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카 요시미는 북한 공작원인가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1999.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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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추적/요도호 납치범 다나카 요시미 ‘슈퍼K 위조 지폐’ 사건 진상
70년 초 일본항공(JAL) 소속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다나카 요시미(田中義三·51). 그는 96년 3월 위조 지폐 유통 혐의로 캄보디아에서 체포되어 태국 천부리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세계 언론은 다나카 요시미에 대해 북한이 제조한 초정밀 위폐를 동남아시아에 유통시킨 북한의 특수 공작원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말 <시사저널>은 위조 지폐 특집 기사(제475호 ‘당신이 가진 달러화 위조 지폐일 수도’참조)를 실으면서 외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

위조 지폐 특집 기사가 나간 지 2주 후 뜻밖의 편지가 편집국 팩시밀리를 타고 들어왔다. 오른쪽으로 5。 가량 기울어진 글씨체로 쓰인 이 편지의 보낸 이 이름 난에는 ‘다나카 요시미’라고 씌어 있었다. 태국 천부리 형무소에서 <시사저널> 특집 기사를 보고 항의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그는 편지에서 ‘이 기사(<시사저널> 특집)는 미국 발표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하지만 나는 위조 지폐를 사용한 적도 없고 태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는 인물이다’라고 적었다.

다나카는 북한의 특수 공작원이라고 알려져 있는 만큼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다. 더욱이 <시사저널>은, 앞서의 위조 지폐 특집 기사가 자신을 ‘국제 정치의 희생물’이 되는 데 일조했다는 다나카의 주장이 진실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언론의 책무임을 상기했다.

국내에서 사전 취재해 보니 이 사건을 둘러싼 몇 가지 미심쩍은 점이 있었다. 태국 방콕과 천부리를 찾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편집자>

99년 1월25일 자동차 매연이 대기를 가득 메운 태국의 수도 방콕을 빠져 나와 남쪽의 해안 마을 천부리로 향했다. 승용차를 타고 20분 가량 달리자 태국인의 미소만큼 은근한 황갈색 들판이 눈앞에 나타났다. 추수가 끝나 다소 황량하게 보이는 논에는 가축 사료로 쓰기 위해 군데군데 둥그렇게 말아놓은 볏짚단 외에는 아무 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의 눈앞에는 한 일본인 죄수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아니, 그는 기자가 1월22일 방콕행 비행기를 타고 서울 김포공항을 이륙할 때부터 줄곧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시사저널>, 다나카 편지 받고 취재 착수

물 빠진 갈색 죄수복을 입고 다리와 손에 족쇄와 수갑을 찬 다나카 요시미.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에 망명한 후 지난 30년 동안 세상에서 잊힌 이 인물이 지금 태국 천부리 형무소에 갇혀 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 국경 지역에서 체포되어 태국으로 압송될 때까지 그의 신분은 밝혀지지 않았다. 북한 국적인 김일수와 일본인 하야시로 행세했기 때문이다. 다나카를 세상에 다시 알린 이는 태국 형무소에서 그를 우연히 만난 일본 후지TV의 모리야마 슐스케 기자이다. 요도호 납치 사건을 자세히 알지 못하던 이 젊은 기자에게 다나카는 자기가 요도호 납치범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그는 미국 재무부 소속 비밀수사국(U.S. Secret Service·USSS)이 자기를 미국으로 끌고 갈까 봐 걱정해 자기 국적을 밝히면서 일본 정부가 개입해 주기를 바랐다. 일본 정부는 범법자라도 자국민이 제3국으로 끌려가는 것을 막아 왔다.

<시사저널>은 태국으로 떠나기 전에 다나카가 연루된 슈퍼K 사건에 대해 사전 취재했다. 다나카가 편지에서 슈퍼K 사건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알려준 이들과 접촉했다. 대상인터내셔널 대표 이수원씨와 일본인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우자키 마코토 씨가 그들이다.

태국 천부리 형무소에서 다나카와 함께 수감 생활을 한 이수원씨는 다나카를 통해 슈퍼K 사건을 자세히 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다나카와 1년 넘게 같은 감방을 쓰면서 그와 나눈 대화를 꼼꼼히 적어 놓았다. 그는 다나카가 캄보디아에서 어떻게 체포되어 태국에 압송되었는지와 미국 비밀수사국이 다나카를 옭아매기 위해 진실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일기 형식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 일기는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다나카 체포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재무부 산하 비밀수사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유통되는 미화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조 지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한국 국가안전기획부도 95∼96년 북한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한 남자가 위조 지폐 유통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공작원을 파견해 그의 신원을 확보하려 했다. 한국·미국·태국 정보기관들은 갖가지 작전을 동원해 북한 공작원 주위를 좁혀 들어갔다. 미국 비밀수사국도 태국 주재 미국대사관에 특수 요원을 주재시키며 미지의 북한 공작원을 찾으려 혈안이 되었다.

