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또한 네덜란드 연방 대법원은 CJEU의 2018년 판결을 인용해 네덜란드 농민에게 추가적인 질소 배출 허가권 발급을 중단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 인해 발생한 농민들의 반발이 네덜란드 전역에서 관측되다 2019년 10월 1일 헤이그에서 첫 집단 시위로 이어졌다.

농민들의 시위는 종종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모습을 띠기도 했는데, 이들은 대형 트랙터를 이용해 주요 도로와 공항, 기차역 등을 점거해 나갔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대형 농기계 철거를 위해 군용 트럭까지 투입하며 대응해 나갔다. 특히 2020년 5월 네덜란드 법무안전부 산하 대테러안보조정실(NCTV)에서 발표한 제52차 테러위협평가보고서에서는 시위를 주도하는 집단 중 과격성을 띤 농민단체로 평가받는 ‘파머스디펜스포스(Farmers Defence Force)’를 이례적으로 언급하며, 이들의 시위는 ‘평화적 범위를 넘어섰고 사회 양극화를 야기한다’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농민 시위의 폭력적 양상이 오랜 시간 지속된 것은 아니다. 폭력성으로 인해 초기 광범위했던 대중의 농민 지지가 점차 악화됐으며, 국내 여론 또한 각계별 반응이 엇갈려 있었다. 이에 질소 저감 문제에 대한 논의는 팬데믹 상황과 네덜란드의 정치 일정과 맞물려 차기 정권으로 바통이 넘어갔다. 시위 양상도 소강 국면에 들어서면서 농민들은 과격한 방식이 아닌, 위아래를 뒤집은 네덜란드 국기를 게양하거나 들고 서 있는 등의 다소 평화로운 방식으로 행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3월 총선 이후 약 10개월 만에 4기 집권 연정을 구성한 마르크 뤼터 총리의 내각은 지난 6월, 2030년까지 네덜란드의 오염 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전체 가축의 30% 감축’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가 가축 감축을 위해 농민들에게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번 30% 감축 발표가 있기 전에 지방자치단체와 농민들의 업종 ‘전환’을 돕기 위한 250억 유로 규모의 예산 투입을 지난해 12월 발표한 바 있었다. 그러나 본예산 투입에 대한 세부적인 이행 계획의 발표가 없었기에 오히려 농민들의 불신만 커져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발표한 30% 감축 목표는 농민들의 화를 더욱 키우는 꼴이 됐다.

이에 정치인의 자택까지 찾아가 벌이는 과격 시위가 발생했다. 지난 6월 시위대가 질소 감축 정책을 담당하는 크리스티안느 반 데르 왈-제흐링크 장관 자택 밖에서 분뇨를 뿌린 사건이 있었으며, 데르크 보스와이크·치어르드 드 흐로트 하원의원들의 자택 앞까지 시위가 이어졌다. 한편 네덜란드의 친농민 정당인 농민시민당(BBB)의 카롤린느 반 데르 플라스 하원의원은 이번 사태로 인해 수많은 살해 협박을 받아 약 일주일간 공개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6월 당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참석차 마드리드를 방문 중이었던 마르크 뤼터 총리는 “시위를 할 수는 있으나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해 달라”면서 “도로를 막거나 장관의 집 밖에서 폭죽을 터트리면서 분뇨를 뿌리는 등 그의 가족들을 위협하는 행동은 하지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농민들 과격 시위에 경찰 대응도 강경해져

높아지는 수위에 네덜란드 경찰의 시위 진압도 더욱 강경해졌다. 지난 7월 네덜란드 북부 헤이렌베인에서 발생한 기습적인 고속도로 점거 시위에서 경찰은 대형 트랙터를 운전하는 시위대를 향해 권총을 사용한 경고사격과 조준사격을 실시했다. 경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트랙터가 경찰을 향해 돌진하려 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대응이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트랙터를 운전하던 만 16세의 소년이 살인미수로 체포됐다.

과격 시위는 농민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 또한 약화시켰다. 네덜란드의 뉴스 전문 채널인 에인반다흐가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9년 10월에는 ‘농민들이 시위하는 이유를 이해한다’가 89%였으나 올해 7월 28일 조사에서는 60%로 하락했다.

네덜란드 정부와 농민 간의 갈등은 아직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으나 다행히 대화의 물꼬는 트였다. 여름휴가와 겹친 의회 휴회 기간이 끝난 지난 5일부터 양측의 협의체가 형성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정부에 대한 농민들의 깊은 불신만을 확인하는 모양새다.

정부 측 협상단을 대표하는 요한 렘케스 전 부총리는 농민들과의 첫 면담 후 “(농민들의) 불신은 제대로 된 정책의 부재로 인한 것이며 질소 이슈와 같은 문제가 지난 몇 년간 방치돼 온 것에서 시작됐다”고 언급했다. 이 협의체는 농민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와 의회 등 다양한 단체를 초대해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지속할 예정이다.

한편, 과격한 시위를 주도해 온 파머스디펜스포스 또한 당분간은 선의의 뜻에서 과격한 행동을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대변인인 마르크 반 덴 우벌은 “가축의 감축 없이도 질소 배출량을 줄일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며 “네덜란드 정부가 새로운 혁신을 이뤄줄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가축 30% 감축’ 안은 선도적이었으나 체계적인 이행 방안이 뒷받침되지 않아 농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네덜란드만의 문제로 남진 않을 전망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4월 2050년까지 모든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넷-제로를 달성하는 반-오염 법령을 통과시켰으며, 네덜란드가 제시한 목표 또한 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생존권을 내세우며 거세게 반발한 네덜란드 농부들의 시위는 향후 기후 위기 대응 체제로의 전환이 쉽지만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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