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 여아 살해…광란의 유혈극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8.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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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감별 통한 낙태 상상 초월…선별 임신법 기승
한국 사회에서 여자 아이들은 세 번 살해당한다. 먼저 딸 대신 아들을 가려 낳기 위해 부모가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살해당한다. 두 번째 살인은 태아가 딸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낙태’라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가 윤리적 살인, 두 번째가 생물학적 살인이라면 세 번째는 사회적 살인이다. 두 번의 ‘살해 위기’를 벗어나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갖가지 불평등이 바로 세 번째 살인에 쓰이는 도구들이다.

남·여 출생 비율 ‘260 대 100’인 병원도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살인은 엄마 뱃속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살인이다. 성별 검사를 통한 여아 살해는 ‘공식’ 통계만으로도 연 평균 2만2천여 건에 달한다(성 감별 행위 자체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만도 연간 2백40억여 원(중절 수술 비용+양수 검사 또는 융모막 검사 비용)에 이른다는 것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추정이다.

딸 둘을 낳던 때를 생각하면 박덕선씨(36·경남 마산)는 지금도 부아가 치민다. 호랑이띠·말띠 해에 두 차례 아기를 임신했던 박씨는 임신 기간 내내 성별 검사를 해 보라는 주변의 강권에 시달려야 했다(30쪽 상자 기사 참조). 이처럼 여자 아이들은 단지 호랑이띠·용띠·말띠 해처럼 ‘기(氣)가 센 해’에 수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하기도 한다. 때만 되면 벌어지는 집단 살해극은, ‘3봉(峰) 곡선’이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출생 성비 분포를 낳았다(오른쪽 도표 ‘지역별 출생 성비’ 참조).

이미 지난 10년간(86∼95년)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보다 평균 13.3% 많이 태어났다. 자연 상태에서 정상으로 나타나는 출생 성비(출생 여아 백명당 남아 수)가 아들과 딸이 106 대 100인 데 비해 지난 10년간 나타난 평균 성비는 113 대 100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기가 센 해’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파괴된 출생 성비가 더욱 파행적인 상승 곡선을 그린다. 호랑이띠·용띠·말띠 해였던 86년·88년·90년 출생 성비는 각각 111.7, 113.8, 116.6으로 전년도 출생 성비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전국에서 성비가 가장 기형적이기로 악명 높은 대구 지역의 경우 같은 기간 출생 성비는 각각 126.9, 134.5, 129.9에 이르렀다.

호랑이띠를 다시 맞은 올해 ‘공포의 3봉 순환 주기’가 시작될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올 초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범띠해 감시단’을 결성해 불법 성 감별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안간힘을 써 보기도 했지만 광란의 유혈극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지난 6∼8월 보건복지부가 전국 22개 병원·의원·조산원을 상대로 지난 3년간(96년∼98년 8월) 신생아 출산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출생 성비는 이미 심각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이번에 조사 대상이 된 경기도 ㅂ병원은 올 들어 남아 대 여아 출생 비율이 무려 260 대 100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96년과 97년 이 병원의 출생 성비는 각각 129.8과 117.5였다. 이밖에 부산 ㅅ산부인과, 대구 ㅅ병원, 전주 ㅂ산부인과에서 나타난 출생 성비도 각각 129.3, 119.6, 120.9로 정상을 크게 벗어난 수치였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는 선별 임신 기술, 곧 아들 딸을 처음부터 가려 낳게 만드는 기술은, 여자 아이를 이 세상에 아예 존재할 수 없게 만드는 원천적 살해의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전문대를 졸업한 주부 ㅇ씨(36)가 아들 딸을 골라 낳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회사 ‘이오스’를 찾은 것은 지난 7월이었다. 이오스는 프랑스에서 개발되었다는 셀나스 임신법을 국내에 보급하는 대행사이다. 5년 전 딸을 낳은 뒤 ㅇ씨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외아들인 남편 위치나 서른이 넘은 자기 나이를 고려할 때 두 번째 아이는 반드시 아들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아들을 낳게 해 준다는 한약을 3백만원 가까이 들여 지어 먹고, 온갖 식이 요법·민간 요법을 병행했어도 아들은 들어서지 않았다. 성별 검사 결과 딸로 나타난 태아를 지운 것만도 두 차례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오스를 찾은 ㅇ씨는, 이 회사가 지정해 준 날짜에 성 관계를 가진 결과 소원을 이루었다. 임신 9주째인 지난 10월 말 병원에서 불법으로 양수 검사를 받은 ㅇ씨는 뱃속에 든 아기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씁쓸하면서도 흐뭇한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 ㅇ씨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른바 ‘극성 주기’를 이용해 아들 딸을 가려 낳게 해 준다는 이오스의 주장에 대해 산부인과 의사 대다수는 ‘의학적으로 전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28쪽 상자 기사 참조). 사실 의료계 바깥에서 유통된 이같은 선별 임신 방법들이 효능을 인정받은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개업한 지 4개월밖에 안된 이오스는 ㅇ씨 같은 사람들로 문전 성시를 이루고 있다. 딸만 셋을 낳았는데 기저귀를 갈아 줄 때마다 ‘하나만 달렸어도’라고 중얼거리는 남편을 보며 아들 낳을 결심을 굳혔다는 전남 순천의 여교사, 딸 둘을 키우고 살다가 재혼했는데 이번만은 아들을 낳고 싶다는 경남 창원의 중년 남성, 체외 수정으로 딸만 셋을 낳았는데 이번에는 아들을 체외 수정으로 낳아 보고 싶다는 40대 여성…. 이들의 사연은 제각각이다.
딸을 낳은 지 보름밖에 안되었다는 한 20대 여성은 “7∼8개월이 지난 뒤 임신을 시도해 보라”고 상담원이 권유해도 당장 가입 원서를 보내달라며 막무가내로 버텼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한 달 만에 이 회사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또 다른 여성은 “내가 아이를 밴 날짜가 아들을 가질 수 있는 날짜인지 알려 달라. 만약 뱃속 아이가 아들이 아닐 경우 중절 수술을 하고 셀나스 임신법에 따라 임신을 다시 시도해 보겠다”라고 사정하기도 했다(이오스의 주장대로라면 아들 또는 딸을 갖는 날은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다).

