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흔드는 '프라도 게이트'
  • 나권일 광주 주재 기자 (nafree@e-sisa.co.kr)
  • 승인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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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소유·여운환 운영 호텔에 잡음 들끓어…
인수 과정·공사 대금 착복 '물의'
'이용호 게이트'는 광주에서 ‘프라도 게이트'로 통한다. 여운환씨가 운영하던 프라도호텔이 부도가 나 공사 잔금 24억원을 받지 못한 납품업체 상인 60여 명은 여씨와 호텔의 실소유주인 이용호씨 등을 9월13일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정계·언론계 인사들에게 사우나 무료 이용권 뿌려




광주지검은 호텔 채권단이 이미 8개월 전에 이용호·여운환 씨를 조사해 달라고 촉구했으나 수사를 계속 미룬 것으로 밝혀져 비호 의혹을 사고 있다. 게다가 여씨가 언론계·건설업계·정계 인사들에게 호텔 사우나 무료 이용권을 뿌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프라도 게이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으로 변했다.


‘행세깨나 하는 사람치고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여씨와 형님 동생 안한 사람이 없었다' ‘이러다 정권이 임기나 제대로 마칠 수 있겠느냐'. 확인되지 않은 소문과 우려가 교차하면서 광주 관가와 검찰 주변에서는 한가위 분위기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광주시 남구 백운동에 위치한 시가 1백20억원짜리 10층 건물인 프라도호텔은 고급 한식당·중식당·연회장·유흥 주점·스포츠마사지업소·사우나 시설을 고루 갖추고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호텔은 정·관계 실세들과 친분이 두텁고 수완 좋은 사업가로 통하는 여운환씨가 개장과 동시에 보증금 20억원을 내고 3년간 임차하는 조건으로 사장을 맡으면서 단박에 지역 고위층의 사교 장소로 떠올랐다.


현재 이용호 게이트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들은 호텔 잔여 공사 하도급을 맡았던 영세 업자들이다. 본래 이 호텔은 공사를 맡은 건설업체들이 잇달아 부도를 내 외부 공사만 마친 채 10년 넘게 버려지다시피 했었다. 호텔 이름도 리버티 관광호텔에서 세종호텔-광주관광호텔-호텔 프라도로 세 차례나 바뀔 정도로 사연이 많은 건물이다.




프라도호텔 인수에는 이씨 특유의 기업 사냥 수법이 동원되었다. 우선 이씨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측근이나 ‘바지 사장'을 내세웠다. 처음 호텔을 인수한 쌍봉건영 대표이사 채 아무개씨(42)는 이회장 회사에서 상무로 일한 측근이었고, 채씨로부터 다시 호텔을 인수한 보고산업 대표는 이용호씨의 동생인 이 아무개씨(35)였다. 이씨의 측근 김신의씨는 현재 프라도호텔 법적 소유권자인 미조투자개발 대표를 맡고 있다. 호텔을 담보로 해서 거액의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내부자들이 서로 사고 팔며 회사의 외양만 끊임없이 바꾸어 온 것이다.


여운환씨 역시 지능적이었다. 호텔 채권단 총무 명용문씨(34·광주시 동림동)는 "밀린 공사 대금을 여씨가 감당하기로 3년 임대 경영 계약서에 명문화되어 있어 지불을 요구했더니 되레 이용호 계열사인 (주)레이디의 52억원짜리 부도 어음을 내게 보여주며 ‘나도 이용호에게 당했다'고 오리발을 내밀더라. 52억을 사기당했다는 그가 부도 난 뒤에 호텔에 가압류를 설정한 금액은 겨우 17억원뿐이었다"라며, 여운환씨가 거짓말을 했다고 분개했다.


채권단을 상대로 한 이씨와 여씨의 책임 떠넘기기는 호텔 개장 직전까지도 계속되었다. 채권단의 지불 요구에 이용호씨측은 마지 못해 ‘약속 어음 13억원을 주겠다'며 삼애인더스가 발행한 한빛은행 지급 보증 약속 어음 4장의 사본을 채권단에 팩스로만 보낸 뒤 실제로는 지불하지 않았다.


참다 못한 37개 업체 채권단(대표 이형두)은 결국 지난 1월 광주지검에 공사 대금을 받게 해 달라고 진정했고, 이용호씨가 구속된 지난 9월에는 고소장을 서울지검에 냈다.


광주지검, 이용호씨 구속된 후에야 조사 착수




파문의 진원 : 이용호씨측이 프라도호텔(맨 왼쪽) 공사 납품업체들에 팩스로 보낸 어음 사본과 납품업체들이 검찰에 제출한 고소장(왼쪽).


프라도호텔 납품 대금 1억3천여만원을 받지 못했다는 이형철씨(45)는 "이용호는 바지 사장을 내세워 안양의 대양상호신용금고에 100억원 근저당을 설정한 뒤 실제 공사 대금 30억원보다 많은 50억원을 대출받았다. 자기 돈 한푼 안 들이고 호텔 하나를 얻은 셈이다. 서민들 돈 떼먹고 주가 조작하고, 벤츠나 몰고다니며 정치 실세들에게 로비하고 다녔다니 억울하고 분할 뿐이다"라며 이씨를 엄벌하라고 요구했다.


불똥은 검찰에도 튀었다. 광주지검은 호텔 채권단이 지난 1월10일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이씨가 구속된 직후인 9월15일에야 진정인 조사를 했다. 지난 9월20일 열린 광주 고검·지검 국감에서 여야 의원들은 모두 이 부분을 집중 공격했다.


김승규 광주고검장과 정홍원 광주지검장은 의원들의 추궁에 "조사부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진정 처리가 늦어졌다"라고 해명하며 국감 내내 진땀을 흘렸다. 특히 광주고검은 임양운 고검 차장이 대검 감찰부 조사까지 받아 큰 상처를 입었다. 광주지검 역시 1992년 여운환씨 구속 당시 사건을 덮어버렸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처지여서 초상집 같은 분위기이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되자 여운환씨에 대해 알 만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한 인사는 "학연·지연·혈연으로 여씨와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처지에서 사실 지금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부끄러워 못살겠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중견 기자는 "호남 정권 탄생 뒤 요직에 진출한 검사들과 정치인·관료 들이 천박한 자본가와 기업형 조폭과 얽혀 지내던 과거 커넥션을 뿌리치지 못했다는 데 비극의 원인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무등일보〉 나윤수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실세들이 많이 다칠 것 같다는 정도를 넘어서 (호남)인물이 씨가 마를 판'이라고 크게 우려했다. 한켠에서는 세무 조사에 당한 조·중·동과 한나라당, 검찰 일부가 호남 세력을 치기 위해 역사상 최대의 부패 사건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김성재 교수(조선대·신문방송학과)는 "한마디로 창피한 일이다. 사기꾼과 조폭이 나라를 흔들었고, 이들이 실세들에게 정치 자금을 건넸다면 이 정권은 정권 재창출을 포기해야 마땅하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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