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청담동 주가조작’ 이희진 형제, 암호화폐 시세조종 정황 포착됐다
  • 김현지·공성윤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6 07:35
  • 호수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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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 동생 이희문, 상장날 1000배 급등한 ‘한컴 코인’ 관련 대화 나눠
동업자는 관계 부인…이씨 형제는 자취 감춰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세를 치르다 사기죄를 선고받은 이희진씨(36)의 동생 이희문씨(34)가 암호화폐 시세조종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거래소에 상장한 암호화폐를 대거 사들여 가격을 의도적으로 올렸고, 이를 되파는 방식으로 시장을 교란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여기에는 이희진씨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희문씨가 미국 국적 사업가 김아무개씨와 한글과컴퓨터(한컴)그룹 암호화폐 ‘아로와나토큰’의 시세를 조종한 정황이 포착됐다. 아로와나토큰은 2021년 4월 거래소 빗썸에 상장하자마자 1000배 이상 가격이 폭등해 일찌감치 시세조작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이희문씨와 김씨가 가격에 손을 댄 암호화폐는 아로와나토큰을 포함해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시세조종은 ‘MM(Market Making·시장조성)’으로 불린다. 원래 MM은 증권시장에서 거래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쓰는 합법적인 전략이다. 한국거래소가 규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증권시장에 비해 거래량이 부족한 데다 규제기구도 없다. 그렇다 보니 발행업체가 MM을 무분별하게 외주업체에 맡기면서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가 2019년 3월27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희문 “우리가 한 MM, 1~2개가 아니다”

시사저널은 익명을 요구한 암호화폐 발행업체 대표 A씨와 이희문씨 사이의 대화 녹취록을 입수했다. 여기에 따르면 2022년 3월 이희문씨는 김씨를 ‘김 대표님’이라고 부르며 “김 대표님이 (코인을) 팔아 달라고 해서 저희는 팔아준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님 오더를 받고 대표님이 알려준 계정을 통해 팔았다”고 말했다. 이는 아로와나토큰 MM 방법에 관한 대화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희문씨는 김씨와 함께 다른 암호화폐에 대한 MM도 진행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저희가 (김씨와) MM 한두 개만 한 것이 아니다”며 “MM을 하루에 한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시간을 두고) MM을 했다”고 부연했다. A씨는 “이희문씨 외에 이희진씨도 김씨와 같이 암호화폐 MM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가조작 때와 마찬가지로 겉만 번지르르한 암호화폐를 내세워 투자자들 돈을 갈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운영되는 ‘헤리티지DAO(탈중앙화자율조직)’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22년 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해 3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경매로 내놓은 국보 ‘금동삼존불감’을 25억원에 사들였다는 사실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현재 김씨는 암호화폐 지갑 관리를 주로 하는 국내 법인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빗썸 핵심 관계자’로 알려진 노진우 헥슬란트 대표와도 연결돼 있다. 아로와나토큰의 지갑을 관리한 인물이 김씨와 노 대표이기 때문이다.(1월31일자 “빗썸 상장부터 시세조종까지, “빗핵관” 소행이었다” 기사 참조)

김씨는 관련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그는 시사저널에 “이희진, 이희문과는 일면식도 없다”며 “협업을 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서는 “나와 관련된 사업체나 재단에서 아로와나토큰의 MM을 진행하거나 이를 위한 약정을 체결한 사실이 없다”면서 “(이 외의 코인에 대한) MM에 관여한다는 소문 역시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희진·이희문 형제는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서 일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 지역 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씨 형제는 최근에도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사무실을 수차례 찾았을 때는 이씨 형제와 접촉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이씨 측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법적 기준 없는 MM, 최근에 처벌 사례 나와

이씨 형제가 관여한 MM은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상당한 손실을 입혔다. 그러나 이를 처벌할 뚜렷한 법적 기준은 없다. 다만 지난해 암호화폐 시세조종 사기와 관련한 사법부의 판단 기준이 처음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은 2022년 9월27일 특경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 한아무개씨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MM팀을 통한 펌핑(pumping·가격 상승)’ 등과 같은 비정상적 시세조종·조작을 통해 가상자산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상승시킬 수 있다며 투자를 유인한 경우”가 사기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씨 형제가 MM 대상으로 삼은 아로와나토큰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화두로 떠올랐다. 당시 비정상적인 가격 폭등 외에도 사업 주체가 유령회사라는 의혹, 거래소 빗썸과의 결탁 의혹 등이 공론화됐다. 급기야 발행사인 한컴그룹의 김상철 회장이 아로와나토큰을 비자금 창구로 활용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김 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하며 강제 수사에 돌입한 상황이다.

한편 이씨 형제는 과거 불법 주식 거래 등의 혐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이들은 2014~16년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고 투자매매회사를 설립·운영했다. 그러면서 1700억여원의 주식 매매를 통해 13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챙겼다. 또 같은 기간 증권방송을 통해 특정 비상장주식에 대한 허위·과장정보를 퍼뜨려 투자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수백여 명의 투자자가 모두 1000억원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

대법원은 2020년 1월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희진씨에게 징역 3년6월에 벌금 100억원, 추징금 122억6700여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희문씨는 같은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와 별개로 이들에게 적용된 법인 자금 횡령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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