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이어 전기차도 ‘거거익선’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3.03.18 15: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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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차 선호’ 소비자와 기업 ‘고수익 전략’ 맞물려…전용 플랫폼 개발로 대형 차체 및 주행거리 확보

한국인의 ‘큰 차’ 사랑은 각별하다. 좁은 땅덩어리와 수도권에 몰린 인구구조 때문에 큰 차보다는 작은 차가 어울리지만, 소비자들의 큰 차 선호도는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이는 자동차 시장 분포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과거 자동차 시장은 세단이 지배했으나, 최근에는 세단보다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SUV 점유율은 52%로 세단을 넘어섰으며, 지난해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대형 SUV의 경우 2021년 승용차 판매가 전년 대비 9.2% 감소할 때, 차급 중 유일하게 5.4% 성장을 기록한 바 있다.

SUV는 여유로운 공간과 편의성을 바탕으로 ‘패밀리카’로 각광받았으며, 코로나19 이후 차박과 캠핑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소비자들이 SUV를 선택하는 이유가 실내 공간이니만큼, 제조사들도 갈수록 차체를 키우면서 대형화가 진행되고 있다. 소형 SUV의 경우 이제 과거 준중형급에 준할 만큼 몸집이 커졌고, 준중형은 중형급으로, 중형은 대형급으로 커지는 추세다.

차세대 자동차로 불리는 전기차에서도 대형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전에 전기차는 배터리의 한계로 큰 차를 만들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술 발전 및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 등으로 대형차들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기아는 2021년 11월17일(현지시간) 미국 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LA 오토쇼 2021’ 프레스 행사에서 대형 전기 SUV 콘셉트카 ‘더 기아 콘셉트 EV9’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기아는 2021년 11월17일(현지시간) 미국 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LA 오토쇼 2021’ 프레스 행사에서 대형 전기 SUV 콘셉트카 ‘더 기아 콘셉트 EV9’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점점 더 크게”…큰 차 전성시대

불과 5년 전만 해도 현대차를 대표하는 SUV는 중형급인 ‘싼타페’였다. 싼타페는 2018년 내수 판매에서 10만 대를 넘어서며 SUV 중에선 처음으로 ‘10만 대 클럽’에 가입했다. 그러나 대형 SUV ‘팰리세이드’가 등장하면서 판도가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팰리세이드는 출시 이후 매년 5만 대 이상 판매되고 있으며, 2020년엔 싼타페를 누르고 현대차 SUV 왕좌를 차지했다. 기아 카니발도 미니밴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대형 SUV 대열에 합류하면서 기아 모하비, 제네시스 GV80, 한국GM 트래버스, 쌍용차 렉스턴, 포드 익스플로러 등 다른 대형 SUV들과 함께 시장을 키워 나갔다.

소비자들이 큰 차를 선호한다는 점을 파악한 제조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차체를 키워 나가기 시작했다. 일례로 싼타페의 경우 2015년형 모델 차체는 전장 4690mm, 전폭 1880mm, 휠베이스(축간거리) 2700mm 수준이었으나 최신 모델은 전장 4800mm, 전폭 1910mm, 전고 1710mm, 휠베이스 2765mm로 커졌다. 사실상 차급이 한 단계 올라간 셈이다. 대형차 시장 잠재력을 확인한 수입차 브랜드들은 한술 더 떠 초대형차까지 선보이고 있다. 초대형 SUV의 경우 미국에서나 볼 수 있던 차량으로 전장은 5000mm를 가뿐히 넘고 휠베이스도 3000mm 이상이다. 기존 국내 초대형차 시장에서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사실상 유일했는데 한국GM 타호, 링컨 내비게이터 등이 나오면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처럼 큰 차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패밀리카, 레저용 차량으로 SUV가 인기를 끌었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진 소비자들이 새 차를 구입하면서 더 큰 차로 갈아탔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새 차로 바꿀 때 이전에 타던 것보다 더 작은 차를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또한 아직까지 한국에선 자동차가 사회적 부와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어 비싼 차나 큰 차를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기업들도 1대당 수익성이 좋은 대형차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이 사실상 포화상태에 달해 판매 대수를 늘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익성 확보를 위해 대형차를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SUV 1대 수익을 내려면 경차를 3~4대 넘게 팔아야 한다”면서 “소비자들도 원하고 수익도 높은데 기업이 굳이 대형차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월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벤츠 전기 SUV ‘더 뉴 EQS SUV’ 국내 출시 행사가 열렸다. ⓒ연합뉴스

EV9·EQS SUV·폴스타3·리릭 등 출격

전기차에도 대형 SUV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전기차는 배터리 한계에 따른 주행거리 문제로 소형차 위주로 만들어졌으나, 최근엔 전용 플랫폼 개발에 따른 배터리 공간 확보와 배터리 효율성 증대 등에 따라 대형급이 출시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대형 전기차의 주행거리도 400km를 넘어가고 있다.

올해 기아는 그룹 첫 대형 전기 SUV ‘EV9’을 출시한다. EV9은 현대차그룹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며 3열·7인승으로 구성했다. 아직 구체적인 사양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콘셉트 모델의 경우 전장 4930mm, 전폭 2055mm, 휠베이스 3100mm에 달한다. EV9은 최상위 모델이니만큼 현대차그룹의 최첨단 기술도 대거 적용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확정된 것은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와 고객 필요에 따라 소프트웨어 기능을 선택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FoD 서비스’, 레벨 3단계 수준의 자율주행기술 ‘HDP’다.

수입차에선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올해 초 ‘EQS SUV’를 내놨다. EQS SUV는 전장 5125mm, 전폭 1959mm, 휠베이스 3210mm다. 최대 7명이 탑승할 수 있으며 2열 시트는 앞뒤로 130mm 조절이 가능해, 2열 레그룸을 최대 960mm까지 마련할 수 있다. 배터리 용량은 107.1kWh로 1회 충전 시 최대 459km(EQS SUV 450 4매틱 기준) 주행 가능하다.

하반기에는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최초 SUV인 ‘폴스타3’가 나온다. 폴스타3는 전장 4900mm, 전폭 2120mm, 휠베이스 2985mm다. 배터리 용량은 111kWh로 최대 610km(WLTP 기준) 주행할 수 있다. 또한 국내에선 티맵과 공동 개발한 정밀도로지도(HD맵)를 최초로 적용한다. 캐딜락코리아도 올해 대형 전기 SUV ‘리릭’을 출시한다. 리릭은 전장 4996mm, 전폭 1977mm, 휠베이스 3094mm로 100kWh급 배터리를 탑재해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40Nm의 힘을 발휘한다. 국내에선 GM 브랜드 최초로 자율주행시스템 ‘슈퍼크루즈’가 탑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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