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정국 흔드는 政 · 敎 갈등
  • 김 당 기자 ()
  • 승인 1995.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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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화근은 말이었다. 87년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 이후 8년 만에 명동성당에서 다시 보게 된 천주교 사제단의 침묵 시위는 말의 아낌과 바름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박군 사건은 그 자체가 공권력 남용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사건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게 한 데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정부 당국의 거짓말이 일조했다. 역사에 가정을 인정한다면, 적어도 사건 발생 초기에 정부 당국이 사건의 진상을 사실대로 밝히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6·10 항쟁의 근거지였던 명동성당에서 다시 6월9일부터 하루 두 차례씩 계속되고 있는 사제단의 침묵 시위는 그 어깨 너머로 걸린 ‘명동성당 난입한 현 정권은 사죄하라’고 쓴 현수막에서 알 수 있듯, 공권력 투입에 대한 저항의 몸짓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국적으로 ‘성당 난입’의 발단이 된 한국통신 사태를 유발한 정부의 ‘제3자 개입’과 국정 최고 책임자의 ‘말의 폭력’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 발단의 본질이 정부가 노사 자율 교섭 원칙을 파기한 것과 김영삼 대통령의 ‘국가 전복 음모’ 발언에서 말미암았다는 것이 천주교측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통신 노사 분규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국가 전복 음모’라고 발언(5월19일)한 이후 김도언 검찰총장의 ‘국가 통신망을 볼모로 한 정치적 목적의 불법 집단 행동’ 규정(5·`29 특별 기자회견), 진 념 노동부장관의 ‘한통 노조 현 집행부와의 대화 거부’ 천명(6.1), 명동성당 및 조계사에 대한 공권력 투입(6.`6)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 전개는 사제들로 하여금 ‘국정 최고 책임자의 현실 인식과 발언이 무리수를 낳았다’는 심정적 확신을 갖게 해 준 셈이다.

사제단의 침묵 시위는 중재와 대화 대신에 ‘법 집행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공권력 투입을 부추긴 언론에 대한 저항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통 노조 집행부의 농성장을 두고 70년대 반유신 투쟁 때와는 달리 ‘그곳을 지나가는 90년대 시민들의 짜증이요 무관심이다’라고 공권력 투입을 사설로 부추긴 언론이, 사제단 침묵 시위에 대해서는 정부와 마찬가지로 못본 체하고 있을 뿐이다. 이 또한 ‘90년대 언론의 짜증이요 무관심’ 때문일까.

말의 폭력에 저항하는 사제단의 침묵 시위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성경 말씀이 90년대의 현실에서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시험은 한국 천주교회의 반성에서 비롯한 자기 구속이기도 하다.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던 한국통신 노조 간부 연행(6월6일)에 이어, 이에 항의한 대학생·신자 들을 연행(6월7일)한 공권력 난입은 한국 천주교사상 시국과 관련해 서울대교구 사제평의회가 6월9일 처음 열리는 비상한 상황을 낳았다.

이 날 김수환 추기경이 주재한 사제평의회는 ‘교회에 부여된 고유한 소명을 부인한 문민 정부의 일방적 통치 논리와 성당에 난입해 폭력을 자행하는 비도덕적 만행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우리의 견해’와 함께 국가 권력의 투입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동참해온 교회의 전통과 도덕적 가치가 심각히 훼손된 데 항의하는 뜻을 담아 6월13일부터 3주 동안 매일 오후 3시에 명동성당에서 조종을 치기로 결정했다.
천주교, 언론의 ‘본질 호도’에 분개

이는 곧 ‘교회의 도덕성 상실과 문민 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조종이다. 이같은 자기 구속은 그 전날 젊은 사제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성지 침탈에 대한 서울교구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위원장 박기호 신부)의 결의 수준을 완화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정의구현전국사제단(상임대표 안충석 신부)을 중심으로 한 비대위의 목소리가 주교단의 그것과 한 목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구속력은 더 커졌다. 늘 진보와 보수로 갈려 서로를 견인했던 사제단과 주교단이 일치된 것은, 이번 사태가 명동성당이 세워진 지 백년 동안 ‘결코 경험한 바 없었던 비극적 사태’라는 인식을 공유한 데서 비롯됐다.

천주교측은, 한국통신 노사 분규를 정부가 ‘국가 전복 음모’로 확대 해석하여 사건의 본질을 왜곡한 것은 과거 정권이 되풀이해온 노사 문제에 대한 국가 안보적 시각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정부가 농성자를 대상으로 제시한 사전 구속영장은 1년 전 노사 문제와 관련되어 발생했던 업무방해 혐의로 발부된 것이었고, 이들이 업무방해 죄목으로 구속된 것은 곧 이들의 행위가 국가 전복 음모와는 무관한 노사와 관련한 일이라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자기 모순이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이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한 ‘법 집행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도 교회측이 수긍할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통신 노조원들이 과연 범죄자인가도 확인해야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에 의해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모두가 무죄 추정의 대원칙 앞에 평등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행 노동쟁의조정법은 ‘근로자는 쟁의 기간에는 현행범 이외에는 어떠한 이유로도 그 자유를 구속 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근로자에 대한 구속을 쟁의 행위를 봉쇄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을 금하고 있다.

