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국 군사 패권에 맞서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3.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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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 해·공군 현대화→군사력 증강→타 이완 압박…부시 ‘응전’으로 군비 경쟁 조짐
‘중국이 현재와 같은 높은 경제 성장세를 유지한다 해도 앞으로 10년이나 20년 안으로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잡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의 군 현대화를 과대 평가해서도, 과소 평가해서도 안된다. 과대 평가를 할 경우, 미국은 중국과 심각한 적대 관계에 빠지게 된다. 과소 평가하면, 중국으로 하여금 언젠가는 아시아에 미국과 그 동맹국이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의 권위 있는 민간 외교·안보 두뇌 집단인 미국 외교협회는 지난 5월 중순 <중국의 군사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국의 군사력에 대해 이같은 최종 평가를 내렸다. 미국 내 1급 중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테스크 포스’가 1년여 산고 끝에 내놓은 이 보고서는 이와 함께, 미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앞으로 10년 이상 유념해야 할 ‘권고 사항’도 덧붙였다.

우선, 중국 군사 현대화의 진척 속도를 면밀히 측정할 것. 둘째, 중국의 군사 개발 궤적을 추적해 중대 변동의 의미를 읽어 낼 것. 셋째, 군사 당국자간 폭넓은 대화와 교류를 유지해 서로 상대방의 실력을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것 등. 모두 7개 분야 수십 개 조목에 이르는 권고 사항 가운데에는 중국이 해외에서 사들이는 무기의 부품, 군 인사 내용 가운데 특이 사항 등을 따져보라는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미국의 국방비 지출은 현재 연평균 3천억 달러로 중국보다 5배 이상 많다(56쪽 표 참조). 게다가 미국은 현재 중국의 군사력 수준이 자기네보다 약 20년 뒤떨어져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 미국이 왜 중국을 냉전이 한창이던 1970~1980년대 옛 소련처럼(1980년대 중반 한때 소련의 군사비 지출은 미국을 능가했다) 대해야 한다는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는 중국이 차지하는 지정학적 요인이 꼽힌다. 중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구 대국이요 영토 대국이다. 그 놓인 자리 자체가 미국이 구가하고 있는 세계적 이해, 이른바 ‘단극 시대의 패권’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군의 현대화 계획이다. 지난 10여 년간 개혁·개방을 통해 연평균 10%에 달하는 고도 성장을 지속해온 중국은 이같은 성공을 바탕으로 군 현대화에 대해 강한 의욕을 보여왔다. 지난 3월 중국의 ‘제4 세대 지도부’가 정식 출범한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때 주룽지(朱鎔基) 당시 총리가 행한 <정부 공작 보고>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당시 보고에서 주 총리는 ‘좀더 현대화하고 규율이 선, 혁명적인 군대를 꾸리는 일은 중국 인민의 의무’라고까지 강조하며, 군 현대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언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의 군사 움직임을 다시 보기 시작한 이유는 정작 다른 데 있다. 중국은 머지 않아 ‘인민해방군 창건 이래 최대 규모’라고 일컬어지는 병력 감축을 단행할 예정이다. 이는 1997년의 병력 감축(2000년 완료)에 맞먹는 규모로 약 50만명이 군복을 벗는다. 중국군은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한 것이다. 중국군은 또 기왕 진행되었던 군 현대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인사 개편도 단행했다.

지난 6월11일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중국군이 현재 7개 군구로 나뉘어 있는 군사 관할 체제를 축소하고, 50만명에 이르는 인민해방군 병력을 추가 감축하기로 결정했다’는 빅 뉴스를 중국 베이징 발(發)로 보도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1997년 군 감축 조처 결과, 현재 약 2백30만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즉각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를 곧이 믿는 해외 언론은 별로 없었다.

당시는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 전쟁을 예의 주시하던 중국의 군사 당국이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에 대해 또 한번 혀를 내두르며(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 때에도 그랬다), 서둘러 군 현대화를 추진하기로 작정했다는 관측이 베이징 정가에 파다하게 퍼져 있던 참이었다. 지난 5월23일에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의 한 회의 석상에서 ‘예비군 확대 방안과 제대 군인 취업 방안 연구’를 지시하며, 병력 감축을 직접 시사하는 발언을 한 바도 있었다.

