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고가 티켓 논란 언제까지 계속될까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5 14: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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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공연 예정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VIP석 가격이 16만원
업계 “팬데믹 기간 적자 감안하면 이 정도로 폭리라는 건 말도 안 돼”

한국에서 연말 공연 예정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라이선스 뮤지컬 제작사가 지난 8월 중순 전체 배우 캐스트와 공연 일정, 티켓 가격 등을 공개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1957년 초연됐다. 국내 베테랑 제작진이 참여하고, 출연진도 모두 인기가 높은 배우들로 구성돼 있어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꼭 챙겨봐야 하는(Must-See)’ 공연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하지만 최고가인 VIP 티켓 가격이 16만원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일부 관객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뮤직맨》ⓒPhotograph by Julieta Cervantes 제공
브로드웨이 뮤지컬 《뮤직맨》ⓒPhotograph by Julieta Cervantes 제공

상반기 전체 공연 매출의 79%가 뮤지컬

뮤지컬은 고가의 티켓 가격 정책이 유지되는 상업 공연 장르다. 연극이나 무용, 클래식 등 다른 공연에 비해 관람에 지출하는 비용이 크다. KOPIS 공연예술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뮤지컬의 평균 티켓 가격은 5만8461원으로 연극(4만2000원)이나 클래식(3만원)보다 높다. 게다가 한국 뮤지컬 시장은 팬데믹 시기의 부진을 털어내고 예년과 같은 수준을 이미 회복했다. 올 상반기(1~6월) 전체 공연 매출액이 2316억원인데, 이 가운데 뮤지컬이 1826억원으로 전체의 79%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10만원이 넘는 고가 티켓이다.

티켓 구분은 보통 가격 순으로 VIP, R, S, A, B석으로 나뉜다. 이 중 10만원이 넘는 티켓은  VIP와 R석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S석이 포함되기도 한다. VIP석은 1층의 중앙/앞구역, R석은 1층 사이드/뒷구역 및 2층 앞구역에 분포돼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넓은 구역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비싼 VIP석이다. 따라서 VIP 가격 책정은 항상 고가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2010년을 기준으로 이후 VIP 가격은 12만원부터 서서히 상승하다가 팬데믹 전후에 15만원을 기록했다. 올해 한국 배우들이 공연했거나 할 예정인 라이선스 공연 기준으로 《지킬 앤 하이드》 《데스노트》 《삼총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고려하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VIP 15만원에서 6.7% 상승해 처음으로 16만원이 된 사실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공연 제작사가 팬데믹 기간 동안 엄청난 적자를 기록했기에 이 정도 상승으론 폭리를 취하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오픈런 공연을 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더해 인건비와 각종 공연장비 대여료를 비롯한 전반적인 제작 비용도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장기 뮤지컬 공연이 일상화된 뉴욕 브로드웨이 상황과 비교된다. 팬데믹으로 1년 반 동안 폐쇄됐던 뉴욕 극장가가 올봄부터 정상화됐다. 티켓 가격 역시 올랐는데 그중 최고가는 영화배우로도 유명한 휴 잭맨이 출연하는 《뮤직맨》으로, 평균 티켓 가격이 무려 37만원(283달러)이었다. 스테디셀러인 《해밀턴》도 28만원(213달러)이다. 그런데 평균가가 아닌 최고가는 따로 있다. 《뮤직맨》은 91만원(697달러), 《해밀턴》은 58만원(449달러)이다. 브로드웨이는 2000년대 초반에 가장 시야가 좋은 구역을 한정하며 일반 티켓보다 2~3배 비싸게 파는 ‘이너서클’ 제도가 합법화돼 있다. 암표상이 기업으로 합법화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어떤 경우라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구조다. 이는 비즈니스의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미국이기에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직능별 공연 노조의 힘이 막강해 인건비가 우리나라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 그럼에도 개막 후 히트해 장기 공연이 이뤄지면 고가 티켓이 안정적으로 한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팔리면서 더 큰 이윤을 창출할 수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물가 상승으로 인해 제작비 부담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마켓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구조다. 우리 극장에서는 대부분 길어야 6개월 정도만 한 작품을 위해 대관해 준다. 짧은 기간 동안만 공연을 해야 하고 같은 공연을 매해 다른 극장에서 올리다 보니 무대 장치를 설치하고 철거하는 비용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한국 뮤지컬 시장은 최근 20년 동안 관객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거의 40배에 달하는 매출 성장을 보였다. 현재는 연간 4000억원의 시장으로까지 성장했지만 오히려 경제활동인구 감소를 보이고 있는 현실과 내수시장 중심의 마켓이 향후 그간의 성장세까지도 둔화시키지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관객들은 2018년부터 일부 공연에서 도입한 ‘주말 할증제’가 오늘날 가격 상승의 중간 단계가 됐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는 R석이었던 구역이 현재는 VIP 구역으로 재지정돼 실질적인 티켓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해외 배우들과 스태프가 내한해 공연하는 투어 프로덕션에는 이미 VIP 16만~18만원을 지불했다. 제작사들은 티켓 가격을 추가로 올리려 할 것이고 관객들은 비명을 지르게 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이렇듯 밀고 당기는 과정과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티켓 가격은 계속 출렁일 수밖에 없다.

ⓒ시사저널 최준필
8월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매표소가 공연 티켓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섣부른 가격 인하로 공연 완성도 하락 우려도

하지만 서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들이 있다. 바로 공연의 수준을 올바르게 관리하는 것이다. 제작사가 티켓 가격을 갑자기 낮춰야만 한다면 결국 제작비를 삭감하는 방법을 먼저 고민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대 인력과 장비를 줄이면서 서서히 예술적인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관객은 이를 알아챌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VIP 구역을 광범위하게 설정했더라도, 같은 구역 안에서 상대적으로 거리와 각도 등으로 관람이 불편한 시야인 사이드/뒷좌석을 유동적인 할인 정책을 통해 해소해 주는 세밀한 마케팅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스타 캐스팅을 피할 수 없겠지만 지나치게 높은 개런티 혹은 한 배역에게 너무 많은 멀티 캐스팅을 시도하는 것은 연습 부족을 야기해 공연의 질을 떨어뜨리고 관객을 피해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

해외에서도 대형 뮤지컬 관람은 영화나 다른 복제 콘텐츠 소비가 갖지 못하는 특별한 희소성으로 인해 오롯이 ‘명품 소비’ 영역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명품이 명품인 이유는 그 완벽한 상품성에 있다.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기꺼이 소비자가 된 관객들에게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이 가격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명품으로서의 높은 완성도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면 이러한 고가 티켓 논란도 발전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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