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가 쓰고 있는 걸그룹의 새 역사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8 13: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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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차트 동시 석권하며 존재감 재확인…이미 지구촌 트렌드 선도하는 슈퍼스타

1년10개월 만에 정규 2집 ‘본 핑크(BORN PINK)’로 복귀한 블랙핑크는 10월1일자로 미국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그동안 방탄소년단, 슈퍼엠, 스트레이 키즈 등 보이그룹이 이 차트 1위에 오른 적은 있지만 한국 걸그룹의 1위는 처음이다.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에서도 1위다. 팝음악 차트의 양대 산맥인 빌보드 차트와 영국 차트에서 동시에 앨범 1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 가수로서는 방탄소년단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 걸그룹 중에서는 비욘세가 속했던 2001년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 21년 만의 기록이다. 블랙핑크가 한국 걸그룹의 역사, 세계 걸그룹의 역사를 동시에 쓰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블랙핑크의 ‘빌보드 200’ 1위는 의미가 남다르다.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고 썼다. LA타임스는 “블랙핑크가 또 한 번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고 했다. 세계적인 음악전문지 롤링스톤은 이번 블랙핑크 앨범에 대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기념비적인 팝 음반이 탄생했다”고 평가했다. 블랙핑크는 스파이스 걸스와 데스티니스 차일드에 이어 걸그룹 사상 세 번째로 ‘롤링스톤’ 표지를 장식했다. 

블랙핑크는 이미 2년 전 정규 1집 ‘디 앨범(The Album)’을 빌보드 200 차트 2위에 올렸을 때부터 세계 최고 걸그룹으로 불렸다. 지난해엔 전 세계 음악인 가운데 유튜브 구독자 수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구촌 유튜브 황제 방탄소년단, 저스틴 비버 등을 제친 것이다. 그렇게 걸그룹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는데, 이번 2집 복귀는 이들이 세계 걸그룹 황제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대관식이라 할 만하다. 

블랙핑크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 3억 뷰 돌파 기념 이미지ⓒ연합뉴스

YG풍의 승리 

블랙핑크는 2016년 8월8일 더블 타이틀곡 《휘파람》과 《붐바야》를 내세운 싱글 ‘스퀘어 원(SQUARE ONE)’으로 데뷔했다. 데뷔 전부터 YG가 작심하고 만든 걸그룹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YG 1기 걸그룹이었던 투애니원은 걸그룹 전성시대를 연 팀 중 하나인데, 그 위상이 독보적이었다. 다른 걸그룹들이 한국적인 소녀 감성을 내세웠다면 투애니원은 서구 팝스타 느낌이었다. 특히 음악이 빌보드 차트 팝송들과 비교해도 이질감이 별로 없을 정도로 팝적이었다. 당연히 독보적인 아성을 구축했는데, 그즈음부터 YG가 투애니원 시즌2를 작정하고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투애니원의 음악, 스타일, 실력에 상업적 외모까지 장착한 걸그룹이라는 소문이었다. 외모에 대한 취향은 주관적이고 극히 다양하지만 대체로 대중이 일반적으로 선호하는 외모의 기본 틀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래서 외적인 매력으로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니는 스타들이 지속적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YG가 새로운 걸그룹을 준비하면서 바로 이 부분까지 신경 쓴다는 소문이 나와 팬들로 하여금 기대하게 했었다. 

그렇게 탄생한 팀이 블랙핑크다. 처음 등장했을 때 ‘역시 YG’라는 찬탄과 ‘블랙핑크라는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다. YG는 한국에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회사인데, 일반적인 기획사들에 비해 팝적인 느낌이 강하고 아티스트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다 보니 팝스타 같은 가수들이 잇따라 탄생하지만 구설에도 자주 오른다. 보수적인 한국 사회가 이런 부분을 용납하지 못한다. 

호불호가 갈리는 속에서도 《휘파람》 등의 음악적 성취나 블랙핑크 멤버들의 실력과 매력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높은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더 거대한 반응이 동남아시아와 서구권에서 터졌다. 동남아시아권의 열기는 블랙핑크 멤버에 태국인 리사가 포함된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서구권에선 블랙핑크의 스타일에 열광했다. 특히 2018년 《뚜두뚜두》에 거대한 호응이 나타났다. 음악, 안무, 뮤직비디오 등이 모두 화제였다. 방탄소년단이 뮤직비디오로 국제 스타가 된 것처럼 블랙핑크도 《뚜두뚜두》 뮤직비디오를 통해 국제 스타로 우뚝 섰다. 그 뒤로 기복 없는 성장이 이어지면서 2020년 7월 비영어권 아티스트 최초로 ‘유튜브 구독자 수 톱5’에 올랐고, 2021년 9월10일 전 세계 아티스트 중 1위가 됐다. 현재 구독자가 8180만 명에 달하고, 1억 뷰 이상 영상이 33편이다. 누적 조회 수는 269억 뷰로 지구상에 적수가 없다. 《뚜두뚜두》 뮤직비디오는 20억 뷰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이미 세계 최고 걸그룹이 된 상태에서 이번 2집이 나온 것이다. 당연히 발표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예약판매 기간에 200만 장 이상의 선주문량을 기록했고, 출시 하루 만에 214만 장 판매로 한국 걸그룹 최초의 ‘더블 밀리언셀러’가 터졌다.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는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60개국 1위, 애플뮤직 앨범 차트에서는 64개국 1위를 차지했다. 

정규 2집 타이틀곡 《셧 다운(Shut Down)》은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인 ‘스포티파이’의 ‘톱 송 글로벌 주간 차트’에서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와 블랙핑크의 2집 선공개곡 《핑크 베놈(Pink Venom)》이 해당 차트에서 2위까지 올랐었는데, 앨범 발매 후에 마침내 1위 고지에 오른 것이다. 방탄소년단도 오르지 못했던 순위라서 의미가 각별하다. 

블랙핑크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 한 장면ⓒYG엔터테인먼트 제공

월드투어 이후 위상 더 높아질 듯 

YG는 투애니원 때부터 자신감 넘치는 ‘스웨그’를 선보여왔다. 소녀적인 사랑스러움을 내세우는 일반적인 걸그룹과 달랐는데, 그 유전자가 블랙핑크로 이어졌다. 그런데 걸크러시 신드롬이 일면서 걸그룹 초전성시대가 열렸다. 블랙핑크의 이미지와 시대 변화가 맞아떨어졌다. 서구 K팝 팬들은 한국 걸그룹을 통해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신여성의 롤모델을 본다. 그런 트렌드의 중심에도 블랙핑크가 있다. 급기야 이들은 전 세계 1020 Z세대 여성의 ‘워너비’, 우상이 됐다. 

이들은 인기 가수를 뛰어넘어 세계 팝계의 유명 인사(셀러브리티)가 됐다. 이들의 복장은 곧바로 국제 유행이 된다. 블랙핑크가 현대적 한복풍을 입은 후 해당 디자이너의 매출이 3000~4000% 상승했다고 한다. 네 멤버가 모두 디올, 샤넬, 생 로랑, 셀린느 등 세계적 브랜드의 홍보대사일 정도로 지구촌 트렌드를 선도하는 위치에 서있다.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홍보대사이고,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UN SDG 모먼트)에서 환경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존 레전드 같은 대스타들의 협업 제안도 이어진다. 블랙핑크는 10월 이후 월드투어를 통해 더욱 거대한 팝스타로 진화할 전망이다. 한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들이 잇따라 탄생하는 놀라운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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