세속법으로부터의 배타적 독립을 요구하는 의미에서의 ‘성역’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교회측의 설명이다. 교회가 주장하는 ‘성역’은 정당한 법 집행을 막는 공간적 의미의 특권이 아니라 마지막 피난처로 교회를 찾는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힘겨운 의무이기 때문이다(11쪽 상자기사 참조).

다른 그 무엇보다도 교회가 일치된 목소리를 낸 데는 이번 사태로 이른바 문민 정부에 기대했던 신뢰와 함께 공권력의 정당성과 정부의 도덕성도 무너졌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천주교측은 교회가 조계종과 함께 중재에 나서 노동자들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공권력이 투입된 것에 대해 슬픔을 느끼고 있다. 최창무 주교(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는 그 비애를 “우리는 현 정부가 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력을 투입하리만큼 부도덕하고 무지몽매하지 않을 것임을 믿었다. 그러나 정부의 대화는 사술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고 토로했다.

특히 교회측이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은 지방자치 4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종교계의 반발이 뻔히 보이는데도 무모한 강경책인 암호명 ‘광화문 작전’을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번 작전에는 과거에 그나마 있어 왔던 ‘사전 교감’이나 ‘정지 작업’ 같은 형식마저 없었다. 특히 천주교와 불교계는 대통령의 ‘국가 전복 음모’에 이어 언론의 ‘성역 불용론’ 같은 비상식적인 논리가 아무런 검증이나 통제 없이 현실로 접목된 것(<한겨레신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문·방송이 이에 가담했다)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언론이 한통 분규 초기부터 국가 전복 음모 및 불법 행동이라는 정부측의 ‘억압적 논리’를 검증이나 여과 없이 충실히 대변해온 것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국가 전복 음모라는 논리는 노조의 절제된 준법 투쟁으로 금방 힘을 잃어버렸지만 언론은 이를 철회하지 않고 ‘법 집행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했다. 한통 사태에 대한 노동·법학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에서 보듯(14~15쪽 참조), 법을 엄격히 적용하자면 노사 간의 자율교섭과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노조 집행부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한 정부는 자율교섭을 방해하고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어긴 ‘범법자’이고, 한국통신측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적법한 절차를 거쳐 노조원 절대 다수를 조직한 집행부와 대화하기를 거부한 노동법 위반(부당노동행위) 사범이다.

그런데 언론은 노조의 준법 투쟁은 불법 행동으로, 현행 노동법을 어기고 있는 정부와 사측은 엄격한 법집행자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거의 모든 언론에 같은 날, 같은 내용의 사설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실린 것도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교회가 승복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한 ‘지금은 과거 유신·독재 정권 시대와는 다르다’는 논리에는 김영삼 정부가 문민 정부이므로 모든 수단(공권력)은 적법·정당하다는 논리적 비약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 교회의 인식이다.
종교계, 이원종 정무수석에 의심의 눈길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종교계는 평소 언론 정치의 주역으로 거론돼온 이원종 정무수석을 표적으로 삼는다. 정무수석실이 전에 김정남 수석이 교문수석으로 있을 때 관장한 종교(문화체육 및 사회담당 비서관)를 맡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개신교 일부 세력이 이번 기회를 통해 명동성당과 추기경의 권위와 위상 약화를 꾀하려 법 집행의 정당성을 강조했다는 소문까지 유포되고 있다.