고객들의 계층도 제각각이다. 가입비 55만원을 할부로 낼 수는 없는지 문의하는 서민층이 있는가 하면 ‘손주 손 잡고 필드에 나가고 싶다’는 시아버지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 이 회사를 찾았다는 강남 부유층 주부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아들을 낳기 위해 이제까지 별별 방법을 다 써 보았다는 것이다. ‘월경이 끝난 날부터 금욕하다 배란일 당일에만 관계를 갖는다’ ‘부부 관계를 갖기 15분 전 남편이 커피를 마신다’처럼 시중에 나도는 비방을 꼬박꼬박 실천하는 것은 기본이다. 개중에는 제주도 하루방 돌 조각을 갈아 마셔 보고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해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일반의 통념과 달리 ‘아들 없는 죄로 가슴에 피멍이 맺힌’ 여성들만 이 회사를 찾는 것은 아니다. 이오스 상담원 곽 아무개씨는 “남성들의 문의 전화가 의외로 많다”라고 말한다. 하루 30∼40통 가까이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 60%는 남자의 문의 전화라는 것이다.

이오스가 7∼9월 1차로 확보한 고객 70명의 신상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연령대가 25∼49세에 걸쳐 있는 이들 고객의 절반 가까이는 딸만 둘을 두고 있다. 영남 대 호남 비율은 9 대 1 정도로 영남 쪽이 월등히 많다. 이들 가운데 딸을 원한 사람은 3명(5%)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해 프랑스 본사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89∼94년 프랑스에서 실시한 셀나스 임신법 임상 실험에 참가한 부부 1백55쌍 가운데 딸을 원한 사람은 과반수가 넘는 81쌍(52.3%)이었다.

이같은 통계는 아들 선호가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를 보여 준다. 80년대 잇달아 등장한 ‘마이칼 정(철·인·칼슘 복합 제재)’ ‘그린 젤리’ ‘아들 낳는 팬티’가 그러했듯, 셀나스 요법은 반짝 인기만 끌고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통 의학계에서 검증받은 선택 임신 방법들이 국내에 본격 도입될 경우 벌어지게 될 상황은 예측을 불허한다.

학계가 연구 중인 선택 임신 기술의 원리는 간단하다. 정자에는 X 염색체를 지닌 정자와 Y 염색체를 지닌 정자 두 종류가 있고, 둘 중 어떤 종류의 정자가 난자와 만나느냐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는 것이 의학계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성 염색체 가설’이다. 따라서 이들 정자를 분리해 낸 다음 인공 수정 또는 체외 수정을 시키면 원하는 성별대로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자를 분리하는 기술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20∼30년 전부터 과학자들은 필터를 이용해 정자를 거르거나 전기 충격을 가해 정자를 분리하는 방법 등을 연구해 왔으나 선택 임신에 응용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분리 과정에서 유전자가 일부 손상되는 부작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알부민 정자 분리법, 선별 임신 성공률 70~75%

그 중에서 성공률이 가장 높다는 방법이 ‘알부민 정자 분리법’이다. 정자를 알부민에 담구어 두면 X 염색체 정자보다 가벼운 Y 염색체 정자가 위에 뜨는 것을 이용한 이 기술은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방법으로 선별 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70∼75%이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머지 않아 선택 임신 성공률을 90%까지 올려 놓을 전망이다(실제로 H-Y 항원을 이용해 정자를 분리했을 때 ‘여자 아이에 한해’ 임신 성공률이 90% 이상이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의 지네틱스&IVF(유전학 및 시험관 아기 기술) 연구소는 형광 색소와 레이저 광선을 이용해 정자를 분리하는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휴먼 리프로덕션> 9월호). 연구팀에 따르면 이 기술로 분리할 수 있었던 X 염색체 정자는 85%, Y 염색체 정자는 65%에 이르렀다.