그 무렵 태국 휴양지 파타야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암달러상 케티락 씨가 미화 9천달러어치 위조 지폐를 발견하고 태국 경찰에 신고했다. 태국 경찰과 미국 비밀수사국은 즉시 수사에 들어갔다. 우선 케티락 씨에게 위조 지폐를 건넨 호텔 경비원 2명을 검거했다. 그들은 태국 경찰에게 캄보디아와 태국을 오가는 무역업자 2명으로부터 위조 지폐를 받았다고 자백했다. 태국 경찰은 이 무역업자들의 수첩과 거래 장부에서 고다마 쇼고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태국 경찰은 무역업자의 협조를 받아 캄보디아 프놈펜의 밀무역업자 고다마 쇼고를 방콕으로 유인해 돈 무앙 공항에서 체포했다.

그 뒤 미국 비밀수사국은 고다마 쇼고를 호텔에 감금하고 협박과 회유를 번갈아 하며 그의 동업자 하야시(다나카 요시미의 가명)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려 했다. 따라서 비밀수사국은 고다마의 사업 파트너가 북한이 제조한 위조 지폐를 동남아시아에 공급하는 특수 공작원이라고 단정하고 고다마를 통해 그의 신분을 알아내려 한 것이다. 당시 다나카 요시미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동업자 고다마 쇼고와 함께 담배 밀무역을 하고 있었다. 고다마는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하야시가 슈퍼K 유통에 관여했다고 자백했다(고다마 역시 천부리 형무소에 수감 중이다).

미국 비밀수사국 요원들은 하야시를 체포하기 위해 프놈펜에 있는 고다마의 사무실을 찾았다. 다나카는 사무실 1층에서 그들을 맞아 2층 응접실로 안내했다. 낯선 이방인들이 갑자기 찾아와 고다마 쇼고와 자기의 관계를 묻자 낌새를 챈 다나카는, 마침 1층에 놓아둔 핸드폰 벨이 울리자 전화 통화를 핑계로 1층에 내려갔다. 핸드폰에서는 다급하게 “도망가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나카는 그 길로 밖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를 타고 줄행랑쳤다. 아직도 누가 그에게 도망가라고 전화했는지는 모른다.

다나카는 북한대사관으로 가서 한 달 넘게 체류했다. 북한 외교관들은 다나카를 외교관 차량에 태워 베트남 국경으로 향했다. 베트남을 거쳐 북한으로 되돌려보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캄보디아 경찰이 다나카를 국경에서 체포해 미국 비밀수사국에 넘겼다. 미국 비밀수사국은 캄보디아 로열캄보지 항공편으로 다나카를 태국으로 압송했다. 미국의 비밀 수사 요원들은 직접 다나카를 심문하면서 북한의 위조 지폐 제조 실태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했다. 당시 다나카는 위조 지폐 유통에 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나카와 함께 1년 반 동안 같은 방에 수감되었던 이수원씨도 그가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다나카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데다 셈이 밝지 못하다. 그는 위조 지폐를 다루는 북한의 특수 공작원이 결코 될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씨의 일기와 증언으로는 그가 무죄라고 확신하기 어려웠다. 다나카가 위조 지폐 유통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다른 증거가 필요했다. 태국 방콕에 거주하는 우자키 마코토 씨에게 국제 전화를 건 것은 이 때문이었다. 우자키 씨는 지난 3년 동안 슈퍼K 사건을 추적해 온 인물이다. 그는 국제 전화를 통해 “다나카가 무죄라는 것을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다. 이곳으로 와서 증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다나카를 만나면 가려진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태국 검찰이 제시한 증거, 의문점 많아

그런 사전 취재 작업 끝에 태국을 찾았다. 1월22일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방콕 수쿰빗 15번가에 있는 맨하탄 호텔 커피숍에서 우자키 씨를 만났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름다운 중년 여인과 동행했다. 일본항공(JAL) 스튜어디스 출신이자 우자키 씨의 부인인 우자키 기요미 씨였다. 기요미 씨는 태국어·일본어·영어가 능해 다나카의 법정 통역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기요미 씨는 슈퍼K 사건에 관해 태국어로 쓰인 재판 기록을 훤히 꿰고 있었다.

