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에 맞지 않는 정부의 '한국통신' 무리수
  • 許匡畯 기자 ()
  • 승인 1995.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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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학 전문가들, ‘정부의 5대 非法的 대처’ 비판…“권력이 앞장서 부당노동행위”
올해 노동계의 핵으로 떠오른 한국통신 노사 분규는 결국 정부의 강경 대처로 중간 매듭이 지어졌다. 서울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하던 노조 간부 13명이 연행되고 한국통신 사장이 교체되면서 한국통신 사태는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정부의 공권력 투입과 노조 간부 구속으로 사태가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정부의 초강경 대처는 한국통신 분규를 노동계 전체로 확산시키며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통신 조합원 5만2천여 명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고, 강제 연행으로 해결된 것은 하나도 없이 오히려 노조·회사·정부 사이에 불신과 갈등만 증폭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부는 지방 선거를 앞둔 마당에 한국통신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민주노총준비위원회 등 노동계가 계획하고 있는 6월 임투 공세와 연결되는 데다가,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일부 보수층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통신 사태 초기부터 강경하게 노조를 상대한 정부의 태도는 상식을 벗어난 무리수로 일관해 왔다는 지적이 많다.

공권력을 투입한 다음날인 6월7일 서울 명동 YWCA회관 대강당에서는 대한YMCA연맹,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참여민주사회 시민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종교·학술·의료·사회 단체 15개가 함께 마련한 ‘한국통신 사태 해결의 길찾기 시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참가 단체들은 한국통신 분규 사태가 전개된 과정은 정부가 노사 관계에 지나치게 개입·간섭해 오히려 사태를 수습하기 힘든 국면으로 몰아간 사례의 전형이라고 평가하고, 한국통신 노조의 요구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에 따른 적법한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공권력 투입으로 얼룩진 명동성당과 조계사의 조종 소리는 단지 종교의 마당에 경찰력이 들어왔다는 사실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정부의 이같은 노동정책에 대한 경종으로 볼 수 있다. 한국통신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태도에 대한 우려는 특히 법률적 측면에서 강하게 제기된다. 노동정책연구소 박석운 소장은 “이번 한국통신 사태는 피할 수도 있는 국가 에너지 낭비를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과 독단으로 자초한 예이다”라고 말한다. 노동계와 법학계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정부 대응의 법률적 모순을 정리해 본다.

“법 집행의 이중성 드러낸 노조 간부 구속”

첫째, 한국통신 노조는 불법 파업을 꾀했는가. 회사측 조백제 전 사장은 5월15일 기자회견에서 “노조가 지난해 말부터 불법 농성 행위를 벌이고 있다. 곧 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파업을 미리 막기 위해 노조위원장 파면 등 노조 간부 60여 명을 중징계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노조가 불법 파업을 꾀하고 통신 대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은 곧 정부의 강력 대처를 합리화하는 주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점은 노사간 임금 인상 협상과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단체 교섭이 시작되는 때였다. 이때까지 노조는 파업 등 어떠한 단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 뒤 노조는 정부와 회사의 강경 대처가 계속되자 유덕상 노조위원장 구속 같은 노조 파괴 행위가 이루어질 경우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그러나 파업할 가능성만 가지고 노조 간부를 단속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근거를 잃은 것이다.

또 노조의 파업이 ‘불법 파업’이 되려면 쟁의 발생 신고가 있고 나서 냉각기간 중에 파업하거나 직권중재에 회부된 상태에서 파업해야 한다. 쟁의 발생과 관련해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서 파업을 예단해 노조 간부를 처벌하려 한 것은, 협상 자체를 거부하거나 협상 파트너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둘째, 한국통신 노조는 국가 전복 저의를 갖고 있는가. 5월19일 김대통령은 한국통신 사태를 단순한 노사 분규가 아니라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사태로 규정하며 “노조가 정부 통신 정책에 대해 반대 투쟁을 전개하며 불법 행위를 계속하는 것은 국가 전복 저의가 있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태의 초기에 대통령이 내린 이 언명은 그 뒤 정부의 강경 대응을 통해 파국으로 치닫는 계기가 됐다.

또 한국통신이 공익사업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쟁의 절차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노조의 쟁의 행위는 여전히 법률적으로 보장된다. 따라서 노조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단체행동을 한다면 정당한 단체행동권 행사로 볼 수밖에 없다. 노조는 다만 헌법과 노동법에서 보장하는 단체교섭을 벌이고 있었을 따름이다. 법조계는 노조에 대한 이같은 ‘국가 전복’ 규정은 법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 난센스라고 평가한다.

셋째, 준법 투쟁은 불법인가. 노조는 5월23일 일부 간부가 구속되고 사전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26일부터 정시 출근과 리본 달기, 점심 시간의 보고대회 같은 이른바 ‘준법 투쟁’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검찰은 준법 투쟁 명목으로 불법 태업 등 정상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형사 처벌을 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5월29일 준법 투쟁에 참가한 노조원 1천5백여 명을 징계했다.

준법 투쟁은 법률에 규정된 단체행동이 아니다. 다만 준법 투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쟁의 행위인가 아닌가가 법적 판단의 요건이 된다. 법률적으로 ‘쟁의 행위는 정상적인 업무의 운영을 저해하는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따라서 근로자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점심시간이나 출퇴근 전후의 활동은 쟁의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노동계의 판단이다. 그러나 정부와 회사는 노조의 준법 투쟁을 문제 삼고 엄단을 공언했다. 박석운 소장은 “이같은 태도는 노조의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므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임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넷째, 정부의 공권력 행사는 공정한가. 검찰의 노조 간부 구속은 회사가 업무방해 혐의로 이들을 고소·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작년 말과 올해 초 사건을, 고발 당시는 그대로 두었다가 문제가 생기자 뒤늦게 구속한 것은 상식을 벗어났다는 평가이다. 구속영장을 신청한 검찰조차 당시에는 불법 쟁의 사실이 없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게다가 노조가 3월 말 회사를 단체교섭 거부와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해 둔 상태인데도 회사측에 아무런 법적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이다. 사용자측의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은 채 노조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구속을 남발하는 태도는 형평을 잃은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정부 대응이 또 다른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에 위배되며, 국가의 법 집행에 이중 기준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섯째, 쟁의중인 노조 집행부는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는가. 정부와 회사는 현 노조 집행부가 불법 집단 행동을 벌이고 있으므로 교섭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헌법에 무죄 추정 원칙이 명시되어 있고, 대법원 판례에서는 해고의 효력을 다투는 이도 조합원 자격을 갖는다는 유권 해석까지 내려져 있는 데 비추어 보아, 집행부를 새로 구성해야 대화하겠다는 정부·회사의 주장은 법률적 설득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 집행부와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넘어온 공’ 터뜨린 정부

이처럼 상식을 벗어난 정부의 대응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선거 관련설도 제시되고 대통령 개인의 통치 행태를 거론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든 공통적인 것은 노조보다 정부가 한 발짝 앞서서 사태를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이광택 교수(국민대·법학)는 “한국통신 사태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정부가 스스로 법률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법적 모순을 여러 곳에서 범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부 스스로 도덕적 명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조 간부를 연행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종교계의 중재 노력에 따라 노조가 협상안을 정부와 회사측에 제시한 시점이다. 정부는 넘어온 공을 터뜨려 버린 셈이다. 그 배경에는 ‘노조는 곧 불법 세력이고 노조 행위는 곧 모두 불법 행위’라는 한국적 등식이 작용하고 있다.

지금 종교계의 조종 소리는 시민단체 속으로 확산되어갈 전망이다. 정부는 이 종소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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