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비전 투병이 주축 이룬다
  • 남문희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3.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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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실무자들 “공병·의무 부대 위주로 파견”
이라크 파병에 대한 정부 핵심 실무자들의 복안은 무엇인가.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발표한 지난 10월18일, 정부의 관련 실무자들은 윤대변인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 파병 사실을 예측 보도한 그 날 조간 신문 몇몇을 거론하며 ‘잘못 짚었다’ 또는 ‘명백한 오보’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 마치 전투병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처럼 보도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전투병 파병 보도는 잘못”…서희·제마 부대 확대판 될 듯

윤대변인의 발표가 있은 직후, 정부 실무자들이 <시사저널>과의 접촉에서 이구동성으로 강조한 것은, 현재 정부가 내심 고려하고 있는 것은 이라크에 파병하는 부대의 성격이다. 즉 전투병이 아닌 비전투병을 보낼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그 날 윤태영 대변인이 발표한 파병 관련 3개 문항 중 두 번째 문항의 뒷부분 내용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파병 부대의 성격·형태·규모·시기 등은)… 이라크의 평화 정착과 재건 지원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독자적으로 결정할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비전투병 파병을 은연중에 강조하려 했다는 것이다.

정부 실무자들이 언급한 비전투병은 공병 부대와 의무 부대를 뜻한다. 파병 결정에 깊이 관여한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공병을 주력 부대로 하고 여기에 의무 부대를 결합한 형태를 염두에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부 발표 이후 일부 언론이 공병이나 의무 부대가 포함될 것이라고 부분적으로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전투병에 무게 중심을 두어왔다. 그러나 그의 말을 통해 볼 때 오히려 정부의 의중은 공병과 의무 부대가 주축이 되고 일부 전투병은 이들 부대를 보호하기 위한 소극적 임무만을 띠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현재 공병 및 의무 부대 중심으로 이라크에 파견되어 있는 서희·제마 부대의 확대판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국내 언론은 청와대 외교안보팀의 일부 군 관계자나 국방부 당국자들의 견해에 비중을 두고 이라크 북부 모술 지역에 대규모 전투병을 파병하는 안을 기정 사실인 것처럼 보도해왔다. 이같은 보도는 정부가 파병 목적을 ‘평화 정착과 재건’이라고 못박아 발표한 다음에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파병 문제 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정부 핵심 실무자들은 “국방부나 청와대 일부 당국자들의 견해는, 정부내 한 부처의 견해일 수는 있지만 범정부 차원의 견해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참여정부 들어 외교·안보·통일과 관련한 주요 정책 결정은 반드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주관해 관련 부처들의 토론과 합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이라크 파병 결정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일부 인사들이‘전투병 대규모 파병’을 강조하는 것은 자기 세를 과시하기 위한 언론 이용하기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정부의 입장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핵심 실무자들은 그동안 이들 군 관계자나 언론이 거론한 ‘미국측 요구 사항’에 대해서도 분별력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미국측이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내용은 ‘이라크 치안 유지를 위해 폴란드 사단 규모의 경보병을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일부 군 인사나 언론이 보도해온 ‘이라크 북부 모술 지역의 101 사단 교체 희망설’은 한국 정부 차원에서 공식으로 접수하지 않은, 미국 군부 일부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미국의 공식 요청 내용을 나름으로 수용하고 천착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즉 미국측의 공식 요청 중 ‘치안 유지’와 ‘폴란드 사단’이라는 용어에 대한 해석이다. 우선 파병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 유지와 관련해 미국측이 사용한 용어는 경보병(light infantary)인데, 이를 두고 전투병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지적이 있다. 미국 스스로도 그동안 전투병 대신 ‘안정화군’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또한 전투 부대가 치안 유지에 적합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바그다드와 모술 점령 정책에 대한 자체 평가는 비전투적 접근이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전투병을 파병해 교본대로 작전을 수행한 바그다드의 경우 이라크인들의 반감을 사 테러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모술 지역의 경우는 현지인들의 의사를 존중하고 애로 사항을 해결해주는 비전투적 접근 전략을 펼침으로써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점령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치안 유지를 위해 전투병을 보낼 수도 있지만 공병과 의무 부대를 보내 이라크인들을 설득하면서 질서 유지에 협조를 구하는 방식이 더 근본적인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정부 발표문 중 독자적인 결정이라는 게 바로 이런 내용이다. 현지 조사를 통해 더 창조적인 해법을 추구하겠다는 뜻이다”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병력 규모에 대해서도 미국이 요청한 ‘폴란드 사단’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언론이 언급하고 있는 파병 규모 ‘6천, 7천~만 명’은 터무니없는 숫자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비전투병 성격에 폴란드 사단을 염두에 두면 파병 규모는 3천명 선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여하튼 파병의 성격·규모·시기 등은 정부가 밝힌 여러 가지 판단 근거에 따라 구체화하겠지만, 언론의 섣부른 예단은 국익에 도움이 안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전투병’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19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은 ‘한국의 전투병이 오면 미군과 똑같이 살해하겠다’는 이라크 무자헤딘 게릴라들의 인터뷰 내용을 소개했다. 국내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이라크인의 오해를 사 한국 젊은이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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