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8·15 대회’ 결의문, 북한이 초안 썼을 것 [쓴소리 곧은 소리]
  •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 (mkw1972@hanmail.net)
  • 승인 2022.08.20 10:00
  • 호수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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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직총과 공동행사, ‘한미동맹 해체’ ‘군사훈련 중지’ 서슴없이 주장
과거 범민련 때도 정치문서 작성 문제에서 북한은 절대로 양보 안해

8·15 광복절 77년을 맞아 8월13일 오전 남한의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북한의 직총이 연합해 남북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오후에는 남한의 100여 개 단체가 민주노총과 함께 자주평화통일대회를 개최했다. 이와 별도로 남북 해외 청년학생대회가 열렸는데, 넓은 의미에서 민주노총 행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행사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 해외 특히 북한과 공동으로 행사를 치르는 데 방점이 두어졌다. 노동자대회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북한의 직총이 합의한 공동결의문이 낭독됐다. 비슷한 시간 열린 남북 해외 청년학생대회에서도 북한과 공동결의문이 발표됐다.

북한이 포함된 공동결의문이 채택되려면 공동결의문 초안이 작성되고 이를 각기 합의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전화, 팩스, 이메일 등을 통한 북한과의 소통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국가보안법상 회합통신 위반이다. 1980~90년대 전대협이나 한총련의 통일 행사가 친북적이라고 비난받은 이유도 이들이 통일행사를 북과 함께하는 형태로 치렀기 때문이다.

ⓒ뉴시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8월13일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3번 게이트 앞에서 민주노총·한국노총·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남북 노동자 3단체 결의대회’를 열고 민중 의례를 하고 있다.ⓒ뉴시스

남한 다른 통일 단체들의 선언문과 차이 뚜렷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는 북한과 함께하기보다 남한의 통일단체들과 연대해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이럴 경우 행사의 규모가 더 커지고 여타 통일운동 단체들에 대한 영향력도 커진다. 그럼에도 8월13일 오후 자주평화통일대회와 별도로 사전 행사로 북한과 함께하는 노동자대회를 개최한 것은 민주노총이 국가보안법 위반을 감수하고라도 북한과의 공동행사를 중시하겠다는 의지를 잘 보여준다.

둘째는 결의문이다. 위 행사의 핵심 결의문(노동자, 학생) 두 개를 모두 사실상 북한이 작성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1995~2005년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으로 남북을 오가는 정치 문서들을 숱하게 다뤄 왔다. 그들 문서 대부분을 북한이 초안을 작성한다. 이건 북한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내가 했던 일은 북한이 작성한 문서에서 너무 생경한 표현들을 남한 실정에 맞게 조정하는 정도였다. 같은 시간대에 열린 남북 노동자대회, 남북 해외 청년학생결의문을 비교해 보기 바란다. 결의문의 기본 구조가 동일하다. 이 결의문을 남북 해외가 아니라 남측 단체들이 주최한 자주평화통일대회의 선언문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북한과 함께 행사를 치른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북한의 입김이 강하게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평화의 내용 변화다. 행사는 대부분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임박했다고 주장하고 그 대안으로 대북 적대정책이나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한미동맹 파기나 주한미군 철수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체로 1990~2010년대까지는 주로 북한이 약자였기 때문에 대결과 전쟁은 미국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의 핵·미사일 역량이 고도화하면서 북한의 상응한 조치가 강조되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것이 북한 전술핵의 공격적 배치다. 이럴 경우 전쟁은 북한으로부터 올 수 있다.

전쟁 위기가 내용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북한으로부터 올 수 있음에도 진보 성향의 거의 모든 단체는 전쟁 위기가 미국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통일운동 단체들이 2010년대 중반 이후 변화된 정세를 무시하거나 북한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8·15 행사의 참가인원은 대체로 5000~1만 명 수준이다. 이들 중 80% 정도가 주사파이거나 주사파의 영향력하에 있는 사람들이다. 나머지 20%는 종교계·시민단체 사람들이다. 주사파 중에는 정당으로 진보당과 민중민주당이 있고, 나머지는 범민련과 민주노총 조합원 중 주사파 성향의 조합원들, 대진연 등이다. 통진당 해산 이후 주사파가 통합되지 못하고 분화된 양상을 잘 보여준다.

 

한반도의 가장 큰 전쟁 위기는 북한 전술핵

8·15 행사 이후에도 주사파 또는 통일운동 단체들의 시위는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8월22일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9월 중순까지 정부가 추진하는 사드 정상화 조치가 계기다. 특히 후자는 매우 심각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 주도의 반중 동맹에 합류하려는 조건에서 사드 정상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는 문재인 정부하에서 성주 사드기지를 반대하고 있는 통일평화 단체들과 정면 충돌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주사파 또는 통일운동 단체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그들은 반미의 연장선에서 미·중 사이의 등거리, 국익 외교를 주장하고 있으나 한반도 상황은 빠르게 미·중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빨려들고 있다. 북한 관계 또한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이 가시화하고 있는 조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나 한미동맹을 해체하라는 주장은 말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주사파 통일운동의 이론 구조는 1980년대 중후반 주사파 학생운동과 거의 동일하다. 그들은 30년 전 대학에서 출현한 주사파의 이념 및 이론 구조를 여전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정세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결정적으로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군사적으로 북한이 전술핵을 가진 조건에서 한반도에서 가장 심각한 전쟁 위기는 북한의 전술핵으로부터 온다. 어쩌면 연평도 포격전과 유사하되 규모는 훨씬 큰 비극적 사태가 올 수 있다. 둘째는 반일 운동을 말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못된 짓을 한 윤미향 등의 문제다. 지금도 버젓이 윤미향이 각종 행사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윤미향을 그대로 두고 민족정기를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셋째는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에서 미·중 쟁패기로 들어선 조건에서 민족의 자주와 같은 개념이 성립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시대와 어긋나는 정치 이념이나 세력은 역사에서 도태되는 법이다. 주사파 정치세력과 이념은 2022년 한반도 상황과 충돌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민경우 대안연대 상임대표

민경우는 누구

1984년 서울대 국사학과에 입학해 87년 6월 당시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을 지냈다. 1995~2005년 주사파를 대표하는 조직 중의 하나인 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치적·법적으로 전향해 지금은 중도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인 대안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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