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는 지금 괴담에 ‘덜덜’
  • 여수·차형석 기자 (papapipsisapress.comkr)
  • 승인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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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여인 사건으로 불안 심리 확산…엑스포 유치 못할까 걱정



지난 6월19일, 여수의 시내 버스에는 ‘예스, 여수! 2010 세계 엑스포’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 있었다. 거리 곳곳에 만국기가 걸려 있었다. 오는 12월, 2010년 세계 박람회 개최지가 결정된다. 여수는 모스크바·상하이와 개최지 경쟁에 뛰어든 상태다. 지난 6월5일 에이즈 감염자인 구 아무개씨가 여수역앞 사창가에서 1년 6개월 동안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여수 시민은 자신만만했다.


19일 오후 4시 여수시 보건소 1층 접수실에는 대여섯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면허 적성 검사 때문에 찾아온 시민들도 있었다. 한 20대 여성은 보건증을 내밀었다. 한 40대 남자가 조용히 에이즈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 남자는 2층 검사실로 가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채혈했다. 보건소 검사자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검사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꼬치꼬치 묻는 것을 싫어 한다.” 이 남자도 “검사 결과가 언제 나오냐”라고 묻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보름여 동안 1천90여 명이 에이즈 항체 검사를 받으러 왔다. 지난해 80명이 검사를 받은 것과 비교가 안된다.


구씨 사건 이후, 보건소로 항의 전화가 몇 통 걸려 왔다. 누군가 가정집으로 “당신 남편이 사창가를 드나들어 에이즈가 의심되니 검사하러 보건소로 오라”고 장난 전화를 해 부부 싸움을 한 뒤 항의 전화를 한 것이다. 지역의 시민단체 간부는 “사창가 출입이 은밀한 일인 데다가, 에이즈 괴담 때문에 엑스포 유치에 차질을 빚을까 봐 지역에서는 쉬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교사는 “지금 대학 2, 3학년 학생들이 역전 사창가에 출입했을 수 있다. 학부모들이 불안해 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선거 때 에이즈 문제를 쟁점으로 삼았던 김충석 여수시장 당선자는 “구씨의 초상을 병원과 보건소에 비치해 몰래 열람할 수 있도록 경찰과 협의하고 있다. 구씨 인권도 중요하지만 절대 다수 선량한 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쟁점에 비해 대책은 부실했다.





“기자놈들 다리를 분질러 놓아야 한다”


6월19일 밤 11시 특정가(이곳 경찰은 여수역앞 윤락가를 ‘특정가’라고 부른다)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서울의 홍등가와 달리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주택가 골목길 집앞마다 간이 의자가 나와 있었다. 삐끼 아줌마 대여섯 명이 우산을 쓰고 서성였다. “비 오면 사람들이 이곳을 더 많이 찾는데, 손님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이곳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한 40대 남자는 “업소가 열세 군데, 삐끼로 일하는 집이 2백여 곳 된다. 이 동네 사람은 이걸로 먹고 살았다. 너무 여수만 몰아붙이지 마라. 생존권 문제다”라며 하소연했다.


한 할머니는 장사가 안된다며 “방송에 이 동네가 다 나왔다. 기자놈들, 다리를 분질러 놓아야 한다”라고 흥분했다.
6월20일 오후 2시. 특정가 내 임시 진료소로 아가씨들이 모여들었다. 특정가 사람들이 돈을 모아 마련한 곳이다. 매주 보건소에서 나와 성병 검사를 한다. 이 날 검사받은 사람은 41명. 보건소 관계자는 “그 사건 이후 검진받으러 오는 아가씨가 30% 정도 늘었다. 평소에는 아가씨들이 자는 시간이라 잘 오지 않고 귀찮아했다”라고 말했다. 전날 역전 파출소에서는 등록된 특수 업태부가 25명이라고 말했다. 관리가 제대로 안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에이즈를 성병으로 여겨


구씨는 현재 마산교도소에 구속 수감되어 있다. 건강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구씨는 아직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여성단체나 시민단체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구씨는 교도소에서도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사회에서도, 교도소 안에서도 그녀는 혼자였다.


지난 6월15일 평소 동성애자 에이즈 예방 교육을 하던 동성애자인권연대(동인연)가 주선해 강금실 변호사가 1시간 30분 동안 구씨를 접견했다. 구씨는 검거된 이후 “새로 검사를 받거나 치료받은 사실이 없다”라고 전했다. 구씨는 에이즈를 ‘꺼림칙한 성병’으로만 여길 정도로 자신의 병에 대해 무지했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일을 언론이 중대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매우 당황하고 놀란 듯했다. 강변호사는 “구씨는 에이즈보다는 어떻게 하면 빨리 석방될 수 있나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라고 동인연에 전했다. 동인연 임태훈 대표는 구씨를 에이즈 사각 지대에 방치한 것은 보건 당국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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