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LG家 상속 분쟁 핵심 쟁점 3가지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7 12:05
  • 호수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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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76년 만에 처음 불거진 집안싸움
‘구본무 유언장 부재·상속권 침해 여부·장자 승계 전통’ 한꺼번에 도마 올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LG가(家) 상속 분쟁이 재계를 뒤흔드는 중이다. 최근 고(故) 구본무 선대 회장의 아내 김영식 여사(71)와 장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45), 차녀 구연수씨(27)가 구광모 LG그룹 회장(45)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2018년 5월 구본무 회장이 73세를 일기로 별세한 후 이뤄진 재산 분할을 다시 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1947년 LG가 설립한 이래 처음 발생한 집안싸움이다. 아직 법원에 소장이 접수된 단계에 불과하지만, 살짝 드러난 양측의 ‘전투 준비 태세’만 봐도 이번 사안이 심상찮음을 직감할 수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구광모 회장은 법적 다툼이 복잡해지고 장기화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율촌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1심 재판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벌써 구 회장 측은 김 여사 등 세 모녀 측에 “재산 분할을 요구하며 LG의 전통과 경영권을 흔드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며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세 모녀의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로고스 측이 “경영권 분쟁을 위한 게 아니라 상속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절차상 문제를 바로잡아 달라는 차원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구 회장 측은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듯하다. 이는 ‘상속 절차상 문제’가 실제로 ‘경영권 분쟁’을 촉발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범LG 오너 일가의 강한 반대 기류를 거슬러 구 회장에게 정면 도전한 세 모녀가 단순히 재산 증식이나 상속인으로서의 자존심 회복 정도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3가지 핵심 쟁점을 통해 LG가 상속 분쟁의 향방을 가늠해 본다. 

ⓒ시사저널 박정훈
3월14일 공사 중인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옆으로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① 구본무 선대 회장 유언장 부재, 전통과 합의 압도할까 

2월24일 세 모녀 측이 접수한 소장은 서울서부지법 민사11부에 배당된 상태다. 향후 재판이 열리면 우선 ‘구본무 회장의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 재산 상속과 관련해 구본무 회장이 따로 남긴 유언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 모녀 측은 “상속 재산 분할 합의 과정에서 구광모 회장 측이 구본무 회장 유언이 있다고 해서 유언장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계속 보여주지 않았다. 유언장이 없는지 나중(2018년 11월 상속이 완료된 후)에 알았다”는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에 구 회장 측은 “유언장이 없다는 건 이미 (세 모녀도) 알고 있었다. 있다고 생각했으면 왜 그때(합의 전에)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구광모 회장 측은 또 “구본무 회장 별세 이후 5개월 동안 가족 간 수차례 협의를 통해 법적으로 완료된 지 4년이 넘어 제척 기간(3년)이 지났고, 이제야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LG 경영권 승계 룰은 4세대를 내려오면서 경영권 관련 재산은 집안을 대표하고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그 외 가족은 소정의 비율로 개인 재산을 받는 것”이라며 “이번 상속에서도 LG가의 원칙을 잘 이해하는 상속인들이 이 룰에 따라 협의를 거쳐 합의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민법에 따른 상속 재산 분할에서 상속인 간 합의가 존중되며, 상속인들이 진정한 의사에 따라 재산을 분할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게 구광모 회장 측 핵심 주장이다. 

구광모 회장 측 말과 초반 기세,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 등을 종합하면 세 모녀가 패할 가능성이 높은 싸움이다. 그러나 세 모녀 측은 놀랄 만큼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소송전에 대비하고 있다. 오히려 구광모 회장 측이 단호하게 대응하는 모양새다. 법조계 일각에선 상속 재산 분할 시 피상속인(고인)의 유언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만큼 구본무 회장의 유언장 부재 사실이 재판을 세 모녀에게 유리한 구도로 끌고 갈 수도 있다고 본다. 피상속인이 유언장을 남기지 않으면 법정 상속 비율(배우자 1.5 대 자녀 1인당 1)에 따라 상속을 진행하는 게 통상적이다. 재벌가 전통, 상속인들의 의사 등 LG 측이 중시하는 개념을 차치하고 순수히 법률로만 따지자면 “유언장 부재와 해당 사실이 전달되지 않은 것 등 상속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절차상 문제를 바로잡아 달라”는 세 모녀 측 주장이 법정에서 먹힐 여지가 없진 않다는 것이다. 다만 세 모녀 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사실관계와 구광모 회장 측 위법성 등을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은 무위에 그칠 전망이다. 