태국 천부리 검찰청 소속 뚱차이 검사가 다나카의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고다마 사무실 1층에 있는 다나카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미화 12만 달러와 다나카의 지문이 묻은 100 달러짜리 위조 지폐 한 장이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되면서 증거의 효력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다나카의 책상 서랍에서 위조 지폐를 발견해 압수한 기관은 캄보디아나 태국 경찰이 아니다. 미국의 비밀수사국이었다. 재판부에 제출된 태국 경찰의 수사 기록에서는 위조 지폐 압수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재판부에 제출된 공식 기록에 가장 유력한 증거를 어디서 어떻게 확보했다는 내용이 빠져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비밀수사국이 다나카 책상에서 이 위조 지폐를 발견하는 장면을 본 목격자도 없었다. 더욱이 프놈펜에 있는 고마다 사무실 2층에는 금고가 있었다. 다나카가 금고에 보관해야 마땅할 위조 지폐 12만 달러를 아무나 쉽게 열 수 있는 1층 서랍에 두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더욱이 캄보디아 암달러 시장에서 미화 100 달러짜리 초정밀 위폐는 진폐 95 달러와 언제든지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이다. 또 비밀 수사 요원이 찾아간 날 다나카가 핸드폰을 받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는 척하면서 도망칠 때 거액인 데다 명백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위조 지폐를 책상 서랍 안에 남겨두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나카는 북한의 특수 공작원이 되기에는 근본적으로 자격 미달인 셈이다. 또 북한이 비행기 납치범으로 인터폴에 수배된 인물을 위조 지폐를 다루는 특수 공작원으로 이용했을까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압수한 12만 달러 위조 지폐에서 발견된 다나카의 지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문이 증폭된다. 그 지문은 태국 경찰이 발견한 것이 아니다. 이 증거도 미국 비밀수사국이 제출했다. 압수된 위폐 12만 달러 가운데 다나카의 지문이 묻은 위폐는 단 한 장이다.

우자키 마코토 씨는, 이 지문을 미국 비밀수사국이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문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위조 지폐에 묻은 오른손 둘째손가락의 지문(아래 사진 참조)은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위폐 뒷면에서는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다나카가 위폐를 책상이나 바닥에 놓고 둘째손가락으로 힘껏 눌렀음을 암시한다. 가볍게 건드렸다면 타원형 문양을 이룬다. 따라서 이 문양은 범죄자의 손가락에 잉크를 묻혀 지문을 채취할 때 나오는 문양과 비슷하다. 미국 비밀수사국이 채취해 놓은 다나카 지문과 위조 지폐에 묻은 지문은 거의 일치한다. 지문은 채취할 때 누르는 힘에 따라 문양이 조금씩 다르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누군가 이미 채취한 다나카의 지문을 위폐 위에 묻힌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다나카의 후원 단체는 다나카 지문이 묻은 위폐를 일본에 보내 전문가의 감정을 의뢰했다. 우자키 씨는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비밀수사국이 작성한 다나카의 지문 서류에는 엉뚱한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혀 있다(64쪽 사진 참조). 지문은 다나카의 것이지만 이름과 생년월일은 하야시 쇼지라는 일본인 관광객의 것이다. 이는 비밀수사국의 수사에 혼선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이 증거가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지 의문이다. 다나카의 변호사는 햐야시 쇼지의 진정서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최종 공판 날짜에 맞춰 이 자료를 결정적인 변론 증거로 쓰기 위해 아직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미국 비밀수사국은 증거를 조작했나

