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검찰 ‘사조직 박살’ 작전 펼쳤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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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이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사조직 '나눔회'에 대한 진급 특혜와 보직 독식 의혹을 파헤쳐 군을 바로 세우려 했던 군 검찰의 '의거'는 왜 좌절했을까?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지난 1월4일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이 장군 진급 인사 비리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색적인 희망’을 피력했다. “남총장이 직접 관련은 없는 것 같다. 현재까지 확인해 보았더니 총장이 진급 절차에 책임은 없을 것 같다. 재판도 순조롭게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그동안 육군과 국방부 관계자들을 통해 추적한 각종 증언과 군 내부 증거 자료를 보면, 이같은 윤장관의 발언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남재준 총장은 육군의 장군 진급 심사 회의에서 그 내용을 제대로 보고받았다. 심지어는 직접 여러 가지 지시까지 한 증거도 있다. 가령 장성 진급자 52명을 발표하기 10여 일 전인 지난해 10월4일 회의에서는 유력 경쟁자 중 탈락시킬 19명의 명단에서 두 사람을 예비 후보에 넣어 탈락자를 사실상 17명으로 줄이라고 지시한 당사자가 바로 남총장이었다.

육본 인사참모부는 이 과정에서 진급 탈락자 17명에 대해 억지로 사유를 만들기 위해 군 정보기관을 통해 근거 없는 허위 존안자료를 급조해 첨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인사참모부 비밀 서류 캐비닛에서는 남총장과 근무 인연을 맺은 부하들을 진급 대상자들로 따로 특별히 관리해온 문서가 나왔고, 과거 사조직 관련자 명단이 나오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남총장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 윤장관의 주장인 셈이다.

“참여정부 국방 개혁은 물 건너갔다”

윤장관의 발언에 대해 사조직과 인연이 없는 군 내 대다수 일반 장교들은 불만이다. 육군의 한 중령은 “이제 참여정부의 국방 개혁에 대해 더 기대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시작된 군 검찰의 육군 인사 비리 수사를 지켜보며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제도가 수립되기를 기대했지만 이제 물 건너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수사를 주도해온 군 검찰의 불만은 더 크다. 수사 과정에서 잘린 검찰관 3명이 보직해임 취소 처분 심사 대기중이다. 최근에는 과거 정치 사조직으로 군 안팎에 큰 폐해를 끼쳤던 하나회 출신 일부 인사가 참여정부 들어 국방 요직에 재등용되어 군 검찰의 수사를 군기 문란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18쪽 상자 기사 참조).

그렇다면 창군 사상 처음으로 육군 인사참모부 비밀 캐비닛이 압수 수색되고, 현직 육군 참모총장이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내자 대통령이 반려하는 등 군 전체가 흔들흔들했던 이번 사태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 핵심에는 한국 군부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는 사조직에 대한 군 검찰의 문제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인사 비리 수사팀이 신○○ 중령 한 사람만 구속한 채 좌절한 수사의 종착지는 불법을 동원한 ‘사조직 부활 의혹’이었다. 남재준 총장 개인의 과거 근무 인연을 바탕으로 조직되었으며 남총장이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사조직 ‘나눔회’에 대한 진급 특혜와 보직 독식 의혹을 파헤치는 것이 수사의 최종 목표였던 것이다.

인사 비리 수사는 지난해 10월 하순 준장 진급을 둘러싸고 심각한 잡음이 터져나오면서 시작되었다. 과거 잡음이 주로 육사 출신 편중 인사에 대한 불만이었다면, 이번에는 육사 내부에서, 그것도 수뇌부 사이에 적나라한 갈등이 노출되어 관심이 집중되었다. 10월15일 준장 진급자 52명이 발표되자 김종환 합참의장은 남총장을 상대로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합참이 훌륭한 자원으로 분류해 진급을 추천한 인사는 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급기야 김종환 의장이 남총장에게 욕설을 퍼붓고 윤일영 인사참모부장의 ‘정강이까지 찼다’는 소문이 국방부 주변에 파다했다. 이런 파동 때문에 올해에는 이례적으로 군 내부 인트라넷 홈페이지에 대령에서 준장으로 진급한 이들의 소감문이 오르지 못했다. 파행 인사에 대한 합참의장의 격노가 남긴 상흔이었다.

