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핵무장 해야” 61.7%…“9·19 군사합의 파기엔 반대” 50.9%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10.24 07:35
  • 호수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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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여론조사] ‘안보’는 철저히 하되, 대북 기조는 ‘온건’ 선호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북한 도발이 한국 경제 ‘위협’” 판단
‘친일 국방’ 논란엔 反日 감정 나타나

북한의 도발이 달라졌다. 다시 핵이 등장했고, 그 과녁에 한국이 정조준됐다. 북한은 9월25일부터 10월9일까지 연쇄적으로 실시한 미사일 발사를 스스로 ‘전술핵 운용부대 등의 군사훈련’이라고 밝혔다. 이 훈련은 한국의 주요 시설을 타격 목표로 특정해 이뤄졌다. 이미 완성된 무기체계(미사일)로 한국에 대한 실제 핵공격 작전을 실행하기 위한 군사훈련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북한 도발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모든 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진두지휘했다. 이제 미사일 ‘실험’은 끝났다. 북한이 ‘실전’에서 한국에 대한 핵공격을 실행하기 위한 훈련 단계에 돌입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는 또다시 벼랑 끝에 섰다.

우리 정치권에선 다시금 ‘핵무장’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집권여당을 중심으로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등 자체 핵무장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 등 다른 대안들도 구체적으로 터져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양한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고 했지만, 야권에선 실현 가능성도 실효성도 없는 주장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바깥에서 북의 도발이, 내부에선 합의 없는 대립이 계속되면서 국민의 불안감만 고조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원하는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은 무엇일까. 지금 북한의 위협을 얼마나 실감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쟁에는 어떤 입장에 있을까. 시사저널은 북한을 향한 국민 정서의 현주소, 대북정책에 대한 요구 등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대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복합적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은 한반도 긴장 국면 속에 물샐틈없는 ‘안보’를 요구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강경 제재’보다 남북 간 ‘대화’를 좀 더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0명 중 6명 핵무장 찬성…“찬성 여론을 대미 정치에 활용해야”

먼저 여권에서 연일 논쟁에 불을 붙이고 있는 자체 핵무장에 대한 여론을 확인했다. 시사저널이 시사리서치에 의뢰해 10월18일 전국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해 우리도 핵무장을 하는 데 ‘찬성한다’는 응답이 61.7%로 나타났다. 이 중 ‘매우 찬성한다’는 강한 동의가 36.7%에 달했다. 자체 핵무장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36.2%로 나타났다.

핵무장에 대한 의견은 자연스레 정치적 성향과 연동돼 있었다. 스스로 보수층이라고 답한 이들은 핵무장에 압도적 찬성을 보낸 반면(찬성 85.8%, 반대 12.9%), 진보층이라고 답한 이들은 과반이 핵무장에 반대했다(찬성 44.4%, 반대 54.2%). 중도층은 전체 응답률과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찬성 59.5%, 반대 38.4%). 세대별로도 대개 보수진영에 가장 두터운 지지를 보내는 70세 이상에서 찬성이 가장 높았으며(79.3%), 진보진영 지지율이 가장 높은 40대에서 반대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52.9%).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내 핵무장에 대한 찬성과 반대 여론은 그동안 꾸준히 6대4 비율을 유지해 왔다고 설명한다. 실제 2017년 9월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직후 한국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 60%가 자체 핵무장에 찬성했다. 반대는 35%로 나타났다. 그보다 앞선 2016년 9월 5차 핵실험 직후 실시한 조사에서도 역시 비슷한 경향(찬성 58%, 반대 34%)을 보였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언론보도에 따른 ‘심리적 동조’도 영향이 있다고 말한다. 홍 실장은 “북한의 핵 도발 보도가 쏟아지고 주로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핵무장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데, 자체 핵무장이 가져올 부작용과 후폭풍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이러한 정보 불균형은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할 것 같은 심리적 불안감을 갖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핵무장 실현 가능성 자체는 낮게 보고 있다. 지금의 핵무장 주장은 국내 정치용 메시지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우리의 자체 핵무장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언했다. 양 총장은 “핵무장을 위한 첫 단계인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하는 즉시 한미 동맹은 깨지고 국제사회에서 제재와 압박이 들어온다. 핵무장 주장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한미 동맹을 깨려는 궤변에 가깝다”며 “여권에서도 미국이 허락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국내 지지층 결집을 위해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대표적인 ‘핵무장론자’인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실현 가능성이 낮더라도 핵무장 목소리를 꾸준히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센터장은 “우리의 핵무장 카드는 비핵화 협상을 거부하는 북한에 강력한 경고를 주는 동시에 핵 확산을 우려하는 중국에 대해 압박 카드로도 쓸 수 있다”며 “처음부터 핵무장을 실현 불가능한 목표로 단정하고 포기하면 계속 북한의 핵 위협에 끌려다니며 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체 핵무장에 찬성하는 국내 여론을 대미 정치에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꾸준히 60%에 이르는 찬성 여론을 근거로, 미국을 향해 확장억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나아가 한반도에 핵전략 자산을 상시 배치하라는 등의 요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공격은 미사일의 형태로만 날아오지 않는다. 때마다 우리 경제에도 크고 작은 리스크를 안겨왔다. 당장 경제 당국은 북한의 잦은 도발로 우리의 신용평가나 시장의 동요가 우려할 상태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쌓인 학습효과로 일종의 면역력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1일 출근길 회견에서 ‘굳건한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고 있다.ⓒ연합뉴스

