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KT 대표의 헤어질 결심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5 14: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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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임 기정사실이었던 구 대표의 사퇴 선언 배경 주목…외풍 막을 기업 이사회의 독립성 절실하다

구현모 KT 대표가 결국 연임을 포기했다. 그는 2월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도 이른바 디지코(DIGICO)로 불리는 KT의 디지털 성과를 강조했다. 구 대표는 KT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었고, ‘우영우 신드롬’을 일으키며 통신을 넘어 콘텐츠 산업의 핵심 기업으로 KT를 끌어올렸다. 재임 기간 3년 동안 주가를 2배 이상 상승시켰음에도 구 대표의 연임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사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구 대표의 연임은 기정사실이었다. 대표이사 후보심사위에서도 구 대표는 3년간 보여준 경영실적과 시가총액 상승, 디지코 비전 등 능력을 두루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에 대해 일반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는 KT 노조 역시 구 대표의 연임을 지지했다. 그가 취임한 후 매출액, 영업이익, 주가 등이 모두 개선됐기에 정부의 입김, 외풍도 연임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연합뉴스
구현모 KT 대표이사가 2022년 12월29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제1회 양자 기술 최고위 전략대화 회의장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경영실적으로도 막지 못한 외풍

그러나 외풍은 그를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징후는 있었다. 새해가 되면 열리는 경제계 신년회 자리에 공교롭게 구현모 대표와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불참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초대받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KT와 포스코의 CEO가 참석하지 못한 것의 시그널은 명확하다.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뜻이다. 두 기업은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거듭났다고 얘기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구현모 대표도 취임 당시 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황창규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면서 KT를 향한 정치권의 외압이 얼마나 강한지 구 대표 역시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구 대표는 2020년 3월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할 당시 사내방송을 통해 ‘KT그룹을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국민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문제는 경영자의 독립성에 대한 의지와 능력보다 KT 대표이사 사장이란 자리는 정부와 얼마나 가까운가가 승부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라는 데 있다. 대선캠프의 주요 직책을 담당한 이들은 주로 대통령실 입성을 꿈꾼다(장관은 청문회로 망신당할 수 있기에 기피하는 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실 못지않게 인기 있는 자리가 바로 KT와 포스코 CEO다. 경제·기술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자리다.

구 대표는 외부의 거센 압력을 막기 위해 단독 추대가 아닌 복수 후보 심사를 요청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KT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성과와 발자취를 남겼기에 객관적 성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국민연금공단과 정치권, 대통령실에서 직간접적으로 사퇴 압박을 띄우자 KT 차기 대표 선임 절차는 세 차례나 번복됐고, 그는 지속적으로 사퇴 압박을 받았다. 객관적 성과도 주관적 외풍을 넘진 못했다.

구 대표의 연임 포기를 압박한 국민연금은 “CEO 후보 결정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해야 하는데 구 대표를 차기 후보로 확정한 KT 이사회의 결정은 경선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전방위 압박으로 KT 이사회는 기존에 내린 구 대표의 차기 CEO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차기 대표 후보 선임 절차를 밟았다. 독립성과 공정성을 중시해야 할 이사회의 기능이 마비된 순간이다.

구현모 대표의 연임 포기는 재계에 그리고 뒤이어 진행될 포스코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도 불편한 진실을 남겼다. 첫째, 여전히 성과보다 외풍이 막강하다는 불변의 진리가 재확인됐다. 구 대표는 외풍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국민기업의 차기 CEO가 되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성과와 혁신을 창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외풍을 주도한 세력은 이를 순진한 생각이라고 치부하면서 연일 그를 코너로 몰았다.

둘째, 차기 CEO는 향후 조직의 경쟁력이나 혁신보다 정부 및 권력과의 네트워크에 더 집중하고 주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구 대표를 내쫓기 위한 명분은 오직 공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에 집중됐다. CEO의 중요한 덕목인 기업 가치 상승과 혁신, 경영성과 창출 면에서 비판할 부분을 찾지 못하자 차기 대표 선임 절차를 물고 늘어졌다. 차기 CEO의 핵심역량은 이제 성과 창출이 아닌 권력 유지가 될 것이다.

 

구 대표 연임 포기 후 KT 주가도 급락

구 대표의 사퇴 선언 이후 모 언론에서는 정부 고위 인사를 지낸 인물이 차기 CEO로 유력하다고 단독 보도했지만, 다행히 차기 CEO는 전·현직 KT 경영진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외풍 논란이 점점 거세지자 외풍의 핵심 세력이라고 불렸던 외부 정치권 인사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구 대표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을 만들진 못했지만 KT 지배구조위원회는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를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구 대표의 연임을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퇴 이후 KT 주가는 3일 연속 하락했고 52주 최저가를 기록했다. 시장은 오히려 국민연금의 발언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 KT 이사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심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한 절차와 투명한 심사를 요구한 국민연금의 주장을 이사회가 꺼내들며 외풍에 맞서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사회가 외압에 맞서 독립성을 강화해 소신을 지키겠다는 선언은 뒤늦었지만 환영할 부분이다. 국내에서 이사회는 늘 오너 일가를 비호하는 거수기 논란, 외압에 끌려 다니는 이미지가 강했다. 글로벌 기업의 이사회는 CEO 및 외압과 일정 거리를 두며 독립성을 갖고 자신들의 생각을 관철시키지만 국내 기업의 이사회는 지금까지 명확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적이 없다. 대표 선임에 관해서도 그간 KT 이사회는 수동적 자세로 일관했다.

이사회는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준수하며 외풍과 CEO의 입장이 아닌 객관적 감시자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사회가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면 CEO는 물론 조직 자체가 외압에 끊임없이 휘둘린다. 이사회는 날카로운 감시를 해야 하지만 때로는 불합리한 외풍에 맞서는 방패막이도 돼야 한다. 이사회가 외풍을 차단할 때 CEO는 권력 유지가 아닌 경영자의 책무인 성과와 혁신에 소신을 갖고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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