검찰측이 제출한 두 번째 증거는 고다마 쇼고의 자백이다. 그러나 고다마 쇼고는 미국 비밀수사국의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협박과 회유를 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비밀수사국이 고다마 쇼고의 아들 요시오에게 보낸 팩시밀리 전문(왼쪽 사진 참조)에는 ‘고다마 쇼고가 이 사건과 관련해 다나카 요시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 고다마 쇼고를 미국 법정에서 처벌하지 않겠다’라고 씌어 있다. 고다마는 그 뒤에 자백을 번복했다. 고다마는 갖은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다나카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여러 차례 증언하고 있다. 고다마는, 비밀수사국이 미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면서 끈질기게 자기를 회유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고다마 쇼고의 자백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효력이 떨어진다. 당시 수사기관은 고다마 쇼고가 범행을 자백할 때 통역과 변호사가 없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의 심문 내용에 ‘예스’라는 말을 반복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나중에 고다마 쇼고는 통역과 변호사가 있는 자리에서 종전의 자백을 번복한 내용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마지막 증거는 고다마와 다나카가 나눈 전화 통화를 녹음한 것이다. 사건 당시 비밀수사국은 프놈펜 고마다의 사무실 2층에서 이미 체포된 고다마와 다나카가 통화하도록 주선했다. 검찰은 그때 두 사람 사이에 위조 지폐에 관한 대화가 오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 참관인들이 듣는 자리에서 공개된 대화 내용에서 위조 지폐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고다마와 다나카가 동문서답하는 내용만 녹음되어 있었다. 따라서 다나카의 유죄를 입증할 직접 증거가 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슈퍼K 사건을 둘러싸고 검사와 변호사가 벌인 법정 공방은 이미 끝나고 4월7일 선고만 남겨 두고 있다. 일본 히토후바이시 대학 국제법률학과 마사유키 후쿠다 교수는, 다나카의 재판 기록을 검토하고 재판을 지켜보았으나 위조 지폐범이라고 입증할 증거가 없어 무죄 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슈퍼K 사건 수사를 벌여온 미국 비밀수사국은 이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자는 태국 주재 미국대사관 내에 설치된 비밀수사국 밍야오 요원과 접촉하려고 시도했으나 그는 이미 미국에 소환되어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비밀수사국 특수 요원 폴(성을 밝히지 않았음)과 접촉해 슈퍼K 사건에 대해 물었으나 그는 “이 사건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와 줄 수 있는 정보가 없다”라고 대답했다. 태국 경찰청 외사부 소속 샤왈락 형사에게 전화해 슈퍼K 사건에 대해 물었더니 그 역시 “이 사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기자는 미국 비밀수사국과 태국 경찰이 이 사건이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과연 다나카 후원 단체가 주장한 대로 다나카가 위조 지폐 유통과 관계가 없다면, 미국 비밀수사국은 왜 증인을 협박·회유하면서 다나카를 옭아매려 했던 것일까. 비밀수사국은 왜 그와 같은 무리수를 두었을까. 우자키 마코토 씨는 다음과 같은 추측을 내놓았다. 미국 비밀수사국은 다나카가 북한의 위조 지폐 제조 실태에 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당시 북한을 위조 지폐 제조국으로 지목하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다나카의 신병만 확보하면 북한의 위조 지폐 제조 실태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증인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다나카가 북한의 위조 지폐 제조 실태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그를 통해 북한이 위조 지폐를 제조하고 있다는 진술만 얻어내도 큰 수확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날조된 사건, 진실을 밝혀 달라”

방콕을 떠나 남쪽으로 1시간30분 가량 달리자 남중국해의 바다 내음이 짙은 천부리가 나타났다. 평온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그 해안 마을 한가운데는 형무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발에 족쇄를 찬 서양인 죄수와 그를 호송하는 교도관들을 보기 전까지 천부리 형무소는 마치 휴양지 같았다.

오전 11시30분 하야시 가주히로(다나카의 가명)에 대한 면회를 신청한 후 2시간이 지나자 면회가 이루어졌다. 철창으로부터 1.5m 안으로는 접근하지 못한 채 그와 인터뷰해야 했다. 그의 짧게 자른 머리에는 지나간 세월이 남기고 간 흰머리가 듬성듬성했다. 다나카는 서울에서 온 기자에게 여러 차례 부탁했다. “세상에 알려진 바와 달리 위조 지폐를 사용한 적도 없고 북한의 공작원은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 이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 진실을 밝혀 달라.”

다나카는 과연 비행기 납치범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위조 지폐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쓴 것일까, 아니면 북한이 제조한 위조 지폐를 실제로 유통시켰을까. 진실은 시간을 삼키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사건의 진실을 완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월이 꽤 흘러야 할 듯하다.

그는 짧은 면회 시간을 끝내고 돌아서면서 학생운동 시절 늘 그랬듯이 주먹을 쥔 오른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혈기왕성했던 메이지 대학 학생의 팔이 아니라 오랜 망명 생활에 지친 늙은 테러리스트의 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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