1993년 하나회 회원 1백50여 명의 명단을 살포해 사조직 척결 신호탄을 올렸던 육사 31기 백승도 준장(당시 대령)도 남총장에게 노골적으로 인사 불만을 터뜨렸다. 이번에 소장 진급과 사단장 진출을 기대했던 그는 남총장 개인 인맥이 승진을 독차지해 피해를 보았다며 남총장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12월 말 군을 떠났고, 최광준 준장도 같은 이유로 사표를 던졌다.

남총장 ‘개입 증거’ 줄줄이 나왔으나…

지난해 11월 음주운전 경력자 등 진급 자격 미달자가 서류 위조 등을 통해 장군 진급자에 포함되었다는 제보가 군 검찰과 청와대에 날아들자, 국방부 주변에는 급기야 이번 장군 진급 인사 파동의 배후에 ‘국방 인사 농단 4적’이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구체적인 불법 행위와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는 말까지 그럴듯하게 퍼졌다.

대부분의 언론이 마치 군 검찰의 수사가 11월12일 청와대 민정비서실에 날아든 음주 운전 관련 진급자에 대한 투서 하나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도했지만 사실은 이미 한 달 전부터 군 검찰은 육군 인사 잡음에 대한 심각하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같은 인사 파열음이 급기야 사상 초유의 인사참모부 사무실 압수 수색이라는 국방부 검찰의 수사를 불러들인 셈이다.

윤장관이 당초 인사 비리 수사팀에 육본 인사참모부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발부하자 실무 책임자인 진급관리과장 차○○ 중령은 금고 문을 열지 않겠다고 버텼다. 당시 차중령은 수사관들에게 ‘이 안에는 공개되면 나라가 시끄러워지고 군 내부에서 미묘한 갈등을 일으킬 자료가 들어 있다’는 말로 끝까지 열쇠를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수사팀이 강제로 서울로 운송해 금고 문을 열자 그 안에서는 통상 사용하는 A4 용지보다 규격이 큰 B4 용지에 컬러로 인쇄된 남총장 계열의 진급 대상자 관련 각종 자료와 과거 사조직 문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진급 대상자를 선정해 가는 과정에서 편법과 불법이 있었다는 의혹이 포착된 것이다.

압수물 가운데는 간사들이 진급심사위에 들어가 특정인을 진급시키기 위해 분위기를 유도하려고 작성한 사전 각본 격인 예문 자료집까지 있었다. 국방부 주변에 소문이 돌던 이른바 ‘인사 농단 4적’의 활동 내용도 구체적으로 확인되었다. 대표적으로 육본 이○○ 인사관리처장(준장)이 남재준 총장의 지시로 경쟁자 17명을 탈락시키기 위해 서류를 위조했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에 따라 군 검찰은 이○○ 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나섰다.

육본 인사참모부에서 압수한 근거 서류를 통해, ‘하나회’와 ‘알자회’ 소속은 육사 43기까지 별도로 관리해 철저히 진급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그 이후 득세한 ‘만나회’와 ‘나눔회’ 등 다른 사조직은 오히려 지금까지도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재준 총장은 취임 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철저히 불이익을 받은 하나회와 알자회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공개 천명했으면서도, 이번에 유력 경쟁자를 떨어뜨릴 때는 하나회와 알자회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것이다.나눔회 출신 인사참모들, 제 식구 심기 ‘혈안’

또 52명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지역 안배를 무시해 특히 호남 지역 소외가 두드러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번 진급자 중 영남 출신 대 호남 출신 비율은 16 대 5로 나타나, 군 안팎으로부터 ‘과거 하나회가 군 인사를 독식하던 시절에도 그렇게 극단적인 지역 편중 인사는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군 검찰은 특정 인사 52명을 장군으로 진급시킨 배경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 핵심적 이유가 사조직 부활이라고 보고 군 사조직 문제로 수사를 확대하려던 참이었다. 최근 7년여 동안 준장 진급자 실태를 조사 분석한 결과 약 70%가 사조직 나눔회 회원 명단에 들어 있던 이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16·18쪽 딸린 기사 참조). 또 남재준 총장이 역대 군 보직을 거치는 동안 직계 부하들의 근무 평점을 관리한 문건이 육군 인사참모부 기밀 자료로 따로 관리되고 있었고, 그들이 주로 진급했다는 증거도 나왔다.

