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지옥”…27년만에 다시 쓰는 아가동산 수사록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3 07:35
  • 호수 17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아가동산 김기순 구속기소한 강민구 변호사…”죽어도 할 수 없다는 각오로 임해”
증인의 ‘강압수사’ 주장에 “말도 안 되는 얘기”…해당 증인, 25년 만에 진실 고백

자급자족을 추구하며 순수함을 주장하는 협업마을이 있다. 1982년 경기 이천군(현 이천시)에 설립된 아가동산. 사실 이곳은 순수함과는 대척점에 있었다. 아가동산 지도자 김기순(83)은 400명에 가까운 주민과 동거동락하며 폭행과 혹사를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급기야 사망사건을 일어나기도 했다. 엽기적 행각으로 세상을 흔들었던 이 흑막의 집단이 수사 종료 27년 만에 넷플릭스를 통해 세상에 다시 드러났다.

지난 3월3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아가동산을 2회에 걸쳐 다뤘다. 여기서 집중 조명을 받은 인물이 있다. 당시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검사로 김기순을 수사한 강민구 변호사다. 3월28일 시사저널과 만난 강 변호사는 “특수통 검사로 일하면서 굵직한 형사 사건을 수많이 접했지만 아가동산만큼 나를 힘들게 한 사건은 없었다”고 회상했다.

3월28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진솔에서 만난 강민구 대표변호사 ⓒ시사저널 이종현
3월28일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진솔에서 만난 강민구 대표변호사 ⓒ시사저널 이종현

낙원 없는 낙원…”뇌에서 칩이 빠진 사람들”

강 변호사는 아가동산 주민을 가리켜 “뇌에서 칩이 빠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메모리카드가 없는 블랙박스나 유심칩이 없는 스마트폰처럼, 이성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한 로봇 같았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아가동산을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며 “모든 신도가 교주 김기순에게 철저히 세뇌돼 사건을 은폐했다”고 떠올렸다.

김기순과 주민이 숨기려 했던 사건 중에는 5살에 불과한 최낙원(아가동산 내 가명 최낙귀)군의 죽음도 있었다. 김기순은 주민을 시켜 최군을 뽕나무 가지로 때리고 돼지똥을 억지로 먹였다. 가해 주민 중에는 최군의 어머니와 이모도 포함돼 있었다. 결국 낙원(樂園)이라던 아가동산에 낙원은 사라졌다. 아가동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최군을 비롯해 여성 신도 강미경(당시 21세)씨 등 3명으로 알려졌다.

강 변호사는 아가동산을 ‘벌집’에 비유했다. 그는 “벌집에서 꿀벌들은 동료 몇 마리가 죽어도 아랑곳 않고 여왕벌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고 묘사했다. 하지만 몇몇 꿀벌의 일탈이 벌집에 작은 구멍을 뚫어 주었다. 최군의 아버지를 비롯해 소수의 이탈자들이 수차례 진정서를 넣은 것이다. 강 변호사는 “사실 그 동안 이탈자들이 10년 가까이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수사기관이 움직이지 않았다”며 “사이비 집단은 잘못 건드렸다가 큰일 난다는 암묵적 경계심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1996년 12월 강 변호사에게까지 진정서가 전해졌다. 그는 즉시 경찰과 함께 수사팀을 꾸려 아가동산을 급습했다. 그때 MBC 기자가 수사관들과 함께 현장을 뒤지다가 비디오 테이프를 발견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김기순을 향한 주민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다. 《나는 신이다》에 나온 바로 그 장면이다. 이 영상은 나중에 법정에서 주요 근거로 쓰였다.

강 변호사는 “수사에 착수한 뒤로 말 그대로 ‘죽어도 할 수 없다’는 각오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조폭은 적어도 자기 이익 계산하며 덤비지만 이성이 마비된 광신도는 앞뒤 안 가리고 위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내와 어린 딸을 서울로 보내고 관사에 혼자 남아 작전을 짰다”고 회상했다. 당시 여주지청 검사는 강 변호사를 비롯해 3명뿐이었다. 강 변호사는 “사실상 나 혼자서 특수부 전체 역할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현장을 급습한 날 김기순은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친 상태였다. 결국 검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했고, 얼마 뒤 김기순이 자진 출두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현장의 김기순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갤로퍼 승용차를 타고 여주지청 앞에 내리자마자 측근들에게 둘러싸여 청사정문을 걸어 들어갔다. 수사관이 영장을 제시하고 양팔을 끼자 ‘이것 놓아요. 난 자수했어요’라며 저항했다.” 강 변호사는 김기순을 처음 본 순간을 떠올렸다.

“허리는 꼿꼿했고 진술에는 막힘이 없었다. 소위 ‘개똥 철학’을 얘기하는데 나름대로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보통 사이비 교주들은 확신에 차서 교리를 설파하는데 김기순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종교와는 일절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변호사에게 철저히 훈련받고 온 듯했다.”

검찰은 김기순을 살인, 폭행, 사기 등 8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공소장에는 없지만 《나는 신이다》에는 김기순의 성폭력에 관한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법원은 김기순에 대해 살인과 폭행 등을 뺀 5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벌금 56억원을 선고했다. 강 변호사는 “고문에 가까운 김기순의 폭행이 단순 징계로 간주돼 무죄를 받은 건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며 “상해치사죄로 예비 기소했더면 안전했겠지만 당시 공소시효였던 7년(현재 10년)이 넘어가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1996년 12월26일 아가동산 사건의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강민구 당시 검사(앞줄 맨 왼쪽)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1996년 12월26일 아가동산 사건의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강민구 당시 검사(앞줄 맨 왼쪽)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1996년 12월26일 아가동산 사건의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강민구 당시 검사(앞줄 맨 왼쪽)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1996년 12월26일 아가동산 사건의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강민구 당시 검사(앞줄 맨 왼쪽)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1996년 12월26일 아가동산 사건의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강민구 당시 검사(앞줄 맨 왼쪽)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1996년 12월26일 아가동산 사건의 현장검증을 하고 있는 강민구 당시 검사(앞줄 맨 왼쪽)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화면캡처

25년 만에 거짓으로 드러난 ‘강압수사’ 의혹

법원이 김기순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건 물증 부족의 영향이 컸다. 사망자 강미경씨의 시체를 찾지 못한 것이다. 검찰은 아가동산 굴삭기 기사였던 윤방수씨가 강씨의 시체를 묻었다는 장소를 얘기해 그곳을 파헤쳤지만 발굴에 실패했다. 이후 윤씨는 “검찰의 강압으로 허위 진술했다”고 말을 뒤집었다. 곧 ‘강압수사’라는 언론의 지적이 이어졌다.

강 변호사는 “강압수사는 전혀 없었다”며 “기자들이 수사과정을 모두 지켜보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윤방수씨가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일부러 거짓증언을 했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25년 뒤인 2021년 5월, 윤씨는 《나는 신이다》 제작진에게 “김기순으로부터 땅을 받는 조건으로 진술번복을 했다”는 취지로 털어놓았다. 윤씨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강씨의 시체를 묻은 건 사실”이라고 다시 한번 인정했다.

김기순은 수사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모샤브를 염두에 두고 아가동산을 만들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모샤브는 농기구를 모두가 소유하되 농지는 각자 경영하는 협동 촌락이다. 강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한마디로 만들어진 지옥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그 지옥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결코 실패가 아니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