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보드' 살면 한국 가요 죽는다
  • 蘇成玟 기자 ()
  • 승인 1998.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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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복제 테이프에 음반업계 시름…“처벌 강화해야 근절”
지난 6월 어느날 음반 제작자인 김경남 사장((주)레볼루션 넘버나인)은 종로 1가부터 5가까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천적’인 길보드(음반 노점상)가 대체 이 도심 한복판에 몇 개나 될까 헤아리면서. 모두 18개였다.

그는 자신이 제작했던 음반들을 떠올렸다. 신해철의 〈정글 스토리〉, 더 뱅크의 4집 등등. 모두 시판도 하기 전에 ‘길보드 차트’에 올랐던 것들이다. 일단 이 차트에 오르면 적자 매출의 서곡이 울린 것이나 진배없다. 최근 서태지 컴백 앨범 제작자들이 길보드의 매출 잠식을 막기 위해 예약 주문제, 특수 홀로그램 부착 등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 화제가 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불법 복제 음반 시장에서 길보드는 제왕으로 군림한다. 불법 음반의 주종을 이루는 카세트 테이프가 길보드를 통해 유통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영상음반협회 단속반원 15명이 수거한 불법 음반 3백56만여 점 중 카세트 테이프는 3백11만여 개. 전체 수거물의 90%에 육박한 규모였다. 그래서 길보드의 횡포만 뿌리 뽑아도 불황에 허덕이는 음반업계의 주름이 활짝 펴진다는 말이 나온다.

70년대 후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길보드가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싼맛에 불법 음반을 선호하는 일반인들의 무딘 죄의식도 문제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요인은 불법 영업자들에 대한 벌금이 턱없이 낮다는 점이다.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제27조에 따르면, 불법음반을 판매한 행상업자들의 최고 형량은 벌금 3백만원. 하지만 대개 10만∼20만 원만 내면 된다. 지난해부터 단속이 강화되었지만 벌금은 오히려 싸졌다. 단속이 심해지자 길보드는 수백 개씩 내놓고 팔던 테이프들을 수십 개씩만 내놓고 팔게 되었고, 단속에 걸려 고발되더라도 압수 장물이 미미해 형량이 줄어든 탓이다.

불황에 허덕이는 음반업계는 당연히 이들 행상업자들에 대한 처벌 강화를 요구한다. 특히 엄청난 부당 이익을 취하는 불법 음반 제작업자들의 형량을 현행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서 ‘6개월 이상 3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해 달라고 입법 건의할 계획이다. ‘6개월 이상’이라는 조항을 굳이 삽입하려는 이유는 대만의 경우처럼 가능한 한 징역형을 살게 해야 처벌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영상음반협회 단속반을 이끌고 있는 서희덕 이사((주)뮤직디자인 대표이사)는 전체 저작권자들의 자발적인 권리 수호 노력도 촉구한다. 그는 특히 내국인 제작자들과 달리 단속 기금에 한푼도 출연하지 않는 외국 직배 제작사들을 비판했다. 수거한 불법 음반의 약 30%는 소니·폴리그램 등 7개 외국 직배사가 제작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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