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주권 되찾기 '분만대 위의 반란'
  • 김은남 기자 ()
  • 승인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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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보급 등 힘입어 출산 문화 개선운동 ‘활활’…‘제왕절개 권하는 의료 체계’에 도전
분만실과 교도소는 닮은꼴이다.

죄수복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교도소라는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듯 분만실에 들어서는 산모는 환자복을 먼저 입어야 한다. 머리를 깎고 소독약을 뿌리는 교도소의 의식은 분만실에서 은밀한 곳의 털을 깎고 관장을 하는 의식으로 대체된다. 이로써 죄수(산모)는 바깥 세계로부터 분명하게 격리된다.

이제 죄수(산모)를 통제하는 것은 ‘나’가 아니다. 교도관 허락 없이 죄수가 네모난 감방을 벗어날 수 없듯 산모는 의사의 허락 없이 분만실 침대를 빠져 나올 수 없다. 침대에서는 반드시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운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태아 심박동을 재기 위해 복부에 찬 전자 모니터(EFM)가 흘러내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진통이 너무 심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산모는 최대한 공손히, 이렇게 물어야 한다. “저 한 번만 돌아누워도 돼요?”

분만실과 교도소가 닮은 점

출산 문화를 바꿔 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먼저 출산 당사자인 여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산 주도권이 ‘의사’나 ‘병원’에서 ‘산모’로 넘어와야 한다는 생각은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조금씩 확산되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 민간 영역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분만 교실, 기체조 센터가 그 진원지였다.

이전에도 병원이 직접 운영하는 분만 교실은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분만 교실은 대부분 병원이 주도하는 출산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전제하고 여기에 필요한 호흡법 따위를 가르치는 것이었다고 권현정 실장(‘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 부설 임산부 기체조교실)은 지적한다. 이에 반해 민간이 운영하는 분만 교실은 ‘자연스러운 출산’‘남편도 함께 참여하는 출산’을 지향하며 자연 분만·모유 수유 운동을 벌여 왔다.
이를 거스르는 병원은 자연스럽게 이들 단체의 블랙 리스트 대열에 올랐다. 권현정 실장은 “체조 교실을 연 지 5년여 동안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전국의 웬만한 산부인과 현황은 훤히 꿰뚫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이들은 ‘○○병원은 제왕절개 비율이 유독 높으니 가서는 안된다’ 같은 정보를 회원끼리 공유했다.

이같은 운동이 대중에 확산된 결정적인 계기는 인터넷 보급이다. 여성들은 주부 동호회나 출산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산부인과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산부인과 성적’까지 매기기 시작했다. 자생적인 소비자 운동이 일어난 셈이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조산원에서 최근 첫아기를 출산한 배미현씨(28)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병원이 유명하다더라 해서 무작정 찾아가는 산모는 이제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인터넷이나 관련 책자를 통해 정보를 꼼꼼히 챙긴 뒤 자기에게 맞는 병원을 결정한다.”

올 초 SBS 텔레비전이 밀레니엄 기획으로 제작·방영한 다큐멘터리 3부작 <생명의 기적>은 이같은 운동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방영 이후 수중 분만을 포함한 각종 대안 분만 열풍을 일으키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가 기존 병원 출산을 넘어선 대안을 고민하게 만들었다(22~23쪽 딸린 기사 참조).

이처럼 무르익은 분위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 지난 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1999년 제왕절개 분만 실태’였다(20쪽 상자 기사 참조). 한국의 제왕절개 분만율이 43%로 세계 최고라는 수치를 접한 뒤 여성·소비자 단체는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지난 7월14일 건강연대와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 토론회를 갖고, 왜곡된 출산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제왕절개 분만율을 낮추기 위한 대책 수립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이 제왕절개를 문제 삼는 시각은 조금씩 달랐다. 소비자 단체는 불필요한 수술로 인해 여성이 건강에 피해를 보고, 국민의 혈세 또한 낭비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여성 단체는 제왕절개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주체가 철저하게 의사이며, 이 과정에서 출산 당사자인 여성이 소외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민우회가 지난 5∼6월 회원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제왕절개 경험자 1백9명 가운데 80%가 의사가 권유해 수술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제왕절개, 의보 수가로 해결할 문제 아니다

이들은 현 수준의 제왕절개 분만율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의료보험 분만 수가 체계 전면 재조정 △의료 사고 우려에 따른 ‘방어 진료’를 막기 위한 의료분쟁조정제도 도입 등이 이들의 핵심 요구 사항이다. 이는 의료계의 숙원과도 일치한다.

일선 의사들은 ‘의보 수가보다 사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소신껏 자연 분만을 시도하기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봄산부인과 심상덕 원장은 “아흔아홉 번 아기를 잘 받았어도 한번 사고가 나면 돈이고 명예고 한순간에 날아가는 판국에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것이 건강연대 허윤정 시민건강지원팀장의 지적이다. 의료 분쟁의 30%가 산부인과에서 발생하고, 법원 판례 자체가 ‘자연 분만은 유죄, 제왕절개 분만은 무죄’ 식으로 의사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이상 이들의 방어 진료를 탓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행 구조에서는 의사가 잘못을 시인하는 순간 유죄가 입증되기 때문에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발뺌하다가 의사와 환자 양쪽이 모두 극한 대립으로 치닫기 쉽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분쟁 조정 기구라는 완충지대와 분쟁을 해결할 공적기금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 허윤정 팀장의 지적이다.

