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려보며 피 끓는 발칸 반도
  • 모스크바·정다원 통신원 (dwj@e-sisa.co.kr)
  • 승인 2001.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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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알바니아 등 '이슬람 띠' 형성
미국과 영국의 최신예 무기에 소총을 들고 맞선 빈 라덴. 그는 보복 테러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 카에다'가 성전에 참여하자고 목소리를 높이자 아랍권을 포함한 전세계 이슬람인들은 분노와 흥분에 휩싸여 결속을 다짐하고 있다.




미국 테러 참사는 일종의 부메랑이다. 테러 전문가들은 '테러주의가 냉전 체제라는 왜곡된 인큐베이터에서 탄생했고, 미·소가 테러주의의 싹을 키워온 대부(代父)라는 사실, 또한 테러주의가 냉전 논리인 파워 게임에 희생된 지역에서 아편과 함께 뿌리를 내렸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최근 〈공동신문〉(OG)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세계화문제연구소 소장 미하일 델랴긴은 '바람을 일으킨 자는 폭풍을 만난다'는 러시아 속담을 곁들여 "미국은 지속적으로 약소 국가에 불안정을 조장해 이익을 챙기면서 약소 민족들의 이권을 냉혹하게 무시했다. 이로 인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균열이 심해졌고, 그 결과 악마적 테러가 폭발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과 함께 러시아도 테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크렘린은 잘 알고 있다.


"불가리아·그리스도 반격 기회 노린다"


현재 관심은 발칸 반도와 중앙아시아에 쏠려 있다. 발칸 반도의 보스니아에서 터키·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북아프리카, 그리고 유럽 남동 지역에 걸쳐 '반달 띠' 모양의 이슬람 세력이 결집해 유럽·미국·러시아에 반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고,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 그리고 체첸의 이슬람도 여기에 가세할 기세다. 안드레인 말로솔로프는 주간지 〈베르씨야〉에서 미국의 정책이 유럽 남쪽에 '이슬람 띠'를 형성시켰다고 주장했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발칸 반도는 탈냉전 시작과 동시에 다시 강대국 이권 쟁탈전의 희생물이 되었다. 발칸 내전에 개입한 미국의 1차 목적은 유럽연합의 경제 정책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즉 2002년 1월1일부터 유럽과 전세계 단일 화폐로 등장할 유로(Euro)와 달러와의 이익 상충은 미국의 발칸전쟁 개입을 초래했다. 유럽연합의 화폐 단일화 추진은 미국의 경제 침체와 맞물려 달러화 약세를 부추켰고, 미국은 유럽 지역에 군사·정치적 불안정을 조장해 유로화 강세를 차단하려고 발칸 내전에 개입했다. 실제로 발칸전쟁 후 유로화 가치는 폭락했다.


말로솔로프는 미국이 발칸전쟁 때 이슬람인들을 이용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미국은 알바니아·터키·보스니아 등 발칸 반도의 이슬람인들을 행동 대원으로 내세웠다. 남동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유고연맹이 붕괴하자 곧바로 코소보로, 다음에는 마케도니아로 미국과 나토의 시나리오에 따라 전쟁이 확산되어 발칸 반도는 쑥대밭이 되었다. 전문가들이 뉴욕과 워싱턴 테러를 미국이 이슬람인들에게 뿌린 씨앗의 결실이라고 간주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러시아군 참모부 분석가들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알바니아가 간과하지 않을 것이며, 몬테니그로·불가리아·그리스도 반격할 기회를 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몬테니그로 대통령 밀로 주카노비치와 마케도니아 대통령 보리스 크라이코프스키는 독립 공화국에 대한 기대와 서방의 전폭적인 원조를 확신하며, 친서방 노선을 취해 왔다. 그러나 서방의 발칸 정책은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를 분리해 알바니아의 군사력을 약하게 하고, 새로운 갈등을 조장·확산하는 데 집중되어 발칸 반도 나라들을 실망시켰다. 또한 전쟁 여파로 관광 명소인 천혜의 해변을 찾는 관광객이 줄어들어 몬테니그로의 경제가 파탄이 나 알바니아에 흡수되었다. 코소보·마케도니아·그리스도 똑같은 메커니즘에 의해 희생되었다.


이슬람권이 미국에 분노하는 주된 이유는 '부시 독트린'의 본질인 미국의 '이중 잣대' 외교 정책이다. 즉 미국은 세계를 두 가지 잣대로 재단해 아군과 적군으로 갈랐는데, 이번 테러 전쟁은 이슬람을 적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특히 이중 잣대는 미국의 알제리 정책에서 극명하게 표출되었다고 말로솔로프는 주장했다. 알제리가 테러주의 방조자로 '반달 띠' 전선에 동참하리라는 관측은 이에 근거한다.


체첸까지 가세, 반미 전선 확장


역사적으로 발칸 반도와 운명을 같이해온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는 19세기 중후반까지 터키 영토였고, 유명한 이슬람 유적지 바흐치사라이가 있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다. 남하정책을 추진하던 러시아는 터키와 크림 반도 영유권을 놓고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최근 터키의 지원을 받는 크림 반도 이슬람인들은 바흐치사라이를 중심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인을 배척하며 자치권을 주장하고 있다. 체첸전쟁도 종교·인종 문제 이외에 러시아 국내 정치·대외 전략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스라엘군 정보기관 소식통에 따르면, 빈 라덴의 오른팔인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 지도자 아이만 알자바히리는 보스니아·코소보·알바니아·마케도니아 등 발칸 반도에서 활동하는 알 카에다 행동대원 약 6천명에게 2차 반미 이슬람전선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4만명으로 추산되는 반미 전선은 1998∼1999년 코소보전쟁 때 나토가 제공한 현대식 무기로 무장하고, 미군 2만명을 포함한 나토군 6만명을 견제하고 있다. 최근 알자바히리가 파키스탄에 잠입해 파키스탄 '지하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정보기관에 포착되었다고 주간지 〈MN〉(모스크바 뉴스)은 밝혔다.


발칸 반도 제2 전선과 함께 카스피 해를 사이에 둔 체첸-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이슬람 제3 전선이 구축되고 있다는 첩보는 나토사령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3천명이 넘는 체첸군이 그루지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 광범위한 전쟁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첸은 푸틴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지지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체첸 진압 백지 수표를 위임받았다고 주장했다. 나토사령부는 체첸전쟁에서 패한 체첸군이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의 미군 기지를 공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국제 문제 전문가들은 이슬람이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로 반격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이 '항구적 자유'를 내세운 대테러 작전에는 과연 이슬람인들의 자유도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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