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한의사회의 사할리 무료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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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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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한의사회 의료봉사단, 사할린 두 도시에서 무료 진료
“조국에서 온 의사들이어서 더욱 사모하는 마음으로 찾아왔습니다.” 옛 소련 땅 치타에서 태어나 개성이 고향인 남편을 따라 사할린으로 건너온 조보금씨(78)는 진료를 기다리며 위와 같이 말했다. 관절염이 오래되었는데, (무료여서 그런지) “염치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10일부터 15일까지 사단법인 대한한의사협회 한의사 해외의료 봉사단(단장 권용주·권씨한의원 원장) 한의사 14명은 사할린 주 유주노사할린스크 시와 코르샤코프 시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벌였다.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을 민족 의학의 이름으로 치료하면서 광복 50주년의 뜻을 기리고, 동시에 한의학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코자 기획된 이번 의료 봉사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카자흐스탄 알마아타 등에 이어 올해로 네 번째다.

“한의학 세계화에 큰 의미”

이번 사할린 의료봉사단은 대한한의사회 내과학회 임일규 회장(춘천 임일규한의원 원장) 정현국 원장(전주 대남한의원) 박종형 경원대 서울한방병원장을 비롯해 대학 교수와 젊은 한의사 등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임회장은 “한의학의 세계화를 앞당기는 데 이와 같은 해외 한인 의료 봉사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주노사할린스크 시에서는 전에 조선학교 자리였던 9호 학교에서 진료가 펼쳐졌는데, 첫날부터 한인은 물론 러시아인들까지 길게 줄을 섰다. 한의사들이 점심 식사를 미룰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 치료를 받은 한인들은 종이에다 루불화를 넣어 내밀기도 했고 고사리나 미역 말린 것을 선물하기도 했다. 고맙다고 밤에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4일 동안 두 도시에서 치료한 연 환자 수는 2천명(유주노사할린스크 1천6백명, 코르샤코프 4백명). 그 중 러시아인 환자가 40%를 넘었다.

특히 이번 진료에는 사할린 한인의사회(회장 김선환·공훈의사) 소속 한인 2세 의사들의 도움이 컸다. “3개월 전부터 <조로사전>을 놓고 공부했다. 맹장염·관절염 같은 용어를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사할린 한인 의사 이영자씨(내과)는 말했다. 한인 의사들과 한인 교사들이 러시아 환자들의 통역을 맡았다.

봉사단의 치료를 곁에서 지켜본 사할린 한인 의사와 진료를 받은 환자들 가운데 각각 10명, 1백2명을 무작위로 선택해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서양 의학을 전공한 한인 의사들은 한의학(동방의학)에 대하여 들어본 적은 있지만(7명) 처음 알았다고 답한 의사도 3명이나 되었다. 환자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의사 10명 모두 `‘좋다’고 답했고 가장 큰 효과를 본 질병은 무엇이었는가라는 물음에는 허리 통증·관절염·심장병·위장병의 순이라고 답했다. 주로 50대 이상 연금 생활자인 환자들은 허리와 혈압, 관절이 좋지 않고 두통이 심하다고 답했다. 조사에 응한 사할린 환자와 한인 의사들은 ‘이와 같은 한방 치료가 이 나라에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답했다.

박종형 경원대 서울한방병원장은 사할린 주 종합병원을 둘러본 뒤 사할린 한인 의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박원장은 “서양 의학을 전공한 이곳 의사들은 한의학에 대하여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한의학의 우주론적 배경과 한의학이 신체와 질병을 바라보는 입장을 서양 의학과 비교해 가며 설명하자 대부분 이해했다”고 말했다. 한인의사회장 김선환씨는 “서양의학 의사든 동양의학 의사든 인간의 생명을 지킨다는 점에서는 하나”라면서 앞으로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알마아타 시에 상주 한의사 1명을 파견하고 있는 한의사 해외의료 봉사단은 사할린 지역에도 진료소를 개설할 생각이다. 사할린 주 수석 부지사 고미레브스키를 만난 자리에서 권용주 단장은 “양국 정부 차원의 협의를 통해 사할린에도 한의사가 상주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의사협회는 현재 해외 협력 의사, 군의관, 공중보건의 제도 등 군 복무를 대신하는 혜택이 서양의학 의사들에게만 주어지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권용주 단장은 “한의사들이 해외에 나가 의료 활동을 펼치고 싶어도 군 문제가 걸린다”면서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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