정부가 무리수를 둔 배경에 대한 다양한 추측과 달리 분명한 것은, 천주교회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정부의 무리수가 정부로서도 예상치 못한 교회의 강경한 반발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강경했던 정부가 사과 의사를 표명해 오고 있는 것 자체가 정부의 당혹감의 표출이자 무리수임을 자인하는 것인 셈이다. 천주교측은 안병욱 경찰청장의 사과 방문 요청을 거절한 데 이어 6월10일에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알려진 한승수 청와대 비서실장의 명동성당 방문 의사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계와 천주교가 함께 연대의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도 이번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6월7일 교계 38개 단체로 구성된 ‘6·6 교권 유린 범불교 대책위원회’(위원장 명진·효림 스님) 또한 지난 6월8일 정부·여당의 사절단 파견 소식에 반발해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태에서 ‘여당 사절단은 성지에 들어올 수 없다’고 쐐기를 박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매일 저녁 8시 조계사 앞에서 침묵 시위와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범불교대책위는 현재 △대통령 공개 사과 및 재발 방지 공개 확약 △내무부장관 및 경찰청장 문책 △한통 노조원 석방 및 노사간 대화 해결 촉구 등을 요구해 놓고 있다. 불교계는 답변 시한이 지난 6월12일 오후에는 조계사에서 대규모 시국 법회를 갖고 종단 차원에서 이를 다루도록 임시 중앙종회 소집을 요구하는 등 규탄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민간단체, 대통령 탄핵소추 추진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간단체가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통 사태를 계기로 학계·종교계, 재야·노동·시민 단체들이 망라된 ‘부당한 공권력 반대와 노동인권보장 범국민대책위원회’(대표 김진균 교수 등)는 6월10일 대학로에서 항의 집회를 갖고 ‘대통령 탄핵소추 국회 청원 서명운동’을 개시했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도 김영삼 대통령이 한통 노조 활동에 대해 ‘국가 전복 저의’라고 말한 것은 노동기본권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한통 노조가 파업은커녕 쟁의 발생 신고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를 불법으로 몰아 노조 간부를 구속하고 수배하는 것은, 대통령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헌법을 위반한 경우이므로 마땅히 국회에 의한 탄핵소추 대상이 된다고 노동인권대책위는 발표했다.
탄핵소추 서명 운동은 그 실효 여부를 떠나 민간 차원에서의 첫 소추 추진이 이른바 문민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과, 하필이면 남아공화국 만델라 대통령 공식 초청 사실을 발표한 6월10일 서울 대학로에 모인 시위 인파(3만~5만명 추산)가 김영삼 정부 들어 최대를 기록했다는 점 등은 안팎으로 부담스런 기록이 될 것 같다. 특히 문제는 선거를 앞둔 정부에게 사과말고는 뚜렷한 해결 방안이 거의 없다는 점인데, 추기경의 전례 없는 단호함은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6월11일 12시 명동성당 특별 미사에서 행한 추기경의 시국 강론은 명동성당에 대한 정부의 공권력 투입으로 발생한 정부와 천주교와의 긴장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였다.

추기경은 강론에서 “최근 한국통신 사태와 명동성당 공권력 투입 사건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대화보다는 힘의 논리가 우선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 주었다”고 전제하고 “끝까지 대화로, 또 한걸음씩 양보할 것을 촉구한 교회측의 중재를 무시하고 공권력을 투입한 정부의 힘의 선택에 우리 교회는 놀라움과 동시에 깊은 유감과 함께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추기경은 또 교회가 치외법권으로서의 성역을 주장한 적이 없는데도 정부와 언론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해 공권력 투입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명동성당이 힘 없는 많은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고 또한 동시에 과거 군사독재 아래서는 민주화운동의 보루로 성역과 같이 인정되고, 말할 수 없는 많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성역으로 지켜진 것은 여기에 어떤 법의 보장이나 눈에 보이는 보호 울타리가 있어서가 아니다. 명동성당이 ‘성역’이 된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과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사회 정의를 추구한 사람들의 양심과 도덕적 힘 때문이었다. 정부의 공권력 투입은 공간적인 의미의 성역을 침범한 것이 아니라 이 자리를 사람들에게 피난처로 여기게 했던 도덕적인 힘, 바로 그것을 짓밟은 것이다.”

추기경은 강론 원고에 없던 말도 했다. 추기경은 87년 명동성당을 근거지로 삼은 6`·10 민주항쟁을 예로 들며 “8년 전 정부 책임자가 저에게 와 명동성당 농성장의 공권력 투입에 대한 양해를 요청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회고하고, 그때 교회에 농성과 보호를 요청했던 사람들이 지금 문민정부에 들어가 있음을 지적했다. “더욱 비애를 느끼는 것은 이런 도덕적 힘이 결집해서 탄생한 이른바 문민정부에 의해 이 자리가 유린되었다는 것이다. 그 도덕적 힘은 이 정부의 모태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모태와 같은 존엄한 양심과 그 도덕적 힘을 물리력으로 유린했다.”

추기경은 또 “이 정부가 들어설 때 내가 미사 중에 이렇게 정부를 비판하는 강론을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교회와 정부 사이의 긴장 관계와 대립이 더 악화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추기경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김영삼 대통령을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정부가 스스로 알고 있고, 교회는 이를 지켜볼 뿐이다”라고 밝힘으로써 정부의 사과가 없는 한 교회와 정부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강하게 내비쳤다.

이 날의 특별 미사 강론은 원래 추기경의 몫이 아니었다. 세미나 참석차 예정된 대만 출국(6월12일)을 앞두고 ‘당신의 뜻’을 밝힌 것이라는 주변의 설명이다. 출국 전에 추기경의 지시로 기존의 비대위가 ‘서울대교구 시국대책위원회’로 확대 개편돼, 위원장에 김옥균 서울대교구 총대리주교, 집행위원장에 최창무 주교가 임명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전국에서 상경한 사제와 신자 등 1만8천명이 참석하는 성역 회복을 위한 시국 미사 및 기도회(6월13일)는 일단 사태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 선택은 전적으로 정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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