도발에 대응하되 대화 열어둬야…“안보의 목적은 평화”

하지만 조사 결과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북한발(發) 경제 위협은 여전히 극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10명 중 약 7명(69.4%)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위기의 고조가 한국 경제에 위협적’이라고 봤다. ‘위협적이지 않다’는 응답은 29.6%에 그쳤다. 디데이가 임박한 것으로 전망되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단행된 후엔 이러한 경제적 위협이 더욱 실체로 다가올 거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으로 인해 강한 위협감을 느끼면서도 우리 국민 다수는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가 향후 대북 기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한다고 보는지’ 물은 질문에 52.4%가 ‘남북 대화를 유도하는 등 온건 기조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등 강경 기조로 가야 한다’는 응답은 41.7%로 집계됐다. 북한의 위협엔 철저하게 방어하되 그동안 쌓아왔던 대화를 위한 노력을 완전히 허물어선 안 된다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필요한 대응은 하되 대화채널은 유지하는 이른바 ‘투트랙’ 대북 전략을 유지하라는 요구다. 양무진 총장은 “대화 속에 해법이 있고, 무조건적인 대결 속에 해악이 있다는 걸 우리 역사가 증명해 왔다”며 “결국 튼튼한 안보도 궁극적으로 평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운명의 기로에 놓인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신중론을 택했다. 9·19 합의는 육해공에서의 모든 군사적 적대행위를 종식해 우발적 충돌과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자는 내용으로,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채택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북한이 본격적으로 9·19 합의를 위협하는 도발을 이어가자 여권 일각에선 합의 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상호주의를 내세워 곧장 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0.9%가 ‘동의하지 않는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동의한다’는 응답은 44.4%로 나타났다. 이 또한 퇴로 없는 극한 대치로 치닫는 데 대한 우려와, 대화의 여지를 남겨둬야 한다는 바람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남북 모두 9·19 합의를 먼저 파기하는 데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먼저 파기에 나설 경우 향후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서로에게 파기의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 또한 선(先)파기에 대한 부담감을 방증한다는 지적이다. 홍민 실장은 “북한이 합의를 완전히 깨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좀 더 확실하고 과감한 도발을 했을 수 있다”며 “지금의 도발은 합의 파기를 위한 목적적 행동이라기보다, 한국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기선 제압을 당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이기 위함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북핵 위협이 쌓여갈수록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 동맹을 넘어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을 날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일 연합훈련이 정치권의 ‘친일 공방’으로 번지면서 본질과 다른 잡음들이 새어나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욱일기를 단 일본 자위대의 훈련 참여를 두고 ‘친일 국방’이라고 표현하면서 여야 간 논쟁이 촉발됐다. 이에 대응하던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친일 사관’ 논란이 도마에 오르면서 갈등은 확장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의 ‘친일 국방’ 비판으로 촉발된 논쟁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친일 사관’ 논란으로 번졌다.ⓒ국회사진취재단

‘친일 국방 비판은 적절’ 우세…“민족주의적 선동 말고 논의해야”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어느 쪽에 더 따끔한 매를 들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이재명 대표 등 야권에서 일본 자위대가 참여하는 한·미·일 연합훈련을 두고 ’친일 국방‘이라고 비판한 것이 적절한지 여부’를 물었다. 52.2%가 ‘적절한 비판’, 44.5%가 ‘부적절한 비판’이라고 답했다. 한·미·일 연합훈련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일본 함정이 독도 인근에서 훈련한다는 소식 등이 국민 감정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해 단순히 친일 프레임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본질적인 문제를 두고 정치권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기보다, 선동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모습만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위원은 “일본과의 연합훈련이 국제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들여다봐야 한다”며 “이것이 북·중·러의 군사적 결속을 자극해 한반도 냉전체제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선 정부·여당도 고민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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