이런 내용이 드러나면서 수사팀이 구조적인 군 인사 비리를 캐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려 하자 남총장은 지난 11월15일 사표를 내며 반발했다. 그는 사표가 수리되기도 전에 총장 관사에서 짐을 싸라고 독려했다. 그러나 이때 노대통령은 남총장의 사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육군은 군 검찰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언론 플레이로 육군 수뇌부를 비리 집단으로 몰아간다며 진급 과정에서 뇌물이 오갔는지 등에 관한 구체적 증거를 대라고 반박했다.

남총장은 이번 인사 과정에서 자기가 나름으로 정치권의 인사 청탁 등을 뿌리치고 소신껏 인사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남총장을 만난 한 정부 관계자는 “그가 군 검찰의 수사 방향에 대해 억울하다고 호소하더라”고 전했다. 남총장이 취임 후 과거와 달리 정치권 등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사 청탁을 단호히 거절했는데, 이런 공로는 인정하지 않고 인사 비리자로 몰아 억울해 한다는 것이다.

실제 남총장이 외부 인사 청탁을 철저히 차단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군 안팎에서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남총장 계열의 나눔회 출신 인사 참모들이 똘똘 뭉쳐 자기 사람 심기를 했다는 점이다. 군 검찰은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남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불법 사조직이 부활할 징후를 파악하고 수사를 확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육본 인사참보부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내준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갑작스런 사태 전개에 당황했다. 보수 언론들이 연일 군의 사기를 내세워 군 검찰 수사를 비판하면서, 육군을 흔드는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식으로 공격해댔다. 육군 수뇌부는 군 검찰을 상대로 여론몰이 수사를 하면서 언론과 접촉한 검찰관들을 징계해야 한다고 조직적인 반격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군 안팎의 육사 출신, 특히 사조직 출신들이 앞장서서 군 검찰을 공격하는 데 가세했다.‘육사 헤게모니’ 지키려고 집단 반발?

이렇게 되자 개혁 명분을 들어 처음에는 군 검찰의 인사 비리 수사를 지지했던 윤광웅 장관이 돌연 수사 중단 쪽으로 선회했다. 국방부 수뇌부는 검찰단장 등을 통해 인사 비리 실무자인 차○○ 중령만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끝내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러나 군 검찰은 이에 반대했다. 시키는 대로 불법을 행한 중령만 구속한 채 그 윗선을 수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수사를 맡은 주요 검찰관 3명은 이런 상황에서 수사 방해를 돌파해 보려고 보직을 해임해 달라는 건의서를 냈고, 국방부는 이를 서둘러 수리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국방부가 세 번에 걸쳐 법을 어겼으므로 보직 해임 처분은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방부 검찰단장도 수사팀에 대한 보직 해임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건의서를 냈다. 그러나 1월7일 현재 국방부는 이들 검찰관 3명에 대한 인사소청심의회의를 계속 미루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겉으로는 인사 비리 수사를 둘러싼 국방부와 군 검찰의 갈등처럼 비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태의 본질은 군 검찰과 군내 사조직 사이에 벌어진 ‘미완의 전쟁’이다. 남총장 인맥으로 분류되는 나눔회 출신 육군 간부들뿐만 아니라 하나회 출신 국방부 수뇌부와 군 안팎의 사조직 연루자들은 연합하는 듯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이들은 군의 기강을 내세워 군 검찰 수사를 중지시키고 수사를 주도한 검찰관들을 엄중 처벌하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한 군사 전문가는 ‘육사 헤게모니’라고 분석했다. 참여정부 들어 육사 출신 장교들 사이에 군내 헤게모니에 대한 위기 의식이 커지면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어온 사조직 의존형 인사제도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라는 해석이다.

군 검찰의 수사 방향이 근본적으로 군내 비밀 사조직 중심의 인사제도를 겨냥하는 것으로 비치자, 과거에 갈등하던 사조직들조차 이번 수사 과정에서는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육군 인사에서 사조직 독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잠재 역량 평가제도’이다. 이것은 전두환 정권 때 처음 도입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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