② 재조명되는 구광모 회장의 양자 입적 전후  

세 모녀 측이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한 점도 주목할 포인트다. 상속에 관한 법적 분쟁은 상속재산분할청구나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상속회복청구권이란 진정한 상속인이 그 상속권의 실현을 방해하는 참칭상속인(지위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상속인 행세를 하거나 상속인일지라도 다른 공동상속인의 상속권을 침해하는 사람)에 대해 상속권을 주장함으로써 방해를 배제하고 상속권을 실현시키는 권리다. 참칭의 사전적 뜻은 ‘분수에 넘치는 칭호를 스스로 이름’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 모녀 측이 법적으론 친가족으로 묶여 있는 구광모 회장을 참칭상속인이라 지칭하고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구본무 회장 생전에 구광모 회장이 양자로 이 집안에 입적됐을 때부터 세 모녀 중 일부가 반대하는 등 문제가 조금 불거진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 정도로 거리감이 있을 줄은 몰랐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구본무 회장은 부회장 시절이던 1994년 외아들이자 LG가 장손인 구원모씨(당시 19세)를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었다. LG가는 창업 후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장남에게 대를 이어 경영권을 맡겨왔다. 구본무 회장은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다시 아들을 얻으려 1996년(당시 51세) 늦둥이를 낳았지만 딸(구연수씨)이었다. 결국 8년 후인 2004년 조카 구광모 회장(당시 26세)을 양자로 들였다.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회장의 첫째 남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다. 구광모 회장 입양 당시 차녀 구연수씨는 초등학생(8세)이었고 장녀 구연경 대표는 26세로 구광모 회장과 나이가 같았다. 1978년 2월생인 구연경 대표는 1월생인 구광모 회장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났다. 구연경 대표로서는 이미 주관과 가치관이 뚜렷해진 20대 후반에 갑자기 동갑내기 사촌을 친형제로, 더 나아가 집안과 가업 전체를 이끌 차세대 리더로 맞게 된 것이다. 호적이 바뀐 후 구연경 대표는 줄곧 외부에 구광모 회장의 첫째 여동생으로 알려져 왔다. 

구연경 대표는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와 미국 워싱턴대 사회사업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어 10여 년간 글로벌 아동 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 등 다양한 공익단체에서 현장 경험을 쌓다가 2021년부터 LG복지재단 고문으로 그룹 사회공헌 사업에 관해 조언하기 시작했다. 구 대표는 활달하고 진취적인 성격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지난해 4월 LG복지재단 대표로 선임됐을 때는 ‘보수적인 LG가에서 여성이 대표 직책을 맡는 게 이례적’이란 평가가 뒤따랐다. 대외 활동 폭이 더 커질지 주목돼 오던 차에 이번 소송전이 촉발된 것이다. 

기업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CXO연구소의 오일선 소장은 “구광모 회장의 원래 아버지인 구본능 회장에게 아들이 하나뿐이었는데, 외아들인 구광모 회장을 형님(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선뜻 보냈다는 점도 지금 시점에 새삼 생경하게 느껴진다. 아들이 여러 명일 때 하나를 양자로 보내는 게 일반적이지 않나”라며 “어떤 측면에선 구광모 회장이 구본무 회장 양자로 입적하고, 구본무 회장 별세 후 LG그룹 4대 회장으로 추대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LG를 구본능 회장의 영향력 아래 두는 수순’으로 추정할 여지가 있다”고 조심스레 분석했다. 