후 주석 체제 출범 이후 중국 군부 내에서 일어난 일련의 움직임은 ‘군 현대화를 위한 혁명적인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인민해방군의 최고 지휘부인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중앙군사위)는 후 주석 체제 출범에 즈음해 장쩌민 중앙군사위 주석의 직위만 그대로 유지한 채 상당수를 물갈이했다.
중앙군사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새로 부주석이 된 차오강촨(曺剛川)이다. 옛 소련에 유학한 적이 있으며 러시아어가 유창한 그는 ‘무기 및 군사 기술 수입’을 관장해온 중국 내 최고 전문가이다. 이외에도 중앙군사위 위원 량광리에(梁光烈)는 중국군의 취약점인 ‘합동 작전 수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지휘 구조 개편에 심혈을 기울여온 인물이다. 중앙군사위 새 위원으로 발탁된 리지나이(李繼耐) 장군 또한 과거 인민해방군 총장비부에서 차오강촨 장군에 이은 제2인자로서 중국군에 필요한 첨단 기술 개발 사업을 주물렀던 인물이다. 면모를 일신한 중앙군사위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군 현대화와 효율화 쪽으로 기울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뭔가 변화가 감지되던 차에 지난 5월 단행된 중국 해군 수뇌부 인사는 미국 군사 당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해군 인사는 지난 4월 말 발생한 ‘잠수함 사고’의 책임을 물어 단행된 것이었는데, 새로 해군 제독이 된 장딩파(張定發)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해임된 스윈셩(石云生) 제독이 ‘해군 조종사’ 출신이었던 것과 달리, 잠수함이나 각종 함선을 몰아본 경력이 있는 ‘정통 해병’ 출신이다. 그가 취임함으로써 해군 현대화 사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59쪽 딸린 기사 참조).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군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쓸 정도로 해군력 증강을 중대하게 여기고 있지만, 미군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첫째, 중국 해군에는 항공모함이 없었다. 둘째, 비록 중국은 많게는 70척 가까운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나 대부분은 ‘고철’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지난 4월 말의 잠수함 사고가 이를 입증한다). 게다가 중국 해군은 ‘연안 방어에 전념한다’는 독트린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중국 해군은 먼저 소프레미니급 구축함을 러시아로부터 사들여 미국의 첨단 이지스함에 맞서기 시작했다. ‘093형’이나 ‘094형’ 핵잠수함도 사들였다. 이 핵잠수함 중 일부는 수중에서 유도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다시 말해 타이완 해안에 접근해 지상의 목표물을 정밀 공격하거나, 미군의 ‘움직이는 전쟁 수행 기지’인 항공모함을 격침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중국 공군도 변모하고 있었다. 중국 지도부가 ‘제4 세대’로 교체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공군의 전투기들도 SU27·SU30 등 러시아산 최신예 전투기로 교체되고 있었다. 중국 공군도 이들 전투기에 제4 세대라는 별명을 붙였다. 미국 MIT의 토마스 크리스텐슨 등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보유한 전투기 가운데 ‘제4 세대’ 전투기는 60~90대로 현재 중국 공군력의 20% 정도에 불과하지만, 단기간에 공군의 주력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군의 전력은 해군력이나 공군력 모두 중국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전면 격돌하는 전쟁이 아닌 경우, 중국 식으로 바꾸어 말해 ‘유한 전쟁’(일종의 국지전)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미국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미국 외교협회도 <중국의 군사력>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점을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10년간 중국 군사력 발전의 초점은 타이완 독립을 무력화하기 위한 영향력 확보’라고 강조한 뒤 ‘미국은 군사적 위기에서 궁극적으로 우세를 보이겠지만, 미국이 타이완 방위를 위해 중국과 해상 및 공중에서 전투를 벌이겠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미국은 심각한 위험과 대가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큰 군사력 격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의 움직임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데에는 1990년대 들어서서 중국이 새롭게 정식화한 전쟁 및 국방 원칙도 크게 한몫 했다. 중국은 마오쩌둥 이래 전통적으로 적을 중국 내륙 깊숙이 끌어들여 궤멸시키는 ‘인민 전쟁’을 전쟁 원칙으로 고수해 왔다. 그러나 ‘개혁·개방 시기’에 덩샤오핑은 연안 지역 방어를 중시하는 전략을 택했다. 소련의 위협은 줄어드는 대신 중국의 대외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가는 데 따른 결과였다.

중국군의 변신은 미국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미국 내부에서는 냉전 붕괴 직후부터 ‘다음 차례는 중국’이라며 중국을 잠재적 주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부시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00년에는 이런 분위기가 더욱 짙어져 일각에서는 중국을 아예 ‘현존하는 위험’으로까지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9·11 테러 사건을 계기로 양국 정상이 테러와의 전쟁에 공조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우호 분위기가 조성되는 등 ‘본격 견제’는 상당히 늦추어졌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상황이 중국에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일대에 중국 봉쇄와 침투를 위한 중요한 전략 거점을 차지했다. 이는 미국의 군사 전문가들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기업연구소의 국방 전문가 토머스 도넬리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6월10일 전세계 차원의 미군 재배치 문제를 논한 글에서 ‘미국이 마나스(키르기스스탄)·카나바드(우즈베키스탄) 등의 공군 기지를 수중에 넣음으로써 테러와의 전쟁·유전 확보는 물론, 중국에 대한 접근성 등 상당히 중요한 자산을 얻었다’고 평했다.

미국은 아울러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동남아시아 지역 전반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해 오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미얀마 민주 세력에 대한 지원’을 내세워 미얀마 정치에도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얀마는 중국 윈난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의 서남방 출구인데, 베트남과 달리 중국의 ‘오랜 친구’였다.


원인이야 어쨌든 양국의 군사적 의구심과 경계심이 짙어질수록 ‘미러 게임’(서로 상대방의 모습을 보며 대응의 강도를 높여 가는 모양. 주로 군비 경쟁을 설명하는 데 많이 쓰임)의 영향은 동아시아 전역으로 파급될 것이며, 이에 따른 긴장감이 한반도를 옥죌 것이 틀림없다.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책으로 미국이 타이완 지원을 강화하면, 중국은 미국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며 이를 다시 군사력을 강화할 구실로 삼을 것이다. 이는 또 일본을 자극해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하는 빌미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전체가 군비 경쟁에 휘말릴 경우 최대의 피해자는 한국이 될 공산이 크다. 남북 긴장 완화에 쓰일 돈을 고스란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군비 경쟁에 털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타이완과 함께 미·중이 각축하는 최대 이해 다툼 지역이기 때문이다.

벌써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은 북한 핵을 내세워 한동안 헐거웠던 한·미·일 공동 안보 체제의 고리를 죄는 등 동아시아 패권국으로서 기득권 고수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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