의보 수가도 난제이다. 의사들이 아무리 ‘수가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변한들 지난 20년 간의 수치는 의보 수가와 제왕절개 증가율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의료보험 자료에 따르면 1985년까지만 해도 6.0%에 머물렀던 제왕절개 분만율은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된 바로 다음해인 1990년 13.3%로 뛰어올랐다. 이 수치는 해를 거듭할수록 가파르게 상승했다.
따라서 의보 수가를 현실과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문제는 과연 의보 수가 조정이 제왕절개 감소로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웬만한 수가 정책은 이미 나올 만큼 나왔다’는 것이 강영호 교수(울산의대·보건정책학)의 지적이다. 보건복지부는 1996년 이래 제왕절개 수가를 동결하고 자연 분만 수가를 단계적으로 높여 왔다. 분만 시간이 12시간을 넘느냐 아니냐에 따라 수가를 차등 적용하는 정책도 실시했다.

그러나 강교수에 따르면, 외국에서도 수가 정책이 헛수고로 끝난 사례가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1993년 자연 분만 수가를 3% 올리고, 제왕절개 분만 수가는 18% 내리는 혁신적인 조처를 단행했다. 결과는? 그로부터 1년 동안 이 지역 제왕절개율을 0.7% 감소시켰을 뿐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정부는 첫아기를 제왕절개로 낳은 뒤 둘째 아기를 자연 분만할 경우 의보 수가를 대폭 높였다. 이 경우 수가는 18만6천6백50원으로 제왕절개 수가보다 오히려 높다. 전체 제왕절개의 43.3%를 차지하는 반복 제왕절개를 막기 위해 병원측에 미끼를 던진 셈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기에 이끌린 병원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 조홍준 건강연대 정책부위원장은 통합적인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앞서 지적한 대로 수가를 포함한 정책·제도 보완이 ‘만능 도깨비 방망이’는 아니라는 것이다.

강영호 교수는 이와 관련해 의사들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분만 기관이면서 제왕절개 분만율 평균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낮은 제왕절개율(16.1%)을 기록해 화제를 모은 광주 에덴병원 허 정 원장은 이렇게 되기까지 기적적인 비결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자연 분만이 우월하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한번 제왕절개를 했던 산모에게도 자연 분만을 권유하고, 담당의 혼자서는 절대로 제왕절개 시술을 결정할 수 없게끔 엄격한 내부 진료 지침을 세운 결과 1994년 개원 이래 10%대 제왕절개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몸은 의사 아닌 내가 통제한다’

그러나 이는 드문 예이다. 오늘날 출산을 이끌어가는 두 축인 의사와 여성 간의 입장 차이는 너무도 뚜렷하다. ‘왜 분만실에 진행 상황이 다른 산모들을 한꺼번에 집어넣어 불안을 느끼게 하느냐’‘왜 의사가 보기 편한 자세로 분만대에 누워 있어야 하느냐’‘왜 아기가 나오려고 하는데 의사가 늦게 온다는 이유로 간호사가 아기 머리를 막고 있느냐’(민우회 설문 조사)며 분노를 터뜨리는 여성과 ‘왜 의료 체계는 선진국형이 아니면서 서비스만은 선진국형을 바라느냐’는 의사 사이에 접점은 없어 보인다.

‘여성의 몸은 본능적으로 아기를 낳는 방법을 알고 있으므로 출산 과정에서 의사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김상희 여성민우회 공동대표)는 여성과 ‘산과의 목표는 산모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설사 산모를 불편하게 할지라도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고 산모 또한 분만 이전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게끔 하는 것이 산과의 최대 목표이다’(전종관 서울대 의대 교수)라는 의사가 타협할 길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어떤 이들은 이같은 충돌에서 문명사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읽어내기도 한다. 구미에서 출산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60∼1970년대였다. 조산사·소비자 단체·페미니스트를 주축으로 한 이들 운동 세력은 현대 의학 기술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면서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의사에게 넘겨 주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출산이 폭력적인 과정으로 변모했다고 공격했다.

이를테면 산모가 복부에 차고 있어야 하는 전자 태아 모니터는 겸자(아기 머리를 끄집어내는 분만용 도구)가 출현한 이래 ‘산과학이 이룬 최대의 진보’로 칭송되었다. 의사들은 이 모니터에 약간이라도 이상한 유형이 나타나면 태아의 심장 박동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해 제왕절개 시술을 감행하곤 했다. 그 결과 이 기계를 도입한 1968년 이래 미국의 제왕절개 시술은 급증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뇌성마비나 출산시의 부상, 신생아 사망 수치에는 거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1980년 초 미국 국립보건원은 위험하지 않은 정상 임신의 경우 이 기계를 사용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출산운동가들은 나아가 임신과 출산을 ‘의학적 사건’이자 ‘병리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의료 전문가와 달리 이를 ‘정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인생사’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의학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뒤떨어진 의료 시스템 문제가 맞물려 있는 한국에서 출산 혁명이 가능할지 전망하기는 더욱 불투명하다. 그러나 ‘폭력 없는 출산’‘내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출산’을 향한 사회적인 욕구에는 이미 불이 붙었다. 1994년 카이로 인구회의는 ‘출산은 스스로의 자유 의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인권의 범주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유린당한 인권을 되찾기 위해 한국 여성은 지금 분만실의 철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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