이같은 기술 진보가 한국 사회에 가져올 변화는 불 보듯 뻔하다. 선별 임신 기술이 발전하면 한국의 여아 대비 남아 출생 성비는 169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 미국 인구학회지 <데모그라피>의 전망이다.

80년대 초반 <아들·딸 가려 낳기>라는 책을 써 화제를 모았던 박성구 원장(자선산부인과)은 이같은 이유로 ‘선별 임신 기술 도입은 한국 상황에서 시기 상조’라고 잘라 말한다. 아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 구조가 온존하는 한 어떤 선의를 갖고 도입한 선별 임신 정보 내지 기술도 ‘아들 낳기 조장용’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박원장은 가족 계획에 도움을 주고, 불필요한 여아 낙태를 방지하며, 유전적 질환을 방지할 수 있다(뒤센형 근위축증이나 혈우병은 X 염색체를 통해서만 유전된다)는 이유로 선별 임신 정보들을 제공했었다.

이와 달리 날로 심각해지는 여아 낙태를 방지하기 위해 의학적으로 검증받은 선별 임신 기술을 도입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단 이를 위해서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손영수 박사(이화여대 의대·산부인과)의 지적이다. 영국, 홍콩,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 세부적인 자율 시행 지침을 갖고 선택 임신 클리닉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선별 임신 허용하면 대재앙 온다”

이들 나라의 선택 임신 클리닉 시행 지침은 다음과 같다. △결혼 또는 결혼에 준하는 관계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다 △자녀가 없는 부부는 제외한다 △가족 안에서 균형 있는 성비를 갖추려는 목적으로만 시행한다 △정자는 의학적 감독 아래 처리한다 △인공 수정 같은 시술은 산부인과 전문의 또는 이에 준하는 특별한 훈련을 받은 자가 시행한다 △선택 임신의 성공률을 분명히 알고, 원치 않는 성별을 임신하게 되었을 때도 인공 임신 중절을 시행하지 않도록 부부가 동의한다.

이를 변용하면 자연 성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개인의 행복 추구권 또한 침해하지 않는 한국적 대안을 창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손영수 박사의 지적이다. 예를 들어 이미 자녀를 갖고 있는 부부를 대상으로 삼되, 기존 자녀와 성별이 다른 아기만 선별 임신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지침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을 갖기까지 여자 아이 둘을 낙태한 ㅇ씨는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울 때와 느낌이 너무 달랐다”라며, 선택 임신 기술이 양성화되면 여성들이 그런 비참한 경험을 하지 않고도 아들·딸을 고루 낳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선별 임신을 허용하는 문제는 거대한 법 철학적·윤리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다. 낙태반대운동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김일수 교수(고려대·법학)는 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시도 자체가 넓게 보면 낙태나 다를 바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출생이나 죽음에 인간이 개입하려 드는 것은 자연에 반하는 행위이며, 이같은 행위는 원자 폭탄 발명과도 같은 대재앙을 예고한다는 것이 김교수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생명윤리학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는 황상익 교수(서울대·의사학)는 공개적인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간 지식인들은 사회 공익적인 목표(성비 균형 유지)가 개인의 행복 추구권에 우선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완전히 이루어진 양 침묵해 왔다는 것이 황교수의 지적이다. 그 이면에서 여성들은 불법 성별 검사, 낙태, 사이비 ‘족집게 임신법’ 따위에 자기 몸을 내맡기며 여아 살해를 재생산하는 주범 노릇을 해야 했다.

현재 추세대로 성비가 파괴되면 결혼 적령기 신부가 부족해짐에 따라 각종 성 범죄가 빈발하고, 동성애가 늘어나며, 조혼이나 만혼이 유행하면서 이혼율 또한 증가하리라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결혼 적령기를 맞은 남녀 성비는 123.4 대 100에 이를 전망이다(아래 표 참조).

보건복지부는 성비 파괴가 더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남아 선호관 불식을 위한 법적 평등과 사회 제도 개선 △여성 인력 활용과 취업 확대 △성 감별 행위에 대한 지도·단속 강화 같은 정책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성 감별을 해준 의사뿐 아니라 성 감별을 의뢰한 일반인도 쌍벌죄로 엄중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아 살해는 법적 규제로 풀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이 황상익 교수의 지적이다. 선택 임신 기술이 복병으로 떠오르면서 여아 살해는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누구라도 당분간 ‘여아 살해의 공모자’가 될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생물학적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 해도 여성에게 불리한 법과 제도를 방치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사회적 살인을 가할 수밖에 없는 요소가 한국 사회 곳곳에 너무 많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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