앞서 구광모 회장은 친생부모와의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일반입양을 통해 구본무 회장 양자로 입적했다. 구본능 회장은 법적으로 구광모 회장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도 있다. 민법에 의하면 양자는 양부모와 친생부모 양쪽 모두와의 관계에서 상속권을 갖기 때문이다. 희성그룹 상황도 허투루 보기 어렵다. 구본능 회장은 올해 74세로 재벌 총수로서는 고령인 편이다. 그의 딸이자 구광모 회장의 이복 여동생인 구연서씨는 24세이고 가업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구본무 회장의 둘째 남동생인 구본준 LX그룹 회장(아들 구형모 LX MDI 부사장·36), 셋째 남동생인 구본식 LT그룹 회장(아들 구웅모씨·34)도 각각 아들 한 명씩을 뒀다. 두 집안의 장자들이 가문의 룰에 따라 후계 구도를 밟고 있는 반면 희성가는 표면적으로 ‘경영권 승계 포기’ 상태인 셈이다. 중장기적으로 LG가 구본능 회장 일가를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면, 세 모녀의 가문 내 입지는 더욱 위협받는다. 이런 가운데 세 모녀와 구광모 회장 측 간 법리 다툼이 구광모 회장의 19년 전 양자 입적 절차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가 새어 나온다. 

ⓒ연합뉴스
2012년 4월 열린 구자경 LG그룹 2대 회장(앞줄 왼쪽 세 번째)의 미수연(88세 생일 잔치)에 구본무 3대 회장(앞줄 맨 왼쪽)과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앞줄 왼쪽 네 번째), 구광모 4대 회장(당시 LG전자 미국 뉴저지법인 차장·뒷줄 왼쪽 세 번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뒷줄 왼쪽 네 번째) 등 범LG 오너 일가가 대거 참석했다. ⓒ연합뉴스

③ 여타 재벌가의 승계·상속에도 줄줄이 영향 미칠 듯  

세 모녀 측 주장대로 구본무 회장 상속 재산을 법정 비율대로 다시 분할하게 되면 배우자 김영식 여사는 3.75%를, 구광모 회장을 비롯한 세 자녀는 2.51%씩 상속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LG그룹 지주사인 ㈜LG 지분 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구광모 회장의 ㈜LG 지분율은 15.95%지만, 세 모녀의 주장을 반영할 경우 최대주주 지위에는 변동이 없다고 해도 지분율이 9.7%에 그치게 된다. 동시에 김 여사의 지분율은 기존 4.2%에서 7.95%로 뛴다. 구연경 대표와 구연수씨의 지분율도 각각 3.42%, 2.72%로 높아진다. 세 모녀의 지분율 합(14.09%)이 구 회장의 지분율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구광모 회장을 포함한 ㈜LG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41.7%로, 세 모녀 측 지분의 향배에 따라 경영권 분쟁 이슈로 확산될 수 있다. 

한 상속 전문 변호사는 이번 LG가 집안싸움에 대해 “상속 분쟁이 문제의 시작이기는 하나 경영권과 묶여 있기에 단순 상속 소송으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며 “원고 측 상속이 완료된 지 4년4개월여가 지난 시점에 보통 각오를 갖고 싸움을 걸었을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형 로펌이 아니고 기업 경영권 분쟁을 다룬 경험도 적은 로펌(로고스)이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을 맡은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상속분 정리로 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원고 측 소송 대리인으로는 로고스 소속 변호사 3명 외에도 헌법재판관을 지낸 강일원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대표변호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오일선 소장은 “사실 언제, 어떤 판결이 나온다 하더라도 장자 승계와 인화(人和·마음으로 서로 뭉쳐 화합)라는 LG가의 가풍에 생긴 균열을 봉합할 순 없다. LG 외 주요 재벌가에서 여성 경영자가 속속 등장하는 추세에서 분쟁이 터져 LG가의 장자 승계 전통이 이어질 동력도 부쩍 줄었다”면서 “다른 재벌그룹 후계구도에서의 장자 우선주의와 상속 문제 